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관계도 ⓒ여성신문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관계도 ⓒ여성신문

2012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사측, 피해자에 불리한 조치

정부·검찰 4년간 손 놓고 방치

그래도 피해자는 포기 않는다

“직장 성희롱 문제 제기하고

정년퇴직하는 선례 만들겠다”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지만 공권력이 4년째 방치해온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직장 내 성희롱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자들이 관여하는 경우가 흔하다.

르노삼성자동차 내 성희롱 사건은 기업과 기업 임직원 등이 성희롱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동료를 보호하기는커녕 악의적 소문 유포, 징계, 대기발령 등 집요하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피해자는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후 불리한 조치를 금하고 있는 현행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에도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검찰마저 수년째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의혹도 제기됐다.

“기업·임직원·인사팀이 2차 가해”

회사 팀장이 피해자 A씨를 상대로 성희롱을 시작한 때는 2012년부터다. 퇴근 시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강권하고 “강릉에 둘이 놀러가자”는 등의 말을 하는가 하면, 피해자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저녁을 먹고 가자면서 고소인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했다. 다음날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개인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팀장의 성희롱이 1년 여간 지속되자 A씨는 2013년 회사 측에 신고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돌아온 것은 임직원들과 회사의 불리한 조치였다. 임원의 조직적 따돌림, 조사를 담당한 인사팀 직원의 악성소문 유포, 기업 측의 낮은 인사고과 부여, 업무배제, 징계, 직무정지·대기발령, 정당한 법적 구제 행위의 방해 등이다.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도와준 회사 동료까지 징계받았다.

피해자는 성희롱 가해자와 부서 담당 이사, 인사팀장, 르노삼성까지 민사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르노삼성은 다시 피해자들을 상대로 수년째 불이익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

민사 항소심서 승소...“회사·인사팀원 등 불법행위”

민사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2015년 12월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에 대해 문제제기한 후 기존에 수행하던 전문 업무에서 공통업무로 부당한 업무배치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 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을 위반한 불리한 조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성희롱 사건의 조사를 맡았던 인사팀 직원이 피해자에 대해 부정적인 해석을 덧붙여 사건을 주위에 언급한 것에 대하여 조사자로서 비밀유지와 공정성의 의무를 저버린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회사의 불리한 조치에 대해서는 민사 법원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부당 징계가 있었다고 결정하며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일지 ⓒ여성신문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일지 ⓒ여성신문

노동부는 4년째 묵묵부답...공소시효 임박

이어 피해자와 르노삼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6개 여성단체는 고용노동부에 르노삼성을 고소·고발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 불리한 조치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수사권을 가진 고용노동부와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고소장을 접수하고도 결정을 미루고 있다. 최근 5년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불리한 조치 고소 현황을 보면 총 26건 가운데 유독 르노삼성자동차 3건만 ‘처리중’으로 남아있다. 고용노동부의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고소·고발 건은 2개월 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있다.

올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의원은 “검찰의 경우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고용노동부가 검찰에 넘긴 사건이 26건인데 그 중에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단 2건에 불과했다”면서 “전반적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서 검찰이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송옥주 의원도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지 않고서야, 4년째 이럴 수는 없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다같이 공소시효 끝나기만 바라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공소시효는 사건 발생을 인지한 시점부터 5년이기 때문에 2013년부터 시작된 회사측의 불리한 조치에 대해 내년 2월이 지나면 소를 제기할 수 없다.

직장 내 성희롱 현주소 그대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 상당수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퇴사를 하지만, 르노삼성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희롱과, 사측의 지속적인 불리한 조치를 견디면서 6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의 201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관계기관에 신고한 피해자 중 72%는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나 결국 직장 내 성희롱이 피해자들의 고용단절로 이어진다.

공대위에서 활동하는 한국여성민우회 류형림 활동가에 따르면 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에 2013~2016년 접수된 불리한 조치 상담건수가 333건인데 비해 지난 5년간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다룬 사건은 25건 뿐이고 기소된 사건은 단 2건으로 8%에 불과하다. 류 활동가는 “많은 사업장에서 성희롱을 문제제기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할기관의 조치가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르노삼성 피해자는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이겼음에도 형사소송은 수년째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회사측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변호를 맡고 있는 이종희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고 정년퇴직하는 선례를 만들겠다”면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대위는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가 겪는 고용 상 불리한 조치가 집약적·종합적으로 나타난 사례”라면서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문제제기를 막는 불리한 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