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여성학적 성찰』 이동옥 / 한국학술정보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여성학적 성찰』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여성학적 성찰』

최근 ‘영포티’(Young forty) 논쟁이 뜨겁다. ‘그래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고 비판을 하지만 이제 40대는 자신들이 더 이상 진부한 구닥다리 40대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들은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의 소비자이며 창조자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젊음에 열광하는 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 나이차별(ageism)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작년 필자가 만난 젊은 활동가들은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나이차별 때문에 힘들다. 시니어 운동가들은 우리에게 창의성을 기대하지만, 우리는 바쁜 업무에 눌려 열정도 사라지고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들은 요구만 할 뿐 우리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시니어들은 단체나 그룹 안에서 어느 정도 힘을 갖춘 권력 계급을 의미할 때가 많다. 젊은 활동가들을 괴롭히는 것은 나이 차별이라기보다는 계급차별일 때가 더 많다. 성차별이 여성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듯, 인종차별이 흑인들(백인이 아닌)에 대한 차별이듯, 나이차별은 ‘나이듦과 노인들’에 대한 차별이다. 이런 현상들은 ‘나이차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단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시점에서 필자는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여성학적 성찰』에 주목했다. 저자 이동옥은 우리가 “젊어지려고 나이를 가리고 지울수록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하며 젊음을 회복하기 위해 질주하는 우리사회의 담론들에 관해 성찰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성차별과 나이차별이라는 교차적 억압에 놓여있는 노인여성들이 어떻게 노동, 섹슈얼리티, 가족을 다르게 경험하는가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성차별이 심한 사회는 여성의 몸은 ‘아이 낳는 몸’과 ‘성적 대상’으로만 규정한다. 역사는 그런 사회 안에서 노인여성은 쓸모없는 존재이거나 추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지혜롭고 독립적인 여성들은 무시무시한 마녀로까지 취급됐다.

이동옥은 우리나라 드라마 속 노인여성들을 분석했다. 늙은 여자들(시어머니)은 무례하고 폭력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여성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경제활동을 하며 독립적으로 혼자 사는 노인여성은 자식 복 없는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손자 양육을 하며 모성을 수행하는 할머니들을 그저 의존자로 그려 냄으로써 그들의 능력과 지혜를 평가절하 한다. 그는 성차별, 노인차별 사회의 일그러진 시선을 비판한다. 게다가 노인 관련 담론은 노화방지의학이나 질병예방 혹은 관리 등 외모에 치중하고, 나이 듦을 극복해야 하는 것, 지연시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시켜서 오히려 늙어가는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이동옥은 노인여성들의 겪는 차별 경험들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노인은 타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을 깨닫는다” “젊은 남성의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진 빠른 속도라는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이 영원히 독립적이라는 허구를 드러낸다”. 문명에 저항하는 아프리카 선주민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을 함께 하는 노인들의 지혜다.

이동옥은 노인여성이 인간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섹슈얼리티에서 배제됐다고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새롭게 섹스에 개념을 발굴해 낸다. 그는 쓰지 신이치의 슬로 섹스와 패스트 섹스를 인용하며 섹슈얼리티를 삽입 섹스로 이해하는 전형성에 문제제기를 한다. ‘패스트 섹스는 성애시간을 최소화해 상대의 몸을 빨리 관통하는 것이라면 슬로 섹스는 느리고 완만한 과정으로 느슨함, 흔들림 틈새를 회복하여 타인의 몸과 기분 좋게 소통하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구체적이다.

이 책은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용감하다. 이 책은 나와 다른 세계와 접속해서 상상력을 확장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당연한 듯 일상화시킨 나이차별을 낯설게 바라보게 해 인권의 영역을 확장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이동옥은 모든 인간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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