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평균 0.9건 조례 발의

남성 의원은 0.3건에 그쳐

예결산 심의, 시정 질의,

행정감사 모두 여성이 앞서

“여성 의원 비율 높은 의회,

남성 의원의 활동도 활발”

 

2015년 8월 당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국정설명회에 지자체장들이 참가한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2015년 8월 당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국정설명회에 지자체장들이 참가한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지방선거가 당장 8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선거 전 제도 변화를 기대하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는 우울한 비판도 나온다. 이제 각 당의 공천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데 여성계가 집중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방의회 여성 의원들이 공정하고 성실한 의정활동은 물론 적극적인 조례 발의, 행정감사 등으로 의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 최근 연구에서 입증되면서 여성의 의회 진출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0월 25일 서울시의회 전·현직 여성의원들로 구성된 ‘서울여성의정회’(회장 서정숙 7대 서울시의원)와 단체들은 ‘여성의 지방정치 참여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의회 부의장인 조규영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공동대표는 “여성은 경쟁력이 낮다는 인식이 있지만, 입후보 대비 당선자 수로 보면 여성의 정치경쟁력은 오히려 높다”며 “여성의 정치 대표성 확대는 사회의 성평등 실현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당헌·당규에 여성 대표성 확대 방안을 명시, 여성 의무할당제 실시 등 제도 마련 △여성의 적극적인 공천과 당선가능성이 높은 곳에 공천을 촉구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대전시의회
지난 8월 31일 열린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대전시의회

충북도의회 의장인 김양희 자유한국당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공동대표는 의회 내 변화를 전했다. 그는 “아직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여성 의원의 증가에 따라 지방의회의 입법 활동 내용이나 방향도 점차 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광역 및 기초의회로 진출한 여성 의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여성과 복지 분야에서 조례 발의가 증가하도록 영향을 줬고 또한 남성 의원들에게 여성 관련 아젠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여성의정회와 전국여성지방의원네트워크 등 참석자들은 남녀동수 정치 참여를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박옥분 경기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도 10월 27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의정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의정 경험을 소개하면서 “지방정치는 살림정치, 생활정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보다 적합한 정치영역”이라고 말했다.

박 도의원은 “여성은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살림과 돌봄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필요한 지역 현안에 더 민감하고 밀접한 문제가 지방정치의 주요 이슈나 쟁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서 “실제로 지역 통장을 비롯해 지역주민자치센터, 부녀회 등 현실적인 분야에서 여성들이 90% 이상 차지하고 있어 정치 영역에서도 동수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은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 7개 광역의회의 남녀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7개 의회의 조례·행정감사를 중심으로 한 평가 결과, 여성 의원들은 조례 발의나 예·결산 심의 등 주요 의정활동이 남성들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1인당 평균 조례 발의는 0.9건, 남성은 0.3건으로 집계됐고, 예결산 심의도 여성은 2.5건이지만 남성은 절반 정도인 1.3건에 머물렀다. 또 시정(도정) 질의도 여성은 0.6건 남성은 0.2건, 행정감사는 여성 8.5건, 남성 2.6건으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김 연구위원은 또 남녀 의원의 조례 주제에도 차이점을 찾았다. 남녀 모두 안전과 폭력이 1순위지만 그 다음으로 여성은 양성평등과 대표성, 가족·복지, 남성은 가족정책, 복지·건강 순위로 집계됐다.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여성 의원의 비율이 높은 의회에서 남성 의원들의 활동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성평등 의제는 남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의회 전반으로 확산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 의원이 보여주는 양성평등에 관한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남성은 성비 균형이라는 단편적인 해석에 머물고 있고, 여성은 차별 전반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통계상에서 드러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제도적 변화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번 지방선거는 망했다’는 의미로 ‘이지망’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정치개혁은 매번 선거에 임박해서 시작하는데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다. 30% 할당 의무화 문제는 이미 끝났다(논의 대상이 아니다)”고 현 정국을 판단하고, 그 대안으로 여성을 공천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년 2월까지 여성단체가 확정짓지 않으면 실력을 행사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교수는 각 정당의 여성 최고위원들도 비판했다. “여성 최고위원들이 문제 해결을 관철시키겠다고 모여서 논의한 적 없다”면서 “이들이 물꼬를 트고 여야 넘어야 한다. 데드라인은 12월”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여성을 공천에 배제하는 정당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역량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여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육사, 해사 수석 입학과 졸업 모두 여성”이라면서 “여성 공천을 하지 않기 위한 핑계이고 선출 방식이 남성지배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대 정당이 당선가능성 높은 지역에는 누구든 추천해도 당선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재선 의원을 지낸 진수희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지방선거에서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을 강조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진 최고위원은 “여성들끼리 있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민주당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본다”면서 “내년 선거는 민주당이 압승하는 분위기인데 민주당이 앞장서서 기초단체장에 더 많은 후보를 내고 광역단체장이 전무한 만큼 서울 정도에 여성 후보를 내서 당선시키는 노력했으면 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난 2번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소위 텃밭 지역인 강남벨트, 대구, 부산에 지역 저항과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여성 후보를 내서 당선됐다. 현재 여성 기초단체장은 새누리당 7명인데 민주당은 2명”이라고 비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내각 30% 달성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당은 화답하는 차원에서 전략공천 등을 해서 당선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미강 국민의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당내 변화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을 드러냈다. 그는 “당 혁신위에 여성주의 정치에 대한 당의 주요가치 설정이 중요하지만 당헌당규에 실질적으로 들어가야 하고, 정당 문화에 자리 잡아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 못 갔다. 이번 당헌당규 개정과, 정당 문화 어떻게 바꿀지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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