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여성운동가]

미래지향적 여성운동 새 모습 정립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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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60) 한국여성재단 광주네트워크 대표는 “여성운동은 여성운동가 자신이 철학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그래서 그를 두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한영 회장이다”라고 전남대학교 노성만 총장은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성을 가진 전문인이 되어야 하듯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수퍼우먼이 아니고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리는 여성운동가가 되기 쉬워 진정한 여성운동을 전개할 수 없다.

“여성운동가란 여성사회를 위해 밀알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행동으로 실천하고 앞장서야 한다”고 부르짖는 한 회장은 고학력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미흡한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는 1966년 6월 24일 당시 대한여학사협회 광주지부(현 한국여학사협회 광주지부)를 창설하고 초대 총무를 맡은 것으로부터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7년 한국여학사협회 광주지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여성의 재교육을 위한 ‘여학사교실’을 운영 여성의 잠재한 것으로, 능력 개발과 여성의 의식화운동, 여성의 인간화 운동을 전개했다.

부인 외조 잘하는 남성 선정해 시상도

그 중 하나가 한국 최초로 여성이 남성에게 주는 대륜상(大倫上)을 제정해 시상한 것으로, 올해 21회째 수상자를 내기도 했다. 대륜상은 여성의 인간화 운동에 부응해 부인에게 헌신적으로 봉사를 한 남편에게 주는 상이다.

또한 1978년에는 최초로 노인대학을 운영하여 1년 과정의 수료자를 250여명 배출시키기도 했다. 현재는 광주 전남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대한어머니회 광주지회 회장을 맡아 지역사회 내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엄격한 한학자 집안의 5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난 한 회장은 전주여고를 졸업하고 1961년 집안어른들의 법대 진학 권유를 뿌리치고 전남대 문리과대학 정치과에 여학생으로서는 개교 이래 최초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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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음란정보 지킴이 발대식에서(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한 대표).

일찍이 여고시절부터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정치지망생이 된 것은 여성운동가로서의 자질을 본인 스스로 체득한 때문이다.

대학 재학 중 6·4 한일외교회담 반대시위에 앞장서는 등 남학생들의 성역이나 다름없는 정치학과에서 나름대로의 위상을 확고히 하며 미래의 여성지도자, 여성운동가, 정치가의 꿈을 키우며 준비했다.

전 교육부장관인 오병문 총장은 “한 회장은 지도자적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 한 가지 예로 학생신분으로 난국수습타개 성토대회에서 학원사찰 금지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여 교수, 학생, 직원들을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다”고 전한다. 학위논문 역시 ‘여성의 사회참여 연구’라는 주제로, 지역 여성단체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여성운동의 선구자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남대 정치과에 최초 여학생으로 입학

20대 중반에 공화당 전남도지부 부녀조직 간사로 사회조직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현실정치와 조직관리를 익히기도 했다.

특유의 유연성과 외유내강이 몸에 배인 그는 그때부터 정당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역여성들을 위한 정치참여와 사회기틀 마련에 앞장서는 여성운동가로서 헌신적 봉사를 해왔다.

1969년 정당 생활을 마감하고 전라남도 보건사회국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여성행정공무원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데 앞장서 그의 애칭은 맹렬공무원이었다.

지난 세월을 얘기하던 한 회장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에서 힘겨운 중책을 수행하면서 눈물겨운 일도 많았지만,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시민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 도덕성 회복운동이나 건강한 가정만들기 실천운동, 사회질서 확립을 위한 각종 활동에서 얻은 보람이라면 지역발전에 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1993년 3월 광주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장 시절 그는 여권신장 및 평등사회 구현을 위해 헌신한 여성지도자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무등여성대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사회사업 활동에도 여성들을 참여시켰다. 1972년 지역여성독지가 18명으로 조직된 한국어머니장학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30년 동안 모은 사재 1억1천만원을 중고생 881명에게 장학금으로 내놓는 등 장학금 지급운동도 펼쳤다.

손길 필요한 곳엔 언제든지 달려갈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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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재단 광주네트워크 발족식에 참가한 한 대표.

1983년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상임위원, 광주지역여성협의회장, 평통통일기금 조성위원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통일사업에도 참여했다.

1996년 7월 30여년간 일관되게 여성운동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명예를 안은 그는 “국민훈장 동백장은 여성운동 차원에서 여성복지 증진과 여성사회참여 확대 등 여성운동 현장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의 영광에 앞서 지역여성계의 경사로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또 “신념을 가지고 여성운동에 앞장서는 여성의 수가 늘어 날수록 여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더욱 바라는 것은 특색있고 전문적인 여성운동을 활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회장은 지난 4월 17일도 대한어머니회 광주연합회장 이름으로 250만원을 북녘동포 경운기 보내기 운동에 기탁했는가 하면 지난 1998년 사단법인 21세기여성발전위원회에 여성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1000만원, 2000년 5월 18일에는 한국여성기금추진위원회에 1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또한 열악한 여성단체를 이끌어 가면서도 그는 기꺼이 사재를 털고 건물을 무상대여 해주기도 했다.

“이제는 여성운동의 참모습을 확실히 보여줄 여성의 시대가 온 것을 실감한다”는 한 회장은 “의뢰적이고 의타적인 여성운동 차원을 벗어나 진정한 시민운동이요 진정한 여성단체로서 의식을 전환하고 새로운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새 시대의 조류를 앞서가는 미래지향적 여성운동가로서 더욱 노력할 것이며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가 봉사할 각오가 서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운동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오늘에 이른 그는 젊은 사고와 행동을 지닌 실천적 여성운동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아직도 열정과 철학이 당당하게 내면에서 흐르는 지칠 줄 모르는 여성계 지도자로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광주 현중순 통신원>

한영 대표 약력

1972년~73년 광주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78년~97년 대한적십자사 광주 전남지사 상임위원

86년~91년 광주직할시 시정자문위원회 보사분과위원

89년~1993년 지방검찰청 청소년선도위원회위원

95년 12월 21일 법무부장관상(청소년보호선도 및 법죄예방활동에 기여)

99년 8월 15일 대통령표창장(국민의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개혁에 기여)

2000년~현재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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