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김부남 사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어렸을 때의 성폭행 후유증으로 결혼 후에도 긴 세월 동안 고통받다가 가해자를 살해한 김부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김씨를 지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린이 성폭행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고 지원체계와 치유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92년 김보은·김진관 사건

두 딸을 지속적으로 강간한 친아버지가 항소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은 사건과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우리 사회의 근친 성폭행 문제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성폭력상담소는 이들 사건에 주도적으로 결합, 여론화 작업에 주력하여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해 다음 해 9월 법 제정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94년 서울대조교 성희롱 사건

그동안 은폐되어온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최초로 법정소송함으로써 성희롱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불쾌감과 모욕감을 주는 행위이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일터에서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노동권의 문제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성폭력상담소는 공대위를 꾸려 99년 최종판결까지 지원했다.

95년 홍여인 강간범 상해치사 사건

강간을 피하려다 강간범을 상해치사케 함으로써 과잉방어냐 정당방어냐 논란을 일으킨 홍여인 강간범 상해치사 사건에 적극적으로 결합, 법적 지원 등을 통해 1심에서 내려진 선고 징역 2년6개월형을 뒤집고 ‘처벌할 수 없는 과잉방어로서 무죄’라는 판례를 끌어냈다.

97년 문방구 할아버지 아동 성추행 사건

문방구 할아버지에 의한 아이들 성추행 사건은 남아 성추행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종결지어졌지만 전체 피해사례 가운데 3%에 달하는 남아 성추행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한편 이 해에는 교사에 의한 초등학생 제자 성추행 사건을 지원하여 최초로 현직교사 법정구속 1년의 성과를 얻어냈다.

2000년 장원 성추행 사건

장원교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격려를 보내는 시민도 있었지만 협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성폭력상담소는 사건 직후부터 경찰·검찰 조사과정에서의 동행 및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주력하여 유죄판결을 끌어냈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폭력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의 단면을 드러낸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2001년 혜진스님 사건·군대내 성추행 사건

나눔의집 원장 혜진스님 사건은 성직자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여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저항을 불능케 할 폭력과 협박이 없는 한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을 확인시켜 준 계기였다.

한편 장군이 여군소위를 성추행한 군대내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에 널리 알리고 대책을 촉구, 군대내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예방교육비디오 제작, 정규교육 실기 등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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