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성역할 구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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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재등 생활속에 뿌리박혀

평등으로 가는 길 장애 많아

“아빠다리 하세요! 엄마다리 하세요!”

서울 송파구 ㅅ어린이집. 쉬는 시간이 끝나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면서 선생님이 주문을 한다. 아빠다리는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이고 엄마다리는 양다리를 왼쪽으로 포개어 앉는 것을 뜻한다.

울산시 남구에 사는 나모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면서 ‘화장지는 남자 네 장, 여자 세 장∼’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남자는 큰 걸 보고 여자는 작은 걸 본다는 식으로 구분하는 모양인데 우습지 않냐”는 것.

전에 비해 딸이라고 해서 오빠나 남동생에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기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들을 위한 지침서를 보아도 남아와 여아를 특별히 구분해서 지도하도록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도 평등으로 가는 길에는 장애가 많다. 남자아이다움, 여자아이다움,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부모세대로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양성적인 인간이 21세기가 지향하는 인간상이라고들 말하지만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 역시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쁜 여아·씩씩한 남아’ 고정틀 벗어야

아기용품 등 색상 구별 뚜렷

공주·왕자병 신드롬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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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인형. 남자아이는 축구공...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식화된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성역할을 습들해간다. (삽화는 취학 전 어린이를 위한 교재인 ㅍ 학습지에서 발췌)

거의 모든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은 산모에게 아기용품을 넣을 가방으로 분홍색 가방을, 아들을 낳은 산모에게는 하늘색 가방을 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아기는 ‘색’을 통해 남아/여아로 구분되는 것이다.

색을 통한 성 구분은 자라서까지 꾸준히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성별에 따라 옷, 신발,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소위 따뜻한 색인 빨강·노랑 계열과 차가운 색인 파랑·초록 계열로 뚜렷이 나뉜다.

부모들이 얼마나 성별구분에 집착하는지는 기념사진을 찍을 때 드러난다. 각 사진관마다 백일이나 돌 맞은 아기에게 입힐 옷과 장식품 등을 비치해놓는데 여아를 위해서는 붉은 계통의 드레스와 인형, 남아를 위해서는 푸른 계통의 의상과 축구공 등을 준비한다.

남아의 경우 예전처럼 옷을 다 벗기고 찍는 경우는 이젠 드물지만 대신 한복이나 정장차림으로 의젓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딸의 경우는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강남 모사진관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백일사진을 찍을 때 아기들은 남녀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부모들은 딸이 남자아이처럼 보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빨간 리본이나 머리띠로 장식을 하거나 레이스를 이용해 여자아이라는 걸 나타내려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들어갈 무렵, 다른 아이들과 만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자기 소개다. 어린이집에선 다음과 같은 노래를 통해 인사를 시킨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황미옥. 그 이름 ‘아름답구나.’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강철수. 그 이름 ‘씩씩하구나.’

거의 모든 유아교육교재들은 여자아이에게 치마를 입혀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와 성별을 구분한다. 책에 등장하는 남자아이는 축구공을 차고 놀거나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여자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꽃을 꺾고 있는 모습이다.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엔 토끼와 고양이 등은 여자아이를 상징하고 곰과 사자, 호랑이 등은 남자아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돼있다. 동화구현을 할 때도 토끼 역은 여자아이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곰 역은 남자아이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구현한다.

4∼5살 정도의 아이들은 가족과 가정에 대해 배우며 가족구성원의 역할을 습득한다. 이때부터 보다 노골적인 성역할 구분이 이루어진다.

내가 커서 어른되면 어떻게 될까?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랄랄라∼ 다같이 흉내내보자.

이 시기엔 가족 구성원이 사용하는 물건을 찾아보는 놀이를 하는데 아빠의 물건은 가방과 넥타이, 엄마의 물건은 뾰족구두와 목걸이, 립스틱 등이 주로 등장한다.

송파구 ㅅ어린이집 조모 교사(5년 경력)는 “요즘은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놀아주고 집안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교재들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요리와 빨래는 어머니가, 망가진 물건을 손질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는 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또 나무를 심는 것은 아들이 하고 화분에 물주는 것은 딸이 하며, 할머니는 아기를 보거나 뜨개질을 하고 있고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는다.

조씨는 또 “집안 어른으로서 할아버지의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가르치는 취지지만 유독 남자어른의 권위를 내세우는 게 사실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성역할 구분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이분법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특히 여아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의 극치인 공주병 신드롬에 빠질 위험이 크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딸이라고 해서 집에서 주눅들고 크는 아이들이 전처럼 많지 않아 갈수록 여자아이들이 활기 있는 모습이다”라고 말하는 반면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경향은 전보다 더 심하다”고 평한다.

구로구에 사는 김모씨는 “딸이 어린이집에 들어가더니 아이들이 뚱뚱하다고 놀린다며 의기소침해졌다”고 우려했다. 구로구 ㅇ어린이집 김모 교사는 “한번은 4살 먹은 여자아이가 다른 아이가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온 것을 보고서 자기도 드레스 입혀 달라며 종일 울어대서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딸을 공주처럼 키우는 데는 엄마들이 더 앞장서는 모습이다. 마포구에 사는 이모씨는 “아이에게 주사를 맞히러 병원에 데려갔는데 기다리는 동안 딸 가진 엄마들이 애가 살이 쪄서 걱정이다, 못생겨서 걱정이다 등의 얘길 하더라”고 전했다. ‘잘 먹고 튼튼하게만 커다오’라던 우리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착한 아이 어떻게 할까? 공주처럼∼ 왕자처럼∼

우리 엄마 노래부르면 나는 나는 공주가 되죠.

가정에서나 어린이집에서나 ‘공주’라는 말을 듣고 자라나 예쁘고 화려한 공주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몸매 가꾸기며 치장하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예전에 여자아이들의 공주병 신드롬을 조장한 것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등의 동화였다면 지금은 뭐니뭐니 해도 공중파방송의 역할이 막대하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여신이거나 어린 나이에 성인잡지에 나올만한 몸매를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요정들이다.

서울 강북구 ㄱ어린이집 박모 교사는 “TV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한다”며 “모델처럼 날씬해지고 싶어서 음식을 남기는 아이도 있다”고 전했다.

공주병 신드롬은 그것이 ‘착한 공주’상을 추구하든 ‘활달한 공주’상을 추구하든 간에 콜레트 다울링이 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말한 대로 “누군가에게 선택받기를 바라는 무의식적 강박관념을 내포하기 때문”에 딸들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여성학자들은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신분석가이자 기호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인간의 성은 심리적으로 양성성을 띠고 있다”고 말했으며 많은 진보적 사회학자들이 21세기의 이상적 인간형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서로 융통성 있게 발현되는 ‘양성적’ 인간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가정과 사회에서 여자다움/남자다움의 고정 틀을 답습하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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