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벨기에 여성들, 왜 값싼 노동에 내몰리나
고학력 벨기에 여성들, 왜 값싼 노동에 내몰리나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7.11.15 02:59
  • 수정 2017-11-16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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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넌 벨기에 연방정부 노동시장 분석가

법으로 동일임금 규정해도

임금격차 사라지지 않아

‘불평등 노동, 동일 임금’이

성별임금격차의 근본 원인




대학 전공 차이부터

‘여성=돌봄’ 고정관념까지

“노동시장 불평등 바꾸기 전엔

여성은 집에 있는 게 나은 현실”

 

지난 9일 국회도서관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9차 젠더와 입법포럼 ‘성별임금격차 해소 전략 방안 모색 국제컨퍼런스’에서 앤 코이넌 벨기에 연방정부 노동시장 분석가가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9일 국회도서관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9차 젠더와 입법포럼 ‘성별임금격차 해소 전략 방안 모색 국제컨퍼런스’에서 앤 코이넌 벨기에 연방정부 노동시장 분석가가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6.7%,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늘 OECD 회원국 중 1위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면 뭘 해야 할까? 유럽연합(EU) 내에서 성별임금격차가 제일 낮은 벨기에를 보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그 열쇠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뿌리 깊은 성 고정관념을 깨지 않는 한, 성평등 노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9일 국회도서관에서 ‘제19차 젠더와 입법포럼- 성별임금격차 해소 전략 방안 모색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30주년을 맞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함께 연 행사다. 이날 컨퍼런스엔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여러 대책을 제시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스위스, 벨기에, 일본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각국의 경험과 사례를 공유했다. 

 

벨기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다. ⓒEurostat
벨기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다. ⓒEurostat

벨기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평균 6.6% 적은 임금을 받는다. EU 회원국 평균이 16.7%임에 비하면 무척 적다. 그 배경엔 ‘성별임금격차법(Gender Pay Gap Act)’이 있다. 2012년 4월 22일 제정된 이 법은 국가, 산업, 개별 기업 등 세 집단이 함께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1년엔 국영기업·공기업 등 공공 부문의 경우, 적어도 이사회의 1/3을 한쪽 성별에 할당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 제정됐다. 이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9년 동안 벨기에 공공부문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6%에서 11%로 약 두 배 증가하는 효과를 낳았다. 

 

벨기에 공공부문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9년간 6%에서 11%로 약 두 배 증가했다. ⓒEC DG Justice, Gender and Science 2012
벨기에 공공부문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9년간 6%에서 11%로 약 두 배 증가했다. ⓒEC DG Justice, Gender and Science 2012

사실 벨기에는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 정도가 낮은 나라다. 따라서 남녀 간의 임금 격차도 비교적 낮게 나타난다. 벨기에 여성의 대학 졸업률은 남성보다 높다. 여성이 학위를 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남성보다 더 짧다는 통계도 있다. 여성들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도 높은 셈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벨기에 여성과 남성의 임금 간에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앤 코이넌(Ann Coenen) 벨기에 연방정부 노동시장 분석가는 그 이유로 “불평등 노동, 동일 임금(equal pay for unequal work)”을 들었다.

벨기에에선 여성 취업률이 증가할수록 성별임금격차도 커진다. 벨기에 여성은 저임금·단기계약 시간제 노동에, 남성은 고임금·안정적 장기계약 풀타임 노동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돌봄 전담, 남성은 생계부양자’라는 해묵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낳은 결과다. 벨기에에서 25세 미만 여성의 임금은 같은 연령대의 남성보다 더 높지만, 25세부터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임금 수준이 남성보다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2014년 기준, Eurostat). 돌봄 책임이 성별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지며, 성인 여성들에게는 특정한 성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 꼭 임금 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벨기에에선 고학력일수록 성별임금격차가 더 높게 나타난다. 코이넌 박사는 여성과 남성이 선택하는 학문 영역이 다르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여학생들은 인문학, 사회과학, 복지 서비스 등을 택하고, 남학생들은 경영학, 공학, ICT(정보통신기술) 등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여학생은 졸업 후 저소득 일자리를, 남성들은 비교적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더 크다.

 

벨기에에선 고학력일수록 성별임금격차가 더 높게 나타난다. ⓒStatistics Belgium - Structure of Earnings Survey
벨기에에선 고학력일수록 성별임금격차가 더 높게 나타난다. ⓒStatistics Belgium - Structure of Earnings Survey

“근본적인 성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여성에겐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집안에 머무는 게 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고 이득인 현실”이라고 코이넌 박사는 지적했다. “벨기에 정부는 여성들이 취업에 유리하며 고소득 일자리가 많은 STEM(과학·기술·수학·공학)분야를 공부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도 남성은 구글에 취업하고, 여성은 병원 내부 컴퓨터 시스템 관리직을 얻게 되는 식이에요. 노동 시장 자체가 사실상 성별에 따라 분리돼 있습니다. 이 벽을 넘는 게 과제입니다. 이를테면 더 많은 남성들이 사회과학·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관련 일자리에 종사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이분화된(segregated) 노동 시장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적 젠더 고정관념에 따라 직업을 택하기보다, 자신의 열정을 좇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승진을 적극적으로 도울 정책도 필요하다. “더 많은 여성이 고위직에 오를수록 전체 직원의 웰빙 수준이 올라간다는 분석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와 있지요. 성평등은 단지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벨기에에서도 성평등한 노동 시장을 만드는 일이 한 쪽 성에만 치우쳐진 부담을 줄이고,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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