‘미(美)채움’은 생애주기별 체육활동 참여율이 저조한 출산 전후, 갱년기,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생활체육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한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총 15회, 주 1~2회 수업을 통해 여성의 정신적·신체적 건강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서울·경기·인천·전북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및 직장 50개소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진행됐다.

 

탁구채 잡는 법조차 모르던

평균 나이 61.8세

여성 운전기사들 

집안일도 도맡다 보니

시간 없어 운동 엄두 못내

“가벼운 운동으로 활기”

 

지난 11월 30일 대한체육회의 ‘미(美)채움’ 탁구 수업에 참석한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의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1월 30일 대한체육회의 ‘미(美)채움’ 탁구 수업에 참석한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의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탁구장 가득히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탁구채를 잡은 회원들의 얼굴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스윙 동작 중 ‘탁구의 꽃’, 드라이브 연습에 한창이다. 그런데 조금 특이하다. 평상복을 입은 회원들 사이로 언뜻 파란색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눈에 띈다. 목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걸고 있다. 시간을 쪼개 참여한 탓인지 다들 열혈 수강생 모드다. 모두 ‘인천광역시 여성운전자회’ 회원이다.

인천시 여성운전자회(이하 인천시 여성운전자회)는 택시와 버스, 덤프트럭 등을 운전하는 여성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여성 운전자가 드물던 1969년 최초로 창립 이후 현재는 100여명의 여성 택시기사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짧게는 10년 차부터 길게는 30년 차까지 반평생을 길에서 보낸 이들이 대부분이다.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이 탁구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이 탁구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동인천 주유소 지하 1층에서 여성운전자회의 마지막 탁구 수업이 진행됐다. 홀어머니와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스물두 살에 처음 운전대를 잡은 김경자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장(60)은 이날 “하루 10~12시간씩 일하는 우리가 점심시간마다 한 곳에 모여 탁구를 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탁구 치는 회원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항상 쪼그리고 앉아있기 때문에 운전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아요. 평소 이렇다 할 신체 활동이 별로 없으니 운동 초기엔 팔이 너무 아팠어요. 마음은 뜨거운데 몸이 말을 잘 안 듣더라고요. 아마 감독님이 답답했을 거예요(웃음). 회원들 사비를 들여 탁구 연습기계도 샀습니다. 이렇게 식사 시간에 나와서 몸을 움직인다는 자체가 활력을 줘요.”

탁구채 잡는 법조차 모르던 평균 나이 61.8세의 회원들이 이처럼 탁구를 즐길 수 있게 된 건 대한체육회의 2017 여성체육프로그램 ‘미(美)채움’(이하 미채움) 덕분이다. 특별히 직장 여성동호회를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건강지킴이’ 탁구 수업은 지난 9월부터 20회에 걸쳐 약 1시간씩 진행됐다. 원래 15번이 기본이지만 회원들의 열정으로 수업 횟수를 늘렸다는 게 지도자의 설명이다.

이날 27명의 회원들은 포핸드, 서브, 백핸드, 이동 자세 등을 반복적으로 배웠다. 20평이 안 되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수강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2대 밖에 없는 탁구대 앞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남는 시간에는 계속해서 자세를 교정했다.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터져 나오는 활기찬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지도 강사인 권미경 인천시탁구협회 이사(이하 권 이사)는 “잘하는 분들이 먼저 나서서 자세를 알려주는 분위기”라며 “15번만으로 배우기 어려운 종목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회원들이 어느 정도 경기 폼을 갖췄다”고 뿌듯해했다.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이 탁구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회원들이 탁구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차 안에서 운전만 하는 특성상 택시기사들은 운동량이 현저히 부족하다. 평소 건강관리가 필수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택시기사들은 퇴근 후에도 어쩔 수 없이 집안일 등 가사노동을 이어가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들이 따로 시간을 내 운동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 회장은 “인천 내에만 개인 197명, 법인 90명의 여성 택시기사들이 있는데, 아마 다들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여성운전자회 내에서도 1~2명을 제외하곤 “탁구를 처음 해봤다”고 했다. 원하는 시간대와 장소에서 프로그램을 제공받는 것이 핵심이었던 셈이다.

이날은 특별히 우울증·스트레스·체력검사가 진행됐다. 사전에 진행된 검사와의 비교를 위해서다. 그동안 김 회장이 직접 찍고 편집한 동영상을 통해 이제까지 배운 동작을 복습하는 시간도 가졌다.

평소 산책이 운동의 전부였던 박정임(60)씨는 “반팔을 입기 시작할 때 배워서 벌써 두툼한 옷을 입고 있다”며 “탁구 수업을 들은 뒤로 3kg가 빠졌다”고 자랑했다. 단체 내 ‘왕언니’라 불리는 김정순(74)씨는 “시간을 내서 따로 운동을 배우기 힘들다”며 “이렇게 찾아오는 교실이 생기니 회원들도 전보다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30년 운전 경력의 서옥란(66)씨도 “20회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탁구 수업을 들었다”며 “평소에도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겨 너무 좋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여성신문과 대한체육회 공동 기획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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