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 낭만안고 떠난 아비뇽

30년을 먼저 살아간 엄마와

20대 청춘의 딸은 한 무대를

보며 저마다의 시간을 헤아렸다

 

아비뇽 교황궁 안뜰 ‘쿠르 도뇌르’(Cour d’Honeur, 명예의 뜰). 이곳에서 공식 축제 공연 중에서도 가장 무게 있는 공연들이 펼쳐진다. ⓒ박선이
아비뇽 교황궁 안뜰 ‘쿠르 도뇌르’(Cour d’Honeur, 명예의 뜰). 이곳에서 공식 축제 공연 중에서도 가장 무게 있는 공연들이 펼쳐진다. ⓒ박선이

한국에서 아비뇽으로 가는 길은 많다. 가장 많은 경로는 파리 리옹역에서 초고속 열차 TGV를 이용하는 것. 아비뇽에는 TGV 전용역과 시내와 바로 이어지는 아비뇽 중앙역(Avignon Centre)이 있다. TGV를 이용할 경우 중앙역까지 기차로 이어진다. 요즘은 국적기가 아닌 유럽 비행기를 이용해 유럽 내 주요 도시에서 항공편으로 곧장 가는 일도 많다. 이 경우 대개 마르세이유 공항이나 니스, 액상 프로방스 공항을 이용한다. 마르세이유에서는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파리에서 아비뇽으로 갔다. TGV를 탔으면 2시간 30분 남짓으로 충분한 것을, 야간열차의 낭만, 침대차는 배낭여행의 심장, 어쩌구 하면서 밤 기차표를 끊은 데서 고행이 시작됐다. 야간열차는 파리 오스텔리츠역에서 밤 9시 22분 출발해 밤새도록 남행, 아침 6시에 마르세이유에 도착해서 다시 아비뇽 중앙역으로 올라가는, 이를테면 무궁화호에 해당하는 11시간짜리 코스였다. 그런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들으며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출발을 안 한다. 쑤알라 꾸알라 방송이 나오는데 프랑스어 까막눈 까막귀인 우리 모녀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어린 청이 젖동냥하는 심봉사처럼 귀동냥 끝에 기관차가 어딘가가 작동을 안 해 계속 수리를 하고 있는데, 오늘 밤 갈 수 있으면 다행이란 심장 쫄깃한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정도 연발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쩐지 다들 평안한 얼굴이더라니….

모녀 여행의 좋은 점. 눈치껏 물도 얻어오고 언제쯤 떠날지 소식 주워듣고 오는 딸 덕에 느긋하게 프랑스 기차 후진 거나 흉보며 즐기기로 한다. 불평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도 없다. 연발 서비스라고 생수 한 병씩을 나눠주는데, 그도 고맙다는 얼굴들이다. 대여섯 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은 아예 파자마 바람이다. 그렇게 3시간을 플랫폼에서 난민처럼 구겨져있다 자정이 넘어서야 드디어 출발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덕에 새벽이 되면서 기차 안이 좀 시원해졌다. 밤기차, 권하고 싶지 않다. 기차 삯도 비싸고, 깜박 새벽잠 깊이 들면 마르세이유 놓치고 니스까지 가는 수가 있다. 뭐, 우리가 그럴 뻔했다는 건 안 비밀.

 

아비뇽의 거리 공연단 ⓒ박선이
아비뇽의 거리 공연단 ⓒ박선이

아비뇽은 반쯤 미쳐있었다. 나 좀 봐달라는 듯이 건물 벽면을 가득 메우고 만국기처럼 허공에 휘날리는 공연 포스터들이 축제 열기를 뿜어댔다. 화살이 꿰뚫은 빨간 사과를 머리에 얹은 여배우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던졌다. 관을 멘 해골 배우들이 정중하게 다가와 공연 안내지를 나눠줬다. 후끈하게 달궈진 바람이 골목골목을 메운 인파, 거리 카페에 가득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갔다. 하얗게 빛나는 태양빛이 갈색 어깨에 부서지고, 바람에 섞인 농익은 과일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달아났다. 아비뇽역 앞에서 교황궁 광장에 이르는 레퍼블뤼크 거리의 플라타너스는 튼실한 몸매에 푸른 잎을 가득 달고 인사를 건넸다. 끝을 알 수 없게 이리 얽히고 저리 이어진 골목마다 극장들이 있었다. 평소에는 성당으로, 주민 센터로 쓰이는 곳들이 아비뇽 축제 3주 동안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아침 10시에 연극을 보고 점심으로 바게트를 씹으며 12시에는 춤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비뇽 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 사회는 나치 부역자 처리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곳곳에서 살벌한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레지스탕스 운동이 활발했던 남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는 거칠었다. 이때 사회적 통합과 위로를 내세워 출범한 것이 아비뇽 축제다, 아비뇽에서 서남쪽으로 125km 떨어진 조그만 바닷가 마을 세트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배우 겸 연출가 장 빌라르가 아비뇽 교황궁 안뜰 ‘쿠르 도뇌르’(Cour d’Honeur, 명예의 뜰)를 무대 삼아 연극 세 편을 공연하면서 축제의 역사가 시작됐다. 모녀가 세계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아비뇽 유수’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아비뇽 교황궁이다. 아비뇽 축제는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공식 축제와 개별 공연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오프(OFF) 축제로 나뉘는데, 교황궁 뜰 공연은 이를 테면 공식 축제 공연 중에서도 가장 무게 있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올해의 교황궁 뜰 공연작은 일본 연출가 사토시 미야기의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와 스페인의 플라멩코 천재 이스라엘 갈반의 <라 피에스타>(축제) 두 편이었다.

 

아비뇽의 골목 공연장 ⓒ박선이
아비뇽의 골목 공연장 ⓒ박선이

아비뇽 축제 첫 공연 관람으로 예매한 티켓이 바로 <라 피에스타>. 교황궁으로 올라가는 길은 중세풍으로 돌을 깔았다.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부인하고 프랑스 남부 소도시 아비뇽에 교황청을 뒀던 것이 1309년부터 1377년까지다. 이 길이 그때의 것일까?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현재의 교황궁은 아비뇽 제4대 교황 클레멘스 6세가 1348년 지은 것으로, 성벽 높이가 50m, 두께 4m의 거대한 요새 같은 석조 건물이다. 지을 때야 화려했겠지만, 지금은 높은 돌담 안쪽으로 텅 빈 예배당과 회랑, 안마당만 남아 있다.

밤 10시. 교황궁 하늘에 마늘쪽 같은 초승달이 떴다.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플라멩코의 선율은 화려하고 강렬한가 하면 어느새 나지막이 울부짖고 꺼억꺽 울음을 참는다. 우리네 삶의 궤적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 30년의 세월을 먼저 살아간 엄마와 이제 20대 청춘의 꿈과 불안을 함께 가슴에 담은 딸은 한 무대를 함께 내려다보며 저마다의 시간을 헤아렸다. 그토록 갈망하고 그토록 뜨겁던 삶이 어쩌면 이렇게 차갑게 메말라버릴까. 바다의 깊이를 도모지 알지 못하는 나비처럼, 아직 삶의 무서움을 겪지 않은 딸은 축제로 은유된 삶의 처절한 열정과 절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비뇽에서의 8일은 이 세상 시간이 아닌 것처럼 흘러갔다. 장 주네의 <하녀들> 입센의 <집> 같은 고전과 그리스 비극 4부작을 27시간에 걸쳐 공연한 이탈리아 극단의 <산타 에스타시-아트리디>를 때로는 졸며, 때로는 울며 관람했다. 오프 극장에서 만난 샹송과 코미디도 뜨거웠다. 올해의 오프 공연은 119개 공연장에서 아침 9시 15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모두 1400개가 무대에 올랐다. 오프 가이드북은 아예 시간대별, 공연장별 리스트를 따로 정리했을 정도다.

 

아비뇽 거리에서 공연을 홍보하는 배우들 ⓒ박선이
아비뇽 거리에서 공연을 홍보하는 배우들 ⓒ박선이

축제는 페스티벌이며 카니발이다. 그리고 사람이다. 주말 밤 아비뇽 시내에서 숙소를 옮겼다. 낮에 프로방스 산골 마을을 갔다 오느라 한 밤중에야 아비뇽에 들어갔다. 여행 가방을 끌고 거기가 거기 같은 교황궁 뒷골목을 뱅뱅 돌기 거의 한 시간. 구글 지도로도 도저히 찾지 못했던 그 골목, 거리 카페에서 친구들과 시끌법석 놀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이 “아, 여기 우리 동네야” 하며 그 카페 앞을 무거운 짐 가방 끌고 세 번째 지나가던 우리 모녀를 이끌었다. 엄청 취해 있던 그녀는 자기 엄마가 철학 교수라고 했다. 자기는 엄마가 싫어할 일만 골라하고 있다며, 거리의 청년들과 계속 소리쳐 인사를 나누던 그의 이름을 지금 잊었다. 괜히 술 취한 친구에게 봉변당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비쳐보였던지, 그는 “나, 괜찮은 사람이야, 여긴 다 내 친구들이니 걱정 마, 너희 모녀를 지켜줄게”하고 부르짖듯 속삭였다. 내 딸보다 어린 것 같았던 그 친구, 부디 철학 교수인 엄마와 다르지만 소통하고, 모두 행복하기를.

 

교황궁으로 공연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박선이
교황궁으로 공연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박선이

Tip. 아비뇽 역사문화지구

아비뇽은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677km 떨어진 프로방스-알프스-코트다주르 주에 속한 중세도시다.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 이후 1377년까지 7명의 교황이 머물면서 아비뇽은 종교, 정치, 상업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현재의 아비뇽 성벽은 유럽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성벽 중 하나로, 총 길이가 4.3km에 이른다. 아비뇽 성벽 안쪽은 1995년 유네스코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됐는데, 로마네스크 후기 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데 돔 성당, 교황궁 등이 대표적 중세 건축물이다. 교황궁은 요새처럼 견고한 석조 건물로, 교황이 떠난 뒤 폐허로 방치되었고 19세기에는 감옥으로, 병영으로 사용되다가 아비뇽 축제의 중심 무대로 활용되면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아비뇽을 유명하게 만든 노래 ‘아비뇽 다리 위에서’에 나오는 다리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생 베네제 다리다. 성벽 북쪽 너머 론 강에 건립한 생 베네제 다리는 1680년 완전히 붕괴된 뒤 지금은 3개의 아치만이 남아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담은 중세 건축물과 수백 개의 골목, 현대식 쇼핑센터와 영화관, 공원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건축물 기행만으로도 이틀은 너끈히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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