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랑은 바로 이런거야

@16-3.jpg

우체국에 근무하는 19살 고아 청년 토메크(울라프 루바첸코)는 밤마다 망원경으로 건너편 아파트의 마그다(그라지나 자폴롭스카)를 훔쳐본다. 그녀는 30대의 분위기 있는 화가. 성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훔쳐보기는 사랑으로 변해간다. 토메크는 송금 통지서를 위조하여 마그다를 우체국에 오게 만들고,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애인과 관계를 맺으려 하면 거짓 가스 신고로 훼방을 놓는다. 우유 배달부로 위장해 마그다에게 접근해 사랑을 고백하나, 마그다는 진정한 사랑은 없다며 천한 유혹으로 응수한다. 절망한 토메크는 자살을 기도하고, 뒤늦게 마그다가 토메크의 집을 방문하는데.

성에 눈 뜰 나이의 청년이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그래서 적당히 지쳐있는 중년 여인을 훔쳐보다 진짜 사랑에 빠진다.

이 간결한 정리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Love>(연불, 스타맥스)을 진부한 연상녀, 연하남 이야기로 지레짐작하지 말기를. ‘유럽 최후의 거장’이라는 말을 듣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는 일상사로부터 심오한 인생의 의미를 끌어낸다. 그것도 아주 쉽고 간결하게.

우리나라에는 <블루> <화이트> <레드>의 삼색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감독인데, 그의 진면목을 보려면 10부작 TV물 <십계>를 먼저 보아야 한다. 성서의 십계명을 현대인의 일상사를 통해 묻고 재해석한 <십계>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음미하며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집이다. <십계> 시리즈 중 6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간음하지 말라’를 극장용으로 다시 만든 것이 1989년 작인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다. 물론 이 영화는 간음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갈등과 충돌, 그중에서도 각자의 삶을 규정짓는 사랑에 관한 정의와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훔쳐보기로서의 사랑은 알프레드 히치콕을 정점으로 사랑 영화의 인기 소재인데, 사랑 자체를 진지하게 다룬 것으로는 빠뜨리스 르콩트의 <살인혐의>와 더불어 <사랑에…>가 최고작이라 하겠다. 단조로운 공간과 적은 등장인물만으로 이처럼 의미있는 주제를 끌어내는 두 감독의 역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랑에…>는 폴란드 영화제 대상을 비롯하여 산 세바스찬, 시카고, 제네바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키에슬롭스키 영화의 콤비인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음악 역시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