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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는 각오로 일한다”는 울산여성회 이은미(37세)회장.

이은미 회장은 졸업 후 건강 악화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시작한 일이 도서대여점이다.

“현대중공업 앞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빌려주는 일이었어요. 현장에는 못 들어가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노동자 아내들의 어려움 보며 여성문제에 한발 다가가

그때는 89년 현대중공업의 128일 파업이 있은 직후라 구속·수배·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던 때였다. 남편들은 노동운동이라는 대의로 고생을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노동자 아내들의 고통을 보며 이은미 회장은 여성문제에 다가가게 된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던 이회장은 “내가 노동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가족들이 노동운동을 이해하고 당당한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때부터 이 회장은 노동자 가족들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여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운동이 왜 중요한가, 현실은 어떠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책을 빌리러 오던 직장인들 중 뜻이 맞는 이들과 여성동아리를 만들어 여성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그러다가 80년대를 지나왔고 직접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회전반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하던 여성들과 울산여성회 창립준비위인 ‘열린여성’을 만들게 된다. 열린여성 사람들은 지역을 나누어 맡아 소모임이나 주부대학 활동 등을 통해 회원들을 모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은미 회장은 울산여성회 창립준비위원장을 맡게 된다.

그런데 98년, 구제금융여파로 현대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뤄지던 때에 울산시민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이 회장이 구속되면서 울산여성회의 창립이 한 해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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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대 국회청원을 위한 ‘비정규직 여성권리찾기 울산지역 캠페인’에 나선 울산여성회 회원들.

울산여성회는 본부를 중심으로 울산 북구와 남구 두 곳에 지부를 두고 강좌·풍물·역사기행·연극 등의 활동을 하는 문화사업위원회, 유아교육에서 청소년교육까지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학부모 교육을 하는 교육사업위원회, 여성노동자를 위한 교육과 고용안정을 위한 제반사업까지 하는 노동사업위원회 등 분과별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교육사업위원회의 활동은 다른 사업들의 바탕이 된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엄마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 회장은 “부모들은 경쟁사회에서 내 아이를 살아 남게 하려고 사교육장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어요. 우리는 그처럼 돈을 주고 아이들을 사교육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주체가 되어 교육을 하자고 강조합니다.”라고 말한다.

엄마들이 올바른 가치관 갖는게 중요

울산여성회는 방과후 교실, 방학교실, 캠프 등을 통한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며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학부모들이 학교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아이들이 제도교육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교교육제도의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사업도 “여성문제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여성노동자들이예요”라는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노동자 문제에 대한 이 회장의 지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일을 하려니까 우선 걸리는 게 아이들 문제였어요. 그래서 우선 두 곳에 어린이집을 만들어 회원들이 운영을 했지요. 국가가 해결해 줘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이 회장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 뿐 아니라 여성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여성노동자가 노동자로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들의 큰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울산은 여성노동자 수가 적지 않음에도 대규모 남성사업장이 중심이 되다 보니 타 지역에 비해 여성노동자운동이나 여성운동의 기반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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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여성회는 제92회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호주제 폐지’등을 내걸고 거리행사를 벌였다.

여성노동자가 당당히 살아가기 위한 운동

“울산의 전체 여성 중 40% 정도가 경제활동에 참가해요. 하지만 이처럼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난 건 여성지위의 향상이 아니라 IMF이후 우선적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비정규직에 종사하게 된 여성들이 더 많아진 때문이죠.”

현대중공업 식당아줌마 144명 집단해고 때 이 회장은 아줌마들과 같이 투쟁했다.

“여자이긴 했지만 다들 생계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가장들이었어요. 그런데 여성이라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크게 반발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우선적으로 해고를 한 거예요.” 결국 식당은 노조에서 운영하고 아줌마들은 다시 일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약 1만여명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감행될 때도 해고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였고, 직장내에서 일어난 성폭력사건의 가해자를 구속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과 관련한 고용문제나 직장내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은미 회장은 대책위를 꾸려 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썼다.

덕분에 여성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들의 일상상담과 교육사업을 해왔던 울산여성회의 노동사업위원회는 마침내 지난 달 26일 ‘고용평등센터’로 발족하게 되었다.

“과격하다”느니 “여성단체가 맞느냐”라느니 등의 비아냥 섞인 얘기를 간혹 듣기도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훨씬 더 많이 듣고 있는 울산여성회.

이은미 회장은 “지금까지는 기반과 조직력이 불확실해 우리 사업에만 매달렸다”며 “이제는 통일문제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모든 문제들이 여성들과 상관 있는 문제라는 인식을 많은 여성들과 공유하고 여성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은미 회장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도태되는 사람이 여성”이라며 “거대 자본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은 자립경제인데 우리 사회에서 자립경제는 통일이 전제되지 않으면 힘들다”며 “조금씩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여성들의 주인 된 삶을 위해서 뜻있는 많은 여성단체들이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북-울산 권은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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