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첫 여성·비고시 출신 외교 수장

12월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

이견 좁혀 합의로 나아갈 것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마무리 단계 

협상 과정서 본질 놓친 듯

성평등 인식 확산 위해

공무원 사회가 솔선수범해야

한일 위안부 합의,

협상 과정서 본질 놓친 듯

새로운 기회 찾아다니고,

기회 주어지면 따지지 않아 

“기회가 왔을 때 주저 말라”

 

 

70년 외교부 역사 최초의 여성 장관 강경화. 10년간 유엔(UN)에 몸담으면서 3명의 사무총장 모두에게 중용된 유일한 인사였던 그는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늘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다. 북핵 위기 속에 각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외교에서, 조직 내부 개혁까지 풀어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숨 돌릴 새 없는 외교 현안에서도 강 장관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UN에서 일을 시작한 계기도 여성과 인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1995년 국회의장실에서 국제담당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참석했던 베이징여성대회가 그 출발점이다.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강 장관은 긴장의 연속 상황에도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태도가 돋보였다. 의식적이라기보다 몸에 밴 자연스러움이었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임 후 164일 됐지만 마치 몇 년간 일하신 것 같다. 대북 문제 등 외교 현안에 약하지 않겠냐고 하는 우려도 사실 있었지만 ‘강경화 효과’가 분명 있다고 본다. 소회를 겸해 그간 상황을 정리하신다면.

“하루하루 너무 바쁘다. 매일 끝날 때면 하루 두 세 시간 더 있었으면 한다.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부서나 마찬가지지만 장관의 자리라는 게 고유 업무를 넘어서 국회와의 관계, 다른 부처와의 관계 등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시간과 생각을 많이 요하는 자리다. 막상 외교 현장에서 외교를 하는 시간보다 부의 수장으로서 대내적으로 시간을 갖고 해결하고 협의해야 할 게 굉장히 많고 일하면서 많이 배운다. 외교부는 이런저런 사건으로 언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사건을 하나 하나 겪을 때마다 외교부에 대한 신뢰가 깎이는 건 아쉽지만 원칙을 가지고 꼼꼼하게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부담도 되지만 간부 직원들과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사건을 통해 직원들이 우리 스스로를 둘러보게 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섬으로써 두 걸음 앞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외교 현장에서는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이 북핵 문제로 굉장히 엄중하다. 풀어나가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는 한 국가 한 국가 모두가 어려운 상대다. 그러나 제가 10년 밖에 나갔다 온 사이에 우리나라가 굉장히 커졌다고 많이 느낀다. 밖에서 보는 우리의 위상이 상당하다. 크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밖에서 일했고, (장관으로서) 상대국과 일할 때도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견이 없다면 외교를 할 필요가 없다. 이견에 대해 소통하면서 호혜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게 외교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슈들을 접해왔다.”

12월 중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

-곧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중국 문제를 풀기 위해 역할을 많이 하셨다.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뤄질 이슈는?

“일단 1년간 사드 문제로 한·중 수교 25주년인 양국 관계를 얼어붙은 상태로 놔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10월 31일 합의 결과가 나왔다. 협의 결과의 기본 인식은 서로 간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가자는 게 합의의 기본 정신이다. 이를 바탕으로 두 정상이 앞으로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정상 방중이 될 수 있게 준비 중이다. 구체적인 의제와 일정은 조율 중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하시나?

“그렇다. 중국이 북한의 가장 큰 이웃일 뿐만 아니라 안보리 결의 채택이라든가, 채택된 제재의 이행에서 충실히 다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고, 저희가 파악하는 정보에 의하면 현장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도 국제사회 목소리를 북한 측에 계기가 있을 때마다 전해주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권 외교의 현주소

-외교에서도 인권 문제가 중요하다. 한국 외교에서 인권지수는 어느 정도인가?

“인권 담화가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하기 때문에 사안 하나 하나에서 선두를 달린다고는 할 수는 없다. 사형제의 경우 아직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는 나라가 많다. 사안별로 우리가 아직은 선두대열에 들어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특히 여성 폭력은 국제사회 규범과 우리 현실의 격차가 약점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는 유엔의 인권 논의에서 평균적으로는 선도적이다. 우리의 인권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많이 진출시키고 있다. 정진성 교수님(서울대)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서창록 교수님(고려대)은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에 재선되셨다.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우리 후보를 내세워 열심히 캠페인하려 한다. 우리의 인권 인재풀에 깊이가 많이 생겼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국제 사회 인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감, 내적 힘이 한층 더 강화됐다고 생각한다.”

-외교부 직원의 인권 의식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조금 더 앞서가야 한다는 기대도 있다.

“외교에서 인권지수는 국내의 인권지수의 종속변수다. 국내 인권에 소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에 따라서는 인권에 대한 명시적인 공약이 흐려지기도 하는데 대통령께선 인권에 대한 공약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나타내셨다. 국가인권위원회를 강화하고 위상 회복에 노력을 많이 하신다. 대통령의 행동과 말씀 그 자체가 메시지다. 공무원 세계에 다른 지시가 특별히 없어도 인권은 새 정부에서 중요한 담론이라는 메시지가 내려간다. 또 그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 한국의 남성적 조직문화는 어떤가. 여성신문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을 위해 히포시(HeForShe) 운동을 하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웬만한 자리에 가면 여성이 혼자일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여성을 동등한 상대자로 바라보지 않는 남성의 인식에 공감이 될 때가 있다.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데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국회 대정부질의 당시 모 의원이 저의 백발 머리와 관련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저는 물론 그분도 당황스러웠을 거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 역시 ‘이런 게 이제는 통용이 안 되는구나’ 생각했을 거다. 그런 계기들이 필요한 것 같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의 의지, 대통령의 의지는 굉장히 강하신 듯하다. ‘lead by example(솔선수범)’이라고 한다. 공무원 사회의 솔선수범이 제일 강한 추진력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지시나 규정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대통령 이하 모든 지도자 위치의 사람이 몸소 보여주신다면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외교부 혁신 진행 중

- 장관님은 가는 곳마다 여자 혼자라고 하지만 이번 정부 내각에 여성이 30%가 됐다.

“여자이기 때문에 느낄 법한 위압감 같은 게 국무회의에서는 전혀 없다. 여자라는 인식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외무고시에 여성 합격율이 70%를 넘었고 외교부 직원 중 여성이 39%에 이른다. 그런데 간부의 여성 비율은 8%다. 현 정부 임기 내 여성 간부 목표를 20%로 설정했는데 구체적인 전략이 궁금하다. 가령 여성 대사 비율 등을 늘리는 방안은?

“대사도 (성별 목표치에) 넣을까 했는데 인력풀이 얕더라. 여성 관리직 20%는 현실 가능하다. 다만 업무 환경 상 여성이 아이를 낳는 순간 뒤처지게 된다. 육아휴직 가서 낙오되고, 돌아왔을 때 남성 동료보다 훨씬 경쟁력 없는 자리가 주어진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일과 가정·육아가 말 그대로 양립할 수 있게 직원을 도와주는 것이다. 남성들도 육아휴직하고 싶어한다. 제도적인 게 아니더라도 문화나 분위기로 차별받지 않도록 고쳐나가고 있다. 예컨대 여성 직원이 해외공관에 나갈 때 육아를 위해 부모님을 많이 모시고 나가는데 관광 비자로 가다보니 3달마다 돌아오셔야 한다. 그런 불편함부터 덜어 줄 수 있는 개선 방안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다. 외교부 혁신의 핵심 중 하나가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외교부의 이같은 추세라면 20%도 넘어설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고 인권외교가 저절로 이뤄질 것 같다. 이와 함께 국장급 이상 남성 상관들 의식도 크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성평등 교육 내용이 얼마나 알찬지 저는 모르겠다. 교육 내용도 맞춤형으로 할 필요가 있다. 공관에는 공관에 맞게, 부는 부에 맞게 필요하다. 하나의 혁신 방안으로 직원들 교육 문제가 중요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제사회 커리어와 사람들

-외교 인생을 보면 탐험을 대단히 즐기시는 듯 하다. 영향을 준 사건이나 인물이 있을 것 같다.

“저의 부모님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하셨다. 한번도 노(No)라고 안하신 것 같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대학 졸업하고 유학 가겠다고 했을 때 여자 혼자 유학 안보내던 시절에 부모님은 가보라고 하셨다. 새 기회를 늘 찾아다니고, 주어지면 따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거 계속 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중고등학교 분위기도 그랬다. 그래서 딸도 그 학교 보냈다가 청문회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외교 관련 일을 하시면서 커리어를 잡아가는데 도움이 된 분을 꼽는다면?

“국내에선 이연숙 전 장관님(여성부 전신인 제2정무장관)을 중심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힘을 합해 1995년 베이징여성대회에 참가했고 그때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국제사회에서는 저를 유엔으로 이끌어주신 루이즈 아버(Louise Arbour)는 당시 인권고등판무관(UNHCR)이었는데 저를 부고등판무관으로 코피 아난 총장에게 추천했다. 그 계기로 유엔에 입문했고 4년 정도 같이 일했다. 루이즈 아버는 휴가 때 놀러가기도 할만큼 친하지만 국내외에서 만난 지도자 중에서 사고가 정말 명석하고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 키는 자그마하셔서 등산할 땐 제가 훨씬 빨리 가는데, 그의 지적 능력을 쫒아가기 위해 저는 늘 허덕였다(웃음). 많이 배웠다.”

-반기문 전 총장은 어떤가?

“장관 시절에 저를 국제기구 국장으로 발탁하신 덕분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시절이었다. 감사하다. 이후 유엔 총장으로 가셨고 저는 사무차장보 인권담당으로 제네바에 갔다. 제가 국장으로 장관을 모실 때의 거리와, 유엔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의 거리는 (비교할 수가 없다), 유엔에선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랄까. 그래도 멀리서 뵈면 인권 쪽으로 우리 사무실을 알게 모르게 많이 지원하셨다. 인권 문제는 성공을 하기도 어렵지만, 성공해도 뉴스가 안 된다. 대신 성공하지 못하면 서방 NGO(시민사회단체)에게 특히 많이 질타 받는다. 또 민감한 인권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이해당사자국 정부 압력이 심한데 우리 보호막이 되셔서 어려운 보고서가 나올 수 있게 지원해주셨다. 무엇보다 유엔 여성(UN Women)을 만든 분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의 본질 놓쳐

-일본의 태도가 위안부 문제와 한·일 합의에 대해 날이 갈수록 강고해 우려된다. 어떻게 일본을 넘어갈 수 있을까.

“제 직속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검토가 거의 끝났고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TF 위원들 모두 헌신적으로 하고 계신다. 좋은 보고서를 만들어주실 것 같다. 보고서 내용은 합의를 만들어낸 과정이라든가 합의 이정표, 합의의 전반적 평가 등이다. 그러면 합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정립해나가야 하고, 일본과 어려운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 국내 피해자라든가 피해자 단체에 흡족할 만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합의 재협상은 가능하겠나?

“글쎄, 검토 결과 보고서가 나오고 정부의 입장이 정해질 때까진 방향을 밝히긴 어렵다. 그러나 일본은 '재협상은 없다, 합의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는 국가 간 합의가 있는 건 사실이고 무시할 수 없다고 보지만 이 합의가 국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국내 현실이다. 이 균형을 잘 잡아서,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 앞으로 나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공식 사과를 받는 것이 목표인가?

“합의의 특정 부분이 우리 인식과 너무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서 합의의 긍정적인 부분이 거기에 다 매몰돼버렸다. 일본이 사과한 부분이 있다. 총 3개 부분인데 첫 번째가 책임, 두 번째가 사죄와 반성, 세 번째는 일본 정부가 돈을 각출해 재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의 성격을 명확히 않고 인도적인 자선 성격으로 준거 아니냐 해서 돈을 받은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여성신문 김효선 발행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여성신문 김효선 발행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 측의 책임과 사과가 명시된 것은 긍정적이라는 건가?

“그렇다.”

-(피해자들과 국민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같은데.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우리가 제일 받아들이기 아팠던 부분인 것 같다. 나머지 부분들이 가려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TF를 통해 정립하고 싶은 것은 합의의 사실을 기본으로 제대로 알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나갈지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합의를 만들어낸 전 정부의 관계자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한건 전혀 아니다. 선의로 했는데 협상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초점을 좀 놓친 것 같다. 이건 기본적인 인권 유린의 문제이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양국의 정치 협상 대상이 된 듯하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잘못됐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 뒤에 국내에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갖고 가야할지 어려운 대화를 해야 한다.”

-앞으로 장관님처럼 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다. 국제사회 활약이 멋져 보이지만 어려움도 많을텐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제네바에 처음 갔을 때 너무 외롭더라. 애들 다 두고 혼자 갔다. 너무 용감했다. 저녁에 호텔에 가면 당장 집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밖에 없더라. 100일까지도 이렇게 힘들면 다 접고 집에 간다고 생각했다. 40일쯤 일에 몰입되니깐 100일 숫자 세는 것조차 망각을 하고 지내는 것 보면서 내가 적응하나보다, 그냥 가나보다 생각했다.

저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움도 있지만,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엄청난 좋은 자리라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새로울 때 그렇다. 외교부 근무할 당시 기대 없이 UN에 응모했는데 느닷없이 인터뷰(면접) 하러 오라고 해서 차관님께 출장 허가받으러 갔더니 “용감합니다”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살아온 게 별로 후회가 안 되더라. 젊은이들이 우리세대보다 훨씬 다양한 기회가 많은데 새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력

△197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7년 한국방송(KBS) 영어방송의 프로듀서 겸 아나운서 △1984년 매사추세츠대학교 암허스트캠퍼스 대학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1994년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1996년 국회의장 비서실 국제담당비서관 △1999년 외교통상부 장관 보좌관 △2000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담당심의관 △2005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2006년 외교통상부 범세계문제 담당대사 △2006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 △2013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 △2016.10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인수팀장 △2017.02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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