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이라도 편히 쉴 수 있다면

경찰의 단속도 없고 업주의 횡포도 없는 한적한 시골에 빨간 벽돌집을 짓고 친구들과 함께 여생을 보낼 수만 있다면… 수십년간 매매춘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어느새 노년에 접어든 매춘여성들. 그들이 꿀 수 있는 마지막 꿈일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작업에 한창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이다.

~11-2.jpg

◀ 지난 3월 장기쉼터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주점에서 문애현수녀(왼쪽)가 열심히 일한 막달레나의 집 식구에게 상을 주고 있다.

매춘여성들의 노후를 위한 장기쉼터를 짓고 있다는 소식에 막달레나의 집을 직접 찾았다. 용산역 부근 골목의 한 초록대문집에 들어서자 강아지 브랜디가 먼저 맞았다. 쉼터라기보다는 가정집같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더위를 식히라며 팥빙수를 손수 만들어 살갑게 맞아주는 식구들의 모습도 평범한 한 가족 같았다.

국내 첫 매춘여성들을 위한 쉼터로 문을 연 막달레나의 집(대표 이옥정)이 장기쉼터라는 또다른 시도를 계획했을 때 주위에선 모두 말렸다. 하지만 마침내 지난 4월 장기쉼터 건립을 위해 첫 삽을 떴다. 평소 나이든 매춘여성들을 위한 장기쉼터의 필요성을 역설해 오던 이옥정 대표가 마침내 ‘사고’를 친 것이다.

40대만 돼도 노인, 1만원 벌기도 어려워

현재 서울 근교에 마련된 부지에 빨간 벽돌집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고 계획대로라면 8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공사에 필요한 비용도 모두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왜 계산도 없이 무모한 짓을 시작했냐고 할지 모르지만, 16년 동안 매춘여성들과 함께 생활해온 이옥정 대표에게는 절박한 문제였다.

“오랜 세월동안 매춘을 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스스로 그만두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 다시 이 곳에 찾아드는 걸 보고 그들을 위한 안식처와 전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장기쉼터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정작 아무도 이 일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죠.”

매춘여성들은 40대만 돼도 노인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잘하면 업소에서 펨푸가 되어 아가씨 관리나 호객 행위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젊은 여성들이 받기 싫어하는 술취한 남성이나 콘돔 사용을 꺼리는 남성들을 상대해야 한다. 1만원 정도를 벌기 위해 남성들의 온갖 요구를 받아줘야 하고 심지어 성적 학대는 물론 감금당하고 구타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년이후 그들이 가장 원하는 건

매춘생활로 얻은 병을 치유하고

외로움 달랠 수 있는 지지집단이다

노년에 갈 곳 없는 매춘여성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매매춘업소에서 뒤치닥거리를 하며 연명하는 여성, ‘자취’라고 해서 업소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매매춘을 하는 여성 등 적지 않은 숫자가 여전히 집창 지역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매매춘을 그만두면 이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식당일이나 간병인, 파출부 같은 일도 이들에겐 쉽지 않다. 배운 게 없고 문맹인 경우도 많아 가전제품 조작법도 제대로 모른다. 막달레나의 집 세탁기도 몇 번을 망가뜨렸는지 모른다.

가족이 있어도 버림받는 경우도 많다. 어렵게 돈 벌어서 대학까지 보내도 나중에 자식들이 엄마를 부끄러워하며 같이 살기 꺼리는 경우도 있고, 또 자식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겨온 이들은 평생 비밀로 하기 위해 노후에도 자식들 곁에서 보내기보다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어한다. 그래도 명목상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일반 양로원이나 부녀복지시설에도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따로 있다.

“나이든 매춘여성들 중에는 간혹 저축한 돈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어요. 그들에게 임대아파트라도 얻어서 지긋지긋한 이 세계를 떠나라고 해도 싫대요.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외로워서 못 산대요.”

아무에게도 열어보이지 못하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자기들 끼리는 모였다 하면 욕지거리에 옛날 고생한 얘기로 왁자지껄 수다를 늘어놓지만 이 곳을 떠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공포’다.

@11-1.jpg

▶ 막달레나의 집 초록대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무국 식구들, 왼쪽부터 백재희씨. 이옥정 대표. 엄상미씨. <사진.전성현>

“탈매춘을 하고자 하는 중년 이후의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오랜 매춘생활로 얻은 병을 치유하고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지지집단이에요. 비슷한 삶의 경험을 가진 성원들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위해 새롭게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장기쉼터는 15명 정도 규모로 시작할 계획이다. 40대 이상의 전직 매춘여성으로 갈 곳 없는 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쉼터 수용인원이 15명이라고 하면 고작 그 정도로 사회가 달라지냐고 콧방귀를 뀌기도 해요. 하지만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명의 매춘여성이라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을 뿐더러, 이번 장기쉼터가 첫 출발이 될 수도 있고 매춘여성들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최근 해묵은 공창제 논쟁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매춘여성들의 현실을 아는가 반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매매춘을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매춘여성들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매매춘을 당당한 직업으로 생각하거나 그 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경찰 단속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는 말들이에요. 이런 걸 보고 매춘여성들 스스로도 공창을 원한다느니 하는 건 그들의 처지와 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공창으로 특정지역을 관리하면 인적사항이 다 드러나고 그야말로 매춘여성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매매춘을 공창화하고 직업화한다고 해서 누가 그걸 떳떳한 직업으로 인정해 주겠습니까. 매춘여성이었다고 하면 누가 그것도 직업이니까 우리 며느리 하자고 말하겠습니까. 지금도 10대 매춘여성들은 집에 자신의 일이 알려지는 걸 제일 싫어해요. 빚이 몇 천만원으로 불어나도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엄두를 못내요. 부모에게 알려지면 다시는 부모한테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대표는 법 집행을 제대로 해서 업주의 횡포나 인신매매 등의 인권유린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공창을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못 박는다.

요보호 여성 벗어나 평범한 노후 맞고 싶다

막달레나의 집이 처음 장기쉼터를 계획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막막했다. 돈도 문제였지만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의 적은 힘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과 외로움도 컸다. 그러나 요즘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은 마음이 흐뭇하다. 지난 3월 장기쉼터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주점을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보내준 성원과 가끔씩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힘내라며 보내오는 편지 때문이다.

“이 활동을 하면서 외로울 때도 힘이 빠질 때도 많았어요. 많은 편견의 벽에 부딪칠 때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어디에선가 조용히 지지를 보내주는 이들이 있다는 데 다시 힘을 얻습니다.”

이옥정 대표는 장기쉼터를 위해 사재를 다 털었다.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노후에 그곳에 가서 살 거니까 내 노후 대책을 마련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이 곳 식구들과) 내 삶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막달레나의 집이 장기쉼터를 건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정부부처로부터 노인시설로 인가를 받아 지원금을 신청해 보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인가를 받으면 어떤 곳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주민들의 반대도 일어날 수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매춘여성들이 자유롭게 찾을 수 없고 수용기간에도 제한이 있다”며 순수 민간단체 시설로 남기를 고집한다.

항상 ‘요보호 여성’으로 처벌과 규제의 대상이었던 매춘여성들. 마지막 노년이라도 평범하게 보낼 수 있는 장기쉼터, 그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의 꿈을 위해 함께 문을 두드려줄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막달레나의 집은

문애현 수녀와 이옥정씨가 1985년 용산역 매매춘지역 부근에 국내에선 처음으로 매춘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열었다. 현재 이옥정씨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매춘여성, 유흥업소 종사자, 10대 가출 여성, 피난처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전업 상담, 성폭력 피해여성 및 미혼모 상담, 한글 교육, 검정고시 준비 등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막달레나, 막 달래나?>(개마서원)를 출간했고 올해부터 사무국을 열어 8월에는 막달레나의 집 활동과 식구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성매매 문제를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02)794-8384

<관련기사>

▶ 장기쉼터 ‘시골집’ 벽돌 하나 올립시다‘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