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한국 최초 성폭력 전문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기 전만 해도 성폭력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겪는 특수한 일이거나 입밖으로 발설해선 안되는 금기에 속하는 영역이었다. 성폭력 사건으로 고통받는 피해여성이 적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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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성폭행 문제를 제기한 김보은·김진관 사건 (좌), 어린이 성폭력의 심각성을 널리 알린 김부남 사건 (중),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사회 이슈화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우)

조중신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총장은 “1991년 4월에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두달 전부터 10년 전, 20년 전의 한맺힌 사연은 물론 시급한 위기상담까지 성폭력 피해상담이 쇄도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건수는 2001년 4월 30일 현재 2만1106건에 달한다. 또 94년 위기센터 개설 후 24시간 위기상담 접수에 따라 상담이 31% 급증했으며 99년 남녀고용평등법 내 직장내성희롱 조항,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직장내 성희롱 상담 및 전체 상담이 20% 증가했다. 그리고 현재 전국에 72개소의 성폭력상담소가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계량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남긴 성과는 무엇보다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금기에 속하던 성폭력 문제를 가시화하여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 이슈화하는 한편 성폭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는 점이다.

장필화 교수(이화여대 여성학)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였던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피해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또 남성들에게는 자신이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사회 전체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고 한국성폭력상담소 10년의 성과를 평가했다.

한편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담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며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 것도 성폭력상담소의 역할이었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았던 김아무개(28)씨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부모에게조차 말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상담소를 찾았는데, 내 잘못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나의 느낌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여전히 견고한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편견과 법·제도적 미비로 인한 어려움은 적지 않다.

일단 성폭력 사건이 친고죄이고 고소 기간이 1년인데 피해 여성이 혼란을 수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짧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한 대부분 증거가 불충분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사실을 입증하기가 너무도 어려워 이를 밝히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연합 등과 현행 성폭력특별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정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담소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이다. 1994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따라 재정 지원을 받게됐지만 현재까지 각 상담소마다 1년에 4800만원이 지원될 뿐이다. 상근자 수나 규모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책정된 금액이다. 피해자 상담과 치유에 집중해야할 상담소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대사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후원의 밤이라든가 자료집을 제작해 판매하는 등 별도의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전한다.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은 인력의 이동을 부추겨 업무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성폭력피해자 쉼터의 경우 6개월 한시적으로 기초생계비만 지원돼 대부분 근친성폭력 등으로 오갈데 없는 피해자들이 충분한 기간에 걸쳐 상처를 치유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학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상담소측은 전한다.

이와 함께 상담소가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료진, 경찰과의 연계망이 확충돼야 함은 물론 헌신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법률전문가 등 전문인력들의 도움도 절실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편 지난 5월 29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조병두국제홀에서는 성폭력상담소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와 함께 성폭력추방 운동상 시상식이 마련됐다.

10주년을 맞아 제정된 ‘성폭력추방운동상’은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의 우조교가 수상했다. (02)576-7128 www.sisters.or.kr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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