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열정에 매료된 소녀들이 있으니…우리 곁에 고정희는 영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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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희 시인 10주기 추모행사에 맞추어 문을 연 고정희넷(www.gohjunghee.net).

고정희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대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들어와 듣게 된 ‘국어와 작문’이라는 과목에서 그의 단편을 읽은 것이 처음이었다. 그 때 읽었던 작품은 지금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고 가물가물한데 당시 그 수업을 가르치셨던 교수님께서 고정희란 작가를 얼마나 강조하셨는지는 기억이 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글에는 어떤 것이 녹아있는지,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른 소설들과 달리 긴 시간 동안 강의하셨던 것이 나에게는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머리속에 박히게 되었다.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고정희를 만났다. 그의 글을 갑자기 많이 읽게 되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생전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후에 그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 추모행사라고 해서 굉장히 엄숙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분위기일까봐 약간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참여한 몇 안되는 추모제는 엄숙한 검은 양복의 남성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끄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었다. 그러나 이 추모행사는 달랐다. 그를 추모하는 내용에 있어서의 엄숙함은 여느 추모행사와 다르지 않았지만 이 추모행사에는 개성이 있었다. 그를 만났던 사람이 다양했던 만큼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방식도 글도 말도 다 달랐다.

추모사를 채 끝맺지 못하고 울먹이는 진지한 사람도 있었으며 자유로운 춤과 노래로 그를 추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 그가 떠난 후 지금의 삶이 어떠한가를 보고하는 성토대회도 있었으며 고정희를 알게 된 지 불과 몇 달이 안된, 그러나 그를 친구처럼 느끼고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이정표를 세우려고 하는 ‘소녀들’도 있었다.

그의 시를 잘 알지 못하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던 나는 그를 그리워하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말과 표현을 보면서 이 추모행사에 진심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항상 무엇에 앞장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고정희는 대단하며,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고정희의 시를 인터넷으로, 책으로 읽으면서 그를 재발견하고 그의 정신과 그의 뜨거운 열정에 매료되는 수많은 소녀들이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고정희는 영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봇물’을 텄으니 이젠 그 물에 몸을 담그는 일만이 남았다.

권현민/이화여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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