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등 약자 향한 혐오는

실제 피해 아닌 피해의식에 기반

피해자에게는 보호 필요하지만

피해의식에는 치료가 필요해

 

 

 

며칠 전 변호를 맡고 있는 피고인 A의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협박을 받았다. 피고인 A는 청소년유해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자기가 과거에 운영하다가 지인에게 팔아서 이제는 자기 업소가 아닌데 의심을 받고 있다며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억울하다는 A도, 의심하는 검사도, 각자는 이유가 있어보였다. 검사가 범죄를 입증하고 변호사는 피고인을 변호하면, 판단은 판사의 몫이다. 모든 피고인에게는 변론 받을 권리가 있다. 혐의에 다툼의 여지도 있으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A는 일전에 사건이 잘 마무리된 유사강간의 피해자였던 C의 소개로 찾아왔다. B는 C가 잠시 일하던 유흥업소의 마담이었다. 이들은 모두 성소수자였는데, C는 B가 마담으로 있는 유흥업소에서 만난 손님에게 유사강간을 당했다. 다행히 강간 당시가 통째로 녹음된 휴대폰 녹취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 결국 합의가 됐다. 피해자에게 전해달라며 진심어린 사과 메일도 보내왔다. B는 당시 그 사건의 참고인으로 불려왔고, 거기서 처음 만났다. 그런데 B는 당사자도 아니면서 막무가내로 C가 A의 사주를 받아 거짓 고소를 한 거라며 고소취하를 종용했다. 보다 못해 그러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B는 피해자인 C와도, 강간사건의 가해자와도 별 관계가 없는 이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B는 A에 대해 깊은 원망을 가지고 있었고 끝없이 고발을 해대는 중이었다. B는 A가 자기를 해치려고 C를 B가 일하는 업소에 보낸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C가 구타당하며 성폭행을 당한 것을 고소한 것도 자기를 해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믿었다. 범죄현장 녹취가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B가 연락을 해왔다. A가 최근 애인과 헤어졌는데 그 애인이 A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A의 휴대폰을 자기에게 줬다며 검찰에 내겠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그 말을 왜 내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제의 업소가 정말 청소년유해시설이고 A가 업소의 사장이 맞다면 그에 상응하면 벌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법정드라마가 많이 늘어난 탓인지, 변호가 피고인이 해달라는 거짓말을 해주는 것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B는 내가 성매매 업주의 성매매와 강간무고에 가담했다고 고소하고 언론과 SNS에 유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기자출신이라 법을 잘 안다면서, 자기와는 상관도 없는 A의 사건을 변호하지 말 것과 자기 사건을 맡아달라는 이상한 요구들을 해왔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B의 눈에 내가 제법 유능한 변호사로 보였다는 것과 A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에게 괴롭히고 싶어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케이블TV의 사건사고 재현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는 실제 일상에서 종종 일어난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공개하거나 신상을 털고, 자기식대로 사실을 왜곡해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의 대개는 자기가 어떤 피해자라 주장하며 자기들이 하는 잘못된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들 대개는 하루빨리 불행을 딛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더라도, 자기의 억울함을 소명하느라 그 미움을 확산할 여력이 없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행복해지는 일에 고민하고 노력한다. 정작 자기에게 잘못하지도 않은 타인들을 미워하고 타인들이 모두 자기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거짓말로 사람들을 조정하려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피해자에게는 보호가 필요하지만 피해의식에는 치료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혐이나 약자를 향한 혐오 역시 실제 피해가 아니라 피해의식에 기반 한다. 피해의식으로 타자를 미워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불행이 극복되지 않는다. 행복해 자기의 행복을 꿈꾸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데 행복해질 리가 없다. 지금 한국사회의 수많은 B들에게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이 필요하다.

 

 

<‘피해자와 피해의식 사이’ 관련 반론보도문>

본 신문은 2017년 11월 16일자 ‘[세상읽기] 피해자와 피해의식 사이’ 제목의 칼럼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B씨는 “피고인 A의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협박하거나 고소 취하를 종용한 바 없고, C의 유사강간 사건은 현재 수사 진행 중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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