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⑦ 여성장애인운동

여성 속 ‘차이의 정치학’

기반한 여성장애인운동

자기결정권 보장, 교육권 투쟁은

중첩된 구조적 차별에 대한 저항

 

2011년 7월 4일 열린 제10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 여성장애인 성폭력 근절과 사회적 지지체계 강화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2011년 7월 4일 열린 제10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 여성장애인 성폭력 근절과 사회적 지지체계 강화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장애인은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 오랫동안 인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극심한 차별로 인하여 그 어느 집단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수자로 매우 고립되고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여성이라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중첩된 차별로 앞선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 속에서도 여성장애인에 관한 논의나 그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에야 여성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자조모임이 만들어지면서 자신들이 경험한 차별과 억압을 사회에 알리며 존재를 드러내게 됐고 ‘여성장애인운동’이 시작됐다.

여성장애인운동은 장애인 속에서는 ‘성인지적 관점’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고, 여성 속에서는 ‘차이의 정치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장애 중심,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비장애 여성과 여성장애인의 여성주의적 관점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다양성으로 인정되기 보다는 차별로 전환돼 각기 삶에서 오는 문제해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돼 왔다. 예를 들어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비장애 여성의 그것과 노출 상황이 다르기에 접근 방식과 해결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성장애인운동은 그러한 차이에 근거해 있다. 여성운동의 내부에서도 차이에 대한 끊임없는 소통과 성찰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 글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의 30주년을 맞아 여성장애인 운동의 영역 중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한국여장연)의 활동 17년을 중심으로 썼다. 여성연합은 같은 여성의 자리에서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장애’라는 차이를 갖고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던 한국여장연을 깊은 관심과 동지애로 창립준비위원회 때부터 지금까지의 활동을 견인해 줬다.

 

1999년 4월 17일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창립대회 ⓒ한국여성단체연합
1999년 4월 17일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창립대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장애인 관점의 자립생활 운동 모색

한국여장연은 1999년 4월에 창립됐다. 창립 당일은 ‘첫째, 잃어버린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를 찾아서, 둘째, 지역조직으로부터 시작되고 모아져 연합사무국을 형성한다, 셋째, 다른 조직에 소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한 완전한 독립적 조직으로 선다, 넷째, 반드시 여성운동과 함께 한다’는 울림으로 사회에 파장을 던진 날이기도 했다. 그 후 한국여장연은 여성장애인 관점에 기초한 자립생활 운동을 모색하였다. 자립생활은 전 장애영역을 포괄하며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장애인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과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창립 후 첫 토론회가 ‘지역사회 내에서의 여성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방안’인 것도, 한국여장연이 자립생활에 무게 중심을 두고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질 향상의 기초가 되는 자립생활의 방안을 토론하고 지원정책과 실천적 대안을 각 지역의 여성장애인들과 함께 모색했다. 현재 지부를 중심으로 이동 동료상담, 직업훈련, 이용자 간담회, 활동보조인 파견 등을 통해 자립생활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창립 이전부터 만연했던 여성장애인 성폭력 상담 등 반폭력 운동에 주력했다.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진 성폭력은 차별의 여러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 우리 사회에 제일 먼저 이슈화된 것이기도 했다. 15유형으로 구분된 장애유형 중 ‘지적장애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오랫동안 은폐돼 드러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적장애 특성상 인지능력과 대처능력이 현저히 낮아 본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더욱 드러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적장애 K씨가 초등학생 때부터 수년간 마을주민 7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해 급기야 아이를 출산하게 되자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그 실체가 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검찰은 심신미약자 간음으로 처리해 합의하게 함으로써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것이 여성장애인이 당하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정부기관의 실태이기도 했다. 이에 한국여장연은 관련 단체와의 연대활동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K양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알려냈으며, 성폭력 근절과 예방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등 반성폭력운동에 집중했다. 이러한 반성폭력운동의 성과로 2001년 초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가 서울·부산·대구·전주 등 4곳에 개소, 상담 활등을 시작함으로 여성장애인의 성폭력 문제를 사회문제로 이끌어 냈다. 상담소 개소 이후 여성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최초의 승소 판례가 나오고,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여러 활동 속에서 성폭력 보호시설이 설치됐고 가정폭력 근절운동도 필연적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지금도 여성장애인 반폭력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2008년 제1차 활동가 역량강화 워크숍 ⓒ한국여성단체연합
2008년 제1차 활동가 역량강화 워크숍 ⓒ한국여성단체연합

교육 차별, 여성장애인 차별 강화

많은 여성장애인에게 박탈돼 온 인간의 기본권인 교육권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여성장애인에게 다양한 차별들이 강화돼 온 이유는 박탈된 교육권이 그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진 가장 큰 차별은 교육에 대한 차별이다. 한국여장연 운동 속에서 제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절절한 문제였다. 우선 여성장애인에 대한 교육수준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이하가 67.3%(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로,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의무교육과 정규교육에서 조차 제외돼 왔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차별은 또래집단 속에서의 소외로, 그리고 연결된 성장 과정마다 사회화의 부재로 이어져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주기와 닿아있다. 그래서 교육권의 박탈은 삶의 주기별 모든 기회와 선택에 대한 권리가 박탈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인해 고용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연이어 박탈되고 빈곤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에 놓이게 된다.

한국여장연은 창립 초기부터 교육권에 중점을 둬 여성장애인의 자존감과 권리의식 등 역량 강화와 의식화 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순회교육을 통해 사회적 차별에서 오는 경험과 기회의 박탈로 이어진 각자의 스토리를 나누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의식을 깨우며 풀뿌리 조직으로서의 토대를 마련하는 역량 강화로 이어졌다. 교육 차별에 대한 소통만으로도 여성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과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에 맞서 당사자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활력소를 갖게 해 지속가능한 여성장애인운동으로 이끌었다.

여성장애인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투쟁은 여성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빈곤, 모성에 대한 차별, 성폭력 등 중첩된 차별에 대한 저항과 함께 우리사회의 변화를 갈구하는 절규와 같았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 교육 내용이 확산되고 있으나 제도의 굴절된 변형 등으로 인해 여성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2006년 12월 8일 대법원 앞에서 열린 여성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한국여성단체연합
2006년 12월 8일 대법원 앞에서 열린 여성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한국여성단체연합

당사자성 중심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이와 같이 한국여장연의 운동은 안으로는 당사자의 역량 강화로 이어졌고, 대외적으로는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와 어울려 연대적 운동을 펼쳐나갔다. 국제적으로 ‘장애인권리협약’ 제정(2006년)을 위한 활동과 국내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2007년) 운동이 그것이다. ‘장애인권리협약’은 UN에서 5년에 걸친 특별위원회 개최 등 대장정 끝에 채택됐는데 우리나라의 여성장애인 운동 진영에서 여성장애인 이슈를 UN에 알리고 그 결과로 ‘여성장애인’ 조항인 6조가 한국 조항으로 당당히 개별조항으로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1년 공론화 이후 범장애계와 시민단체가 연대해 이룬 투쟁의 성과였다. 여성장애인 단체가 중심이 돼 여성장애인 관점이 고려된 차별의 이슈가 포함될 수 있도록 했고, 제3장이 여성장애인 별도의 장으로 제정된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장애 당사자들이 수시로 모여서 장애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토론하며 법조항을 만들어 낸 결과로 무엇보다도 당사자성을 중심으로 제정됐다는 것과 장애의 문제가 ‘차별’에 있음을 알린 것, 그리고 차별을 당하는 다른 소수자 운동에도 파장이 일게 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마지막으로 ‘한국여성장애인대회’를 소개할까 한다. 한국여장연 운동 속에서 한국여성장애인대회는 1999년 창립 이후 총 15회 열렸다. 제1회 대회(2000) ‘깨자!나가자!세상속으로!’, 제2회(2002) ‘국제연대’, 제3회(2004) ‘자립 생활’, 제4회(2005) ‘가정폭력’, 제5회(2006) ‘교육권’, 제6회(2007) ‘일 할 권리’, 제7회(2008) ‘건강권’, 제8회(2009) ‘문화권’, 제9회(2010) ‘모성권’, 제10회(2011) ‘반성폭력’, 제11회(2012) ‘선거권’, 제12회(2013) ‘문화권’, 제13회(2014) ‘교육권’, 제14회(2015) ‘사회 참여’, 제15회(2016) ‘건강권’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주제들은 한국여장연 운동 속에서 녹아 당시의 현안과 이슈를 중심으로 여성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과 아울러 역량이 강화되고, 여성장애인의 운동과 현실을 우리사회에 알림으로서 인식 개선과 사회 변화에 기여했다.

여성장애인 운동은 사회가 당사자에게 가한 인권침해와 차별에 저항하며 나타난 대표적 소수자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장연의 활동을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여러 영역에서의 인권침해와 차별을 직면한다. 이러한 운동은 기본권을 중심으로 국가의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게 하는데,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은 지금도 거리에서 기본권을 외치며 투쟁 중에 있다. 그 투쟁은 여성이며 장애로 인한 차이가 인권침해가 되지 않을 때까지, 차별이 되지 않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차이에 대한 공평함이 적용된 소득과 분배 그리고 인식의 전환과 사회로의 통합 등 변화를 이끄는 투쟁이다. 그러한 관점의 소수자 운동은 파장을 일으키고 지평을 넓혀 가며 더욱 퍼져나갈 것이다. 시간은 소수자들의 간절한 투쟁 속에서 오늘도 흐르고 있다. 여성장애인 운동은 간절함과 강력한 저항 속에서 기어이 뿌리내려 번지고 있고 싹터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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