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시작한 여성건강사업

해마다 예산 삭감돼 ‘찬밥’ 취급

내년엔 사업 통합으로 존폐 기로에

건강문제, 성인지 관점으로 살펴야

 

 

2012년 서울시는 여성위원회를 성평등위원회로 개편하고 성평등조례를 만든다. ‘여성 배려’가 아닌 ‘실질적 성평등’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수립하고 핵심과제에 ‘안전’과 ‘건강’을 포함시킨다. 2013년 말에는 여성젠더건강종합계획을 수립했고 2012년부터 서울시에서는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건강사업이 시작됐다. 첫해에는 도봉구에서 지역여성건강네트워크를 만들어 여성건강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금천구에서는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여성을, 은평구에서는 돌봄근로자여성의 건강시범사업을 진행했다. 2013년에는 6개구, 이듬해는 8개구로 확대됐다. 성동구에서는 여성노인을 대상으로, 동대문과 마포는 전통시장근로여성으로, 강동구는 장애여성건강사업으로 3년 이상 해당 여성의 노동조건과 젠더가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거점의 다양한 공동체적 노력과 시범 사업에 집중해 대안을 모색해왔다. 작년부터는 중구와 중랑구에서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한 건강사업이 시작되었고 올해 다문화가정여성의 지역 등이 새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이 사업은 ‘찬밥’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건강사업은 해마다 삭감돼 뒤늦게 살아나고 죽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서울시 취약여성 건강관리사업’이 됐다. 마치 예전의 요보호여성이나 모자보건사업에 칼을 대지 못하는 것처럼 불쌍한 취약계층 사업이 됨으로써 명맥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년 예산에는 이마저도 사라졌다. 소생활권건강생태계사업에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됨으로써 여성건강이라는 사업이 사라진 것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소생활권건강생태계사업은 주민들이 건강의제를 발굴해 소모임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든다는 사업이다. 개인의 유전과 행태 중심에서 지역 사회가 건강정책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성건강문제는 주민건강공동체 사업과는 다른 문제다.

건강에서 젠더는 매우 핵심적인 변수다. 주민참여라고 하면 될 일을 모든 서울시 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40%로 하라는 조례를 만드는 이유는 젠더불평등이 자연스럽게 교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의학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쓰여졌듯이 건강문제를 성인지적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 같은 시장상인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상인은 남성상인과 다른 사회적 관계와 노동조건, 신체조건의 차이 등으로 다른 건강문제를 야기한다. 마찬가지로 보육교사나 다문화여성들의 건강문제도 매우 복합적인 젠더문제가 있다. 지금 서울시에는 여성건강정책이 없다. 서울시의 건강사업 중 여성 관련된 사업은 여성가족정책실의 마을중심 여성건강카페 화음 운영 및 지원, 저소득 청소녀 건강지원, 시립청소녀 건강센터 운영이 전부다.

지역에서 여성건강 사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지역사회에 젠더 감수성을 가진 여성건강운동주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정책이 주체를 발굴하고 연구와 지원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할 과제이지 슬그머니 사라지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서울시 예산의 1.4%밖에 안 되는 건강사업의 낮은 비중 속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출산과 모자보건, 취약계층으로 남아 있을지 성평등정책의 당당한 주체가 될지는 이 사업의 존폐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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