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사람들이 살면서

만들어 낸 역사의 산물

도시재생은 살아야 할 이유

마련하는 것을 핵심 둬야

 

 

 

1991년 불법 복제본을 통해 접했던 일본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접했던 영화 ‘블레이드러너’도 그러했다. 두 작품 모두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상, 모호하고 충격적인 세계관으로 25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역대급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을 접하면서 스토리나 영상 못지않게 오래도록 인상이 남는 것은 배경들이다. 미래도시 배경에서 반응형 첨단디지털 광고보드와 아날로그적인 낡은 간판들을 보여주는데 첨단과 공존하는 아날로그적 분위기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영화를 접하고 수년이 지나고서야 그 멋진 배경이 홍콩과 동경 골목 어디쯤을 중심 배경으로 잡았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는 허구였지만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메타포(metaphor·은유)를 느낄 수 있었다. 어수선한 전선줄과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은 홍콩의 모습이었고 동경의 모습이었다.

 

서울시에서 청계천변의 간판 정비 사업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청계천변 공구상의 간판은 깔끔한 입체문자간판으로 일률적으로 교체했다. 오래된 간판이 뜯겨지면서 공구상점들 글자의 풋풋함도 사려졌고 어수룩한 활자의 독특한 매력도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청계천변은 보는 맛도 걷는 맛도 사라졌다. 유럽의 골목을 돌아보며 인스타그램에 어떤 앵글을 남기는지 생각해보면 보잘것없는 간판 하나라도 도시를 유지하는 소중한 자원 이란 걸 알 수 있다.

복잡한 간판이 도시의 미관을 어지럽게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홍콩의 골목을 돌아보면서 어지러운 간판들이 관광을 방해하지 않았고 동경 뒷골목의 전선들로 인해 동경이 낙후된 도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정서를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영상에서는 항상 지하철과 풋풋한 골목길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지우는 장면들이 홍콩에 있었고 동경에 있었다.

서울의 홍대 앞은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고 가장 붐비는 창작 문화구역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단독주택과 골목이 있고 다양한 콘텐츠와 와글와글 복작복작한 상점들이 있다. 창작 공간이건 유흥 공간이건 창작자들은 부피가 아니라 가치를 지향했고 미술, 공예, 출판, 디자인, 인디 등 예술 문화의 대표 중심 도시로 뿌리 내렸다. 그렇게 30여년의 시간동안 형성해온 도시브랜드가 ‘홍대 앞’이다.

일본의 유후인은 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다듬어 유후인 그대로를 오롯이 간직함으로써 다른 지역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도시는 사람들이 살면서 만들어 낸 역사의 산물이다. 도시는 시설 인프라만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을 노후화된 동네의 현대화를 위한 시각으로만 봐선 안 된다. 현대화를 한다는 이름아래 귀한 가치들이 사라져갔다.

도시재생은 사람이 그 곳에 살아야 할 이유를 마련하는 것을 핵심을 둬야 한다. 사람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정주의식에는 복합적인 욕구가 담겨져 있다. 먹고 살아야 할 터전, 도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라이드,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 교육과 복지 등등 도시 구성 전반에 걸쳐 체크해 봐야 한다. 도시재생을 단순한 주거정비사업이라고만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을 핵심 사업으로 설정했다. 오랜만에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문화의 에너지가 입혀질 기회가 왔다. 이미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간판정비사업이나 마을벽화그리기 도시재생 사업 같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새로운 정부의 도시재생에서는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창작자의 미래가 있는 도시재생 콜라보(협업)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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