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폭행 사건이 터질 때, 참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로 때리고 가혹 행위를 하는 자는 한 사람인데, 그 일에 가담하거나 부작위로 일관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동료 병사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미성년 여군 부사관 하나가, 성추행을 당하는데도 단체 채팅방에서 심지어 포르노 영상을 돌려 항의할 때 지적은커녕, 문제가 될까 다들 성급히 무언을 유지한 채 나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다른 부사관들이 듣는 자리에서 문제의 상관이 지독히 심한 성희롱성 언사를 해도, 주변은 묵묵히 가만히 있습니다. 기사 제목을 보니 “침묵의 카르텔” 이라고 하더군요. 언뜻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입, 다물라 하던.

잘 떠올려보십시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그만 됐고 시끄러우니 입다물라”는 태도로 일관하던 사람들이 한국에 극소수였나요? 그런 이웃들이 정말 하나도 주변에 안보이셨습니까? 혹은, 본인들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요. 지금 우리는, 적폐세력이 누구인가를 발라내는 일이 중요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적폐세력이 저렇게 뿌리내린 저변을 보십시오. 군대에 간 일반 사병들도 가혹행위가 벌어지면 수수방관하거나 상관에게 고지한 뒤에는 집단따돌림에 가담합니다. 성범죄가 일어나도 증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되려 도망을 갑니다. 세월호에서 누가 먼저 빠져나왔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책임질 사람들이 더 먼저 빠져 나왔습니다. 세월호를 그렇게 만들고, 가라앉게 만든 세력은 분명 국정농단 세력 중 한 명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현실이. 이 공기가. 이 문화가. 과연 모종의 특정 세력들이 몰래 몰래 숨어서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만들어낸 작품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일반 사병이나 부사관 정도 되는 사람들이 적폐세력이라고까지 하기 에는 지나치게 작은 권력을 가진 걸로 보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일반 시민 자체가 적폐 세력화돼 있는 건 아닌가, 자성을 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우리가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가해자가 한 명이겠지만,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이 항상 여럿입니다. 오래봤다, 잘 아는 사이다, 피해자 걔도 잘한 거 없다, 성격이 이상했지, 옷차림이 야했어, 본인이 꼬신거라며, 라는 등등으로 온갖 범죄를 두둔하고 지나왔습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에서의 박상진 사무장의 일이 불거져 나올 때, 박상진 사무장을 바람둥이로 몰고가던 사람들이 회사 밖에 있습니까, 아니면 회사 안에 있습니까. 항공사만 문제입니까. 지금 죄인이 그 사건에서 단 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이제는 이 부분을 명백히 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의혹을 해소해야 할 시점입니다. 누가 적폐 세력의 옹호자인지를.

제가 대학시절에 군대 다녀온 동기에게 이런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성추행을 윗선에 고발했더니, 선임이 불러다가,,‘다들 참는데 왜 너만 유난히 그래서 문제를 만드냐’ 라고 하더라. 그동안 먼저 당했던 놈들이 더 나를 못살게 굴더라. 화생방을 두 번 들어가라고 하질 않나.”

성추행을 하려고 했던 놈은 하나이지만, 두둔한 놈들은 여럿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아직 국정농단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적폐가 재판장 안에 있습니까. 그 안에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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