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으로 국민연금 분할 때

가출·별거기간 제외 법 개정

폭력 등 배우자 귀책사유로

가출·별거하게 된다면?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돼 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인정한 국민연금법 64조 1항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있었다. 이 조항은 (대다수 여성) 전업주부가 이혼했을 때 이혼 배우자가 수급하는 연금을 분할 받음으로써 노후(여성)빈곤을 막으려는 취지로 1998년 도입했다. 노령연금을 부부공동 생활 중 역할분담을 통해 형성한 재산 중 하나로 보는 관점도 동 조항 도입의 주요 계기였다. 결국 사회보장적 성격과 재산권적 성격을 동시에 동 조항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혼인 기간에 포함할 수 없는 별거 기간까지 반영해 분할연금액을 결정한다면, 이는 재산으로서 연금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연금수급자 입장에서 함께 살지 않았던 기간에 재산으로서 연금수급권을 배우자와 공동으로 형성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남성이 국민연금법 64조1항이 헌법 23조에서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위헌소송을 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위헌 판결로 법률의 효력이 상실될 경우 이혼배우자 전체의 분할연금 수급권 근거규정이 사라지는 법적 공백상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 판결에 근거해 국회는 2018년 6월 30일까지 국민연금법 관련 조항을 개정할 의무를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전 “혼인 기간에서 별거, 가출 등 사유로 인해 실질적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간을 제외한다”는 요지의 국민연금법 64조 1항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혼인기간 5년 이상일 경우’ 가질 수 있었던 연금분할 수급권이 사라지거나 분할연금 액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벌써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학대나 폭력,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노후에도 분할연금 수급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볼 수 있구나.”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여성들이 합의이혼이 아니라면 재판 과정을 거쳐 이혼 판결을 받을 때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분할연금 수급자의 압도적 다수가 여성인 현실을 감안할 때 가출·별거 기간을 혼인 기간 계산에서 제외하게 된다면 폭력피해 여성의 사회보장권 제한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그런데 개정안은 또 다른 내용 하나를 더 담고 있다. “④ 혼인기간의 인정 기준 및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실질적 혼인기간 인정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예상해 보건복지부에서는 당초 시행령보다는 법률에 혼인기간 인정과 관련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기를 원했다. 국회에서 공을 넘겨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는 공을 정부에 넘겼다. 대통령이 공언한 성평등 정부다.

남편의 취업활동을 가능케 한 무보수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재산권), 취업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온 여성이 이혼 시 노후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사회권) 1990년대 여성운동이 요구한 결과로서 연금분할수급권 도입이 있었다. 성차별 피해 여성의 재산권과 사회권이 남편의 재산권에 막혀 훼손될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폭력 등 배우자(남편)의 귀책사유로 가출·별거하게 됐다면, 경찰에 신고 후 최종 이혼 판결까지는 혼인 기간으로 인정해 분할연금 수급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등 성인지 관점에서의 철저한 대책에 근거한 시행령 마련이 필요하다. 성평등을 공언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요구하며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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