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밑둥살리기' 위해 발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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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지역 여성 운동가라고. 여성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학생들이나 가르치고 연구소라고 이름만 붙여놓고 친목 활동을 하는 것 외엔 정말 아무 것도 없는데…”라고 민경희 교수(충북대 사회학과, 충북여성시민문화연구소 소장)는 쑥스러워 하며 인터뷰의 첫마디를 꺼냈다.

‘변화를 꿈꾸는 여성들의 교양지’를 표방하며 지난해 겨울 창간된 <알>지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민 교수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간층 여성운동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알>

민 교수가 뜻이 맞는 학생들과 ‘충북여성시민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여성 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건 1999년 12월이었다.

“특별히 무언가 전문적인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여성들이 집단으로 자기들만의 얘기를 하고 또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만든 거였죠. 그리고 미흡하나마 그 결과물로서 나온 것이 <알>지이구요.”

<알>지의 알(卵)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여성 정체성의 핵심이며 가장 초보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들의 삶이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제목이다. 동시에 ‘알(R)’은 우리의 성적 지향성을 방향전환(Reorient)하고, 성체계를 재조직(Reorganize)하며, 남성중심적 법들을 폐지(Repeal)함으로써 가부장제에 대한 혁명(Revolution)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갱신(Renew)하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알>지가 주 독자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여성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중간층 여성운동가들이다.

“여성운동의 한가운데서 지도층과 일반 회원 사이를 오가며 애쓰는 중간층 여성운동가들의 고민을 담아내면서 현실 여성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알>이 어려운 여성학서는 아니다.

“<알>은 또한 운동가는 아니지만 어렴풋이나마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여성들에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같은 중간층 여성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관심 외에도 여성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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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집회를 준비하며. (왼쪽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민경희 교수)

민 교수는 “지역 단체 내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입장을 찾기가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라며 ‘운동가들의 중앙집중화 현상’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운동가들이 너무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어요. 지방도시 사람들은 서울로 가고 농촌 사람들은 지방도시로 가고. 배워서 자기 지역으로 가서 활동을 하면 좋을텐데. 고급 인력들이 서울로만 몰리니…”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역의 부족한 여성인력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 외에 하나의 시민단체에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겠죠”라며 답답한 듯 “<여성신문>이 상대적으로 여성운동 환경이 열악한 시골에 무가지로 신문을 공급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인다.

이어서 그는 대부분 관이 주도하는 지역여성들을 위한 교육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여성운동 인력 중앙집중화 극복해야 할 과제

“현재 이뤄지는 지역 여성 교육들의 내용을 보면 단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일 뿐이지 여성주의적인 교육이 아니에요. 그리고 재사회화 과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취미활동 수준의 교육들이 대부분이죠.” 그러고 보니 ‘여성’자가 들어간 교육들은 온통 꽃꽂이, 양재, 요리, 인터넷 초보 등 뿐이다.

“지역의 여성학 교수나 운동가들이 나서서 교육과정을 통해 여성주의적인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의 지역여성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하고 돌아와 청주대학교에서 2년 정도 근무했다. 이후 1986년에 충북대로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근무할 것이라고 한다.

민경희 교수가 가르치는 일을 하던 때는 바야흐로 민주화 요구의 열기가 사회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던 때였다. 그는 그때 민교협 회장으로 학내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학내 민주화 역시 다급한 문제였죠. 교수로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나름대로는 열심히 민교협과 전교조 활동을 한다고 했죠.”

민 교수는 현재 충북대 사회학과 여성학 연계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위 ‘돈이 안되는’학과 중 하나인 여성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여학생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면서 남학생들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의 관심도 소원하다는 것이 민 교수의 말이다.

“여성학에 대한 여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우선 의식 있는 여성 CEO들부터라도 여성을 채용할 때 여성학 공부에 대한 가산점 같은 걸 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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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대 교정에서 사회학과 학생들과 함께 한 민경희 교수. (오른쪽 네번째)

취미활동 수준의 지역여성교육 바뀌어야

현재 민 교수는 남녀합반으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처음에는 당연히 남녀합반으로 시작했었죠. 그런데 남학생 위주로 토론수업이 진행되는 거에요. 여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성대결 양상으로 흘러버리기 일쑤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소규모로 여학생, 남학생 반을 따로 만들어 가르치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여러 가지 체육수업도 한다.

“여전히 남성들과 동등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하게 자라지 못한 여학생들에게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수업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체육을 통해서는 체력단련은 물론 몸으로 부대끼며 여학생들간의 자매애를 북돋워 여성간의 조직적 유대감을 키운다는 목적도 있었구요.”

민경희 교수는 이렇게 어렵게 공부한 여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부딪치게 될 많은 어려움들을 걱정하며 “잠재된 젊은 여성인력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사회가 적어도 육아와 노인문제는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여성의 사회참여가 비로소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육아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단체들의 적극적인 대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자신의 여성운동을 ‘나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민 교수는 자기 안의 전통적인 것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며 “그런 극복을 통해 여성을 취약하게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이 되자”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여성운동의 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발로 뛰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로 측면 지원을 통해 버팀목이 되어 주는 운동가들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경희 교수는 <알>이라는 잡지를 통해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밑면(?)에서도 여성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운동가였다.

한박 정미 기자 woodfish@womennews.co.kr

민경희 교수 약력

1986∼현재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1990∼1991년 충북대학교 교수협의회 부회장

1990∼1991년 충북 민교협 회장 / 1991∼1992년 충북여성민우회 공동대표

1998∼2000년 충북지역사회연구회장 / 2000∼2002년 충북개발연구원 연구 자문위원

1997∼현재 충청북도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위원 / 2000∼현재 충청북도 여성발전기금 관리위원

2001∼현재 성 문제 대책위원회 위원 / 1995∼현재 청주 여성의 전화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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