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스토리 배우 김혜수

데뷔 31년차 한국 대표 배우

영화 ‘미옥’으로 본격 액션 도전

‘여성 느와르’ 기대에는 못 미쳐

“‘미옥’에서 끝나선 안 돼…

아쉬운 점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블랙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매수 아니고, 협상도 아닙니다. 협박이에요.”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에서 범죄조직의 언더보스 나현정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의 극중 대사다. 현정은 상대를 협박하는 순간조차 여유로운 태도와 은은한 미소를 유지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존재감과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 김혜수가 연기 인생 처음으로 본격적인 액션에 뛰어들었다. 그가 소화한 현정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서늘함과 비밀스러운 욕망을 지닌 인물이다. 자신이 맡은 마지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에 의해 궁지에 내몰린 검사 최대식(이희준)의 계획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어느덧 데뷔 31년차의 베테랑 배우지만 김혜수는 겁이 많아 액션은 해볼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몸에 익으니 춤추는 기분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액션은 그와 ‘찰떡’이었다. 특히 적을 향해 장총을 든 모습과 타깃을 맞추려는 날선 눈빛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언더보스 나현정과 그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임상훈(이선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대식 등 벼랑 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느와르다.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힘든 여성 중심의 느와르’라고 소개되면서 강렬한 여성 캐릭터와 여성중심의 서사를 기다리던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안겼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미옥은 실상 ‘미옥’이 아닌 ‘상훈’의 영화에 더 가까웠다. 이야기를 전개하고 상황의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상훈이었다. 물론 김혜수의 넘쳐흐르는 카리스마와 화려한 액션, 흠잡을 데 없는 연기, 멋진 스타일링은 관객을 사로잡을만하다. 각 캐릭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그러나 “느와르 장르에서 살아 숨 쉬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포부는 실현되지 못했다. 또 극 초반 길게 이어지는 폭력·선정적인 성접대 장면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여성 착취와 폭력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느와르 장르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것’이라던 미옥은 아쉬움을 남겼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김혜수는 영화 ‘미옥’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와의 대화를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영화 ‘미옥’의 제작발표회가 1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CGV에서 열려 김혜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영화 ‘미옥’의 제작발표회가 1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CGV에서 열려 김혜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영화 속 성접대 장면과 적나라한 여성 폭력 묘사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그것 역시 어떤 사안을 다룰 때 드러나는 시각 차이인 것 같다. 그게 실제로 이 여자(현정)가 하는 일이다. 이 여자가 하는 일은 여성으로서 (할만한), 페미니즘적인 게 절대 아니다. 성을 팔아 자신의 조직에 방해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협박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이용한다. 그러니 절대 ‘나이스(nice)’할 수가 없다. (그 장면은) 현정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고, 그건 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자극적인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이건 연출과 관련된 거라 사실 얘기하기가 조심스럽긴 하다. 보는 분들이 충분히 선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여성 느와르’라는 점에서 아쉬운 면이 있지 않나.

“여성이 나온다고 해서 여성 느와르는 아니다. 느와르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차이나타운’은 여성이 주체였던 영화다. 반면 ‘미옥’은 느와르라는 카테고리 안에 여성이 들어가 있는 거다. 여성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느와르 영화에서조차 주연을 맡은 여성 캐릭터에게는 ‘모성애’가 부여되곤 한다. 영화 ‘미옥’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 현정을 연기한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는지.

“느와르에 모성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우리가 모성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정형화된 감정이 있는데, 저는 미옥에서 표현되는 모성은 그런 게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모성이란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좀 더 드라이하게 ‘저게 엄마야?’ 싶을 정도로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 ‘이런 것도 일종의 모성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여운이 있길 바랐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기대에는 조금 많이 못 미쳤다. 모성은 사실 제가 가장 견제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영화를 봤을 때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 그것이다. 마치 모성이라는 게 현정이라는 캐릭터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는 장치가 돼버린 것 같다. 저는 현정 캐릭터를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고, 설사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모성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배제에 가깝게 하기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여성 캐릭터인 현정과 김여사(안소영), 웨이(오하늬)와의 관계가 더 깊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그게 좀 더 살았었다. 그들의 연대라는 것들이 좀 더 밀도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현정, 김여사, 웨이는 본질이 다르지 않다. 위치만 다를 뿐 서로 같다고 본다. 웨이가 상훈의 몸에 새겨진 ‘미옥’이라는 문신을 발견하고 현정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현정은 웨이를 해고시킨다. 그런데 그게 현정이 웨이를 보호하는 방식인 거다. 자기 동생처럼 생각하고 유대를 느끼는 사람을 보호하는. 김여사에게는, 이런 표현이 그렇게 아름답진 않지만, 선배나 언니, 어른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가졌을 거다. 영화에서도 그런 것들이 더 강화됐어야 했다. 그건 진짜 아쉽다. 시나리오에서는 분명 느껴졌었고, 여성들의 연대가 있었다.”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상훈이 현정에게 반지를 주면서 자신에게 오라고 하는데 현정은 망설이지 않고 거절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단호할 수 있었는지.

“(평범하게 사는 게) 그 여자의 욕망인 거죠. 그런데 그 욕망에 예기치 않은 아이가 끼어든 거고. 아들 주환(김민석)이 사실 여자를 더 혼란스럽게 했을 거다. 원래 영화 제목이 ‘소중한 여인’이었다. 상훈에게, 김 회장에게 현정이 소중한 여인이었던 거다. 주환이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영화 말미에서 현정이 엄마인 걸 알고 주환에게도 현정은 소중한 여인이 되고. 근데 그 세 남자 모두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현정이 원한 건 정말 평범한 삶이었다. 근데 그 삶 속에 자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이가 들어온 거다. 그래서 거기서 나타나는 모성이 상식적인 모성이 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정은 주환을 낳고 곧바로 떨어져 살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현정에게서 모성애가 튀어나와 의문이 들었다.

“이 여자가 유일하게 원하고 욕망하는 건 평범한 삶이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아예 죽음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 안에 예상치 못한 아이가 들어왔고, 그 아이에게는 영향이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얘기하다보면 자꾸 나 혼자 다른 영화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현정에게 평범한 삶이 가능할까?

“평범한 삶이 가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까 이 여자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 욕망 같은 것이다. 느와르에는 보통 어긋난 감정과 배신, 거기서 오는 씁쓸함이 있지 않나. (현정의 캐릭터가) 그것에 굉장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는 여성 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 작업이나 제작이 진행되지 않는가’라는 의문과 탄식이 많다. 남성 영화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반면 여성 영화는 왜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세계적인 경향이 그런 것 같다. 영화가 점점 블록버스터 형식이 되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영화산업과 관련이 있는데, 영화는 크게 보면 비즈니스다. 관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의 문제인데 좀 더 많은 대중을 확보하기에는 남성들, 남성 중심, 남성 군상들이 나오는 게 유리하다. 여성관객이 주도적인 수요자로서 결정권자이니까. 전 세계적으로 여성 영화가 별로 기획이 안 된다. 기획되더라도 작은 영화에서 끝내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좋아하고 공감하는 관객의 수가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부자들이 아니라 관객들이 그런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고민들은 예전부터 했었다. 예전에도 여자 역할들은 비슷했다. 로맨스나 로맨틱코미디, 코미디 등에서 누가 해도 상관없는 기능적인 역할의 캐릭터. 흥미로운 이야기들에서는 남자 주체가 많았고 여자들의 얘기는 아무래도 내재된 것들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보니까 작은 영화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관객들이 ‘왜 여성 영화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졌지?’ ‘이런 캐릭터는 남자는 있는데 왜 여자는 없지?’ 라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이러면 제작자는 (요구에 부응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아니라 여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미옥도 마찬가지다. 미옥에서 현정이 어떻게 다뤄져서 관객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지, 포스터에서 총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여성 영화가 완성된 건 아니다. 일부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으니 이제 제대로 해야 한다. 미옥에서 시도를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날 게 아니라 이것을 발판 삼아 나아가야 한다. 영화에 등장한 여성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여성 캐릭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연출가가 많이 있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 시각, 개념이 있는 분들이 해야 된다.”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직접 감독으로 나설 생각은 없는지?

“저도 학교 땐 연출을 전공하긴 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배우는 타고나야 된다고들 하지만, 저는 연출가가 타고나야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내 캐릭터만 보면 되지만, 감독은 전체적으로 모든 상황을 적절하게 핸들링해야 한다. 연출을 하고 싶긴 했지만 그건 못하겠더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연출이 굉장히 힘들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연출 포함 제작진)의 역할이 중요하고 배우는 그걸 잘 풀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현정 역할을 맡아 부담이 됐던 것은?

“사실 찍으면서는 여성 중심의 영화라는 생각이 없었다. 단지 느와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영화 개봉 전에 홍보하는 걸 보고 솔직히 약간 부담이 됐다. 이게 ‘미옥’으로 개봉했건 ‘소중한 여인’으로 개봉했건 홍보 포인트를 잡아야 했을 거다. 그런데 부담이 되더라. 왜냐면 지금은 관객이 진심으로 이런 걸(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여성 영화) 보고 싶어 하고 격려해주고 박수쳐줄 준비가 돼있는데 과연 그것에 부합할 수 있나 라는 고민이 있었다. 또 하나는 이 영화의 성패를 떠나서 보다 더 주체적인 여성이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길 바란다. 근데 이런 게(저희 영화의 성패가)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기회를 더 미루게 되거나 박탈하게 되면 안 되는데’라는 고민이 솔직히 되긴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걸 의식하고 하진 않았다.”

-‘여성 영화 부족하다’ ‘여성 묘사 제한적이다’라는 말은 영화계 내부에서 꾸준히 있었던 얘기라고 했는데, 문제를 인식하고도 왜 넘어서지 못했을까.

“잘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하려면 제대로 갖춰진 사람들이 해야 한다. 근데 제대로 갖춰진 사람들이 많나? 그건 모르겠다. 나부터도 ‘넌 제대로 갖춰졌니?’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문제의식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모여야 되고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의지나 생각만으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는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언젠가는 그런 것들이 나올 거다. 그런 의식 있는 사람들이 다른 것에 주력하다가 카테고리를 좀 더 넓힐 수도 있는 거고. 뭐 하나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미옥이 잘 된다고 해서 여성 영화의 신기루가 열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게 망했다고 해서 ‘절대 안 돼’라는 게 어디 있나. 그런데 그걸 우리가 관객한테 강요할 수는 없고 우리끼리 (얘기하는 거지). 그렇다고 뻔뻔하게 안 되는 걸 자꾸 하라는 건 아니다. 물론 이번 영화는 너무 아깝고 아쉬운 기회였다.”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 ‘미옥’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김혜수 필모그래피

△1986 깜보, 수렁에서 건진 내 딸2

△1988 그 마지막 겨울, 어른들은 몰라요

△1990 오세암

△1991 잃어버린 너

△1993 첫사랑

△1995 영원한 제국, 남자는 괴로워, 닥터 봉

△1997 체인지, 미스터 콘돔

△1998 찜, 투 타이어드 투 다이

△1999 닥터 K

△2001 신라의 달밤

△2002 쓰리, YMCA 야구단

△2004 얼굴 없는 미녀

△2005 분홍신

△2006 타짜

△2007 바람 피기 좋은 날, 좋지 아니한가, 열한번째 엄마

△2008 모던보이

△2010 이층의 악당

△2012 도둑들

△2013 관상

△2015 차이나타운

△2016 굿바이 싱글

△2017 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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