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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여성운동의 새 패러다임을 모색하며 떠난 지리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정희 시인을 기리는 작업이 활발하다.

또하나의 문화에서는 6월 8일 고정희 추모 심포지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에게>를 시작으로 ‘소녀들의 페미니즘’이 벌이는 추모제 그리고 이어 그의 고향인 해남으로 떠나는 추모여행 등을 계획하고 있고 고정희의 삶과 작품을 엿볼 수 있는 고정희넷이 6월1일 오픈됐다. 또한 시인 나희덕이 쓴 고정희 론이 주목을 끈다.

이번 작업들은 여성운동가로서 고정희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세대를 초월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관련기사>

▶ 그는 여전히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 나희덕의 글을 통해본 고정희

▶ 소녀들, 고정희를 부활시키다

▶ 페미니즘 실천, 여성밴드 ‘런 라이엇’

▶ [시] 여자가 되는 것은 사자와 사는 일인가

그는 여전히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나희덕의 글을 통해본 고정희

나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현실과 예술의 혼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위기와 지성의 뿌리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현실과 예술의 혼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삶과 이데아는 동전의 안과 밖의 관계이다. ‘현실’이라는 렌즈가 곧 꿈의 광맥을 캐는 도구인 것이다. 탐사는 계속될 것이다.”

고정희가 시집 <눈물꽃>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현실은 그의 시가 치열하게 더듬었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고정희의 시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이로 인한 민중의 아픔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삶이 안고 있는 질곡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이것을 넘고자 했던 강한 실천의지 역시 깊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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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희덕은 얼마 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발표한 ‘시대의 염의를 마름질 하는 손’이라는 제목의 고정희론에서 “80년대를 온몸으로 돌파해낸 정신의 족적에 경의를 표”한다며 “서정시의 좁은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을 부단히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부정의 현실 속에서 정치적으로나 성적으로 금기시되던 시적 언술들을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그 선구적 역할을 인정받기 충분하다”고 했다.

초기엔 기독교적 세계관 하의 현실을 노래하다가 이후 민중적 제의를 시형식으로 끌어들이고 결국 여성주의 시로 시세계를 넓혀간 고정희 시를 두고 나희덕은 고정희의 시 화두를 기독교, 민중 그리고 여성으로 본다.

나희덕에 따르면 고정희에게 있어 여성문제가 본격적인 주제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부터이다. 여성성에 대해 다소 낭만적으로 접근했던 초기시와 달리 이때에 이르면 그가 상정한 여성성의 원형인 어머니는 수난받는 여성의 대표이자 역사적 해원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것. 고정희는 분단의 슬픔이라는 현실과 여성의 역사를 결합시켜 민족의 문제를 생각케 하는 ‘넷째거리-진혼마당’‘사람의 본이 어디인고 하니’등의 시를 썼다.

이후 고정희는 <여성해방출사표>(1990)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을 드러내며 다양한 시적 방법론을 구사하게 된다. 신사임당, 황진이 등과 서신을 나누기도 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기면서 여성주의 시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

그러나 고정희에게 있어 민중이냐 여성이냐, 실천이냐 이론이냐, 문학이냐 운동이냐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오랫동안 고민거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한편에서는 여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머슴아들에 치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의 고통을 가볍게 아는 기집아들에 치이면서”라는 조한혜정 교수의 조사(弔辭)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자가 문제라도 민중인 여성이 문제라는 틀 안에서 생각했던 고정희는 이후 필리핀, 타이 등을 돌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여성들을 만나면서 기존 민중운동의 가부장성과 경직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운동을 어떻게 민주화운동과 결합시킬까, 더 나아가 여성운동이 어떻게 전체 민주화운동의 토양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여성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 나간다.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혁명’은 그가 찾은 새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본격적인 실천을 앞에 두고 지리산 뱀사골에서 마흔셋의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다.

나희덕은 “그의 유고시집을 읽다보면 … 스스로의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보는 시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 창조적 균열을 좀더 심화시켜야 할 시점에서 그는…홀연 사라지고 말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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