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연재 중인 ‘며느라기’는 얼마 전 2017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책으로 출간되거나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만화가 아닌 경우로는 최초다. ‘너 며느라기 봤어?’라는 말과 함께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진 이 만화는 흔하디 흔하고 지겹고도 지겨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갓 며느리가 된 여성이 제삿날 시가에 가서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고 그러다 남편과 싸우는 이야기다. 드라마틱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일상적인 이 풍경은 생각해보면 참 드라마틱한 일이다. 손님으로 저녁 초대를 받아 갑자기 앞치마를 건네받고 식기를 씻는다는 것, 과일을 얼마나 예쁘게 깎는지 테스트 당하는 것, 한 남자의 부록 취급을 받는 것. ‘원래 다 그래’라는 야만적인 말로 의구심은 묵살된다. 시스템은 다층적이고 견고해서 간단히 바꿀 수 없고 삶은 바쁘게 흘러간다. 또한 ’예쁨받기’의 유혹도 강하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 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며느라기는 그렇게 탄생한다.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80년대 여성들은 파워수트라는 것을 입었다. 파워가 있어 보이게 어깨선을 강조한 정장이었다. 81년생인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남녀평등이라는 단어는 흔했다. 차별은 존재했지만 마치 없는 것 같았고 노력하면 괜찮은 사회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나와서는 벽을 실감했지만 바뀌어가는 도중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끝판왕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여 며느리가 된 순간, 비이성적인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미분과 적분을 공부하며 쌓은 수학적 사고와 논리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행복과 버무려져 은밀하게 진행된다. 만화 며느라기는 이 모든 과정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본다. 주인공 민사린의 동그란 얼굴이 굳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표정도 굳어진다. 그래, 쌔한 기분의 정체가 바로 저거였어. 민사린이 말한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을 나도 겪었어. 

민사린은 직장에서는 능력있는 민대리다. 하지만 남편 무구영의 가족들은 그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식사 내내 무구영의 가족은 민사린이 모르는 이웃이야기를 한다. 누가 장가를 갔고 누가 취직을 했고 옛날에 누구랑 계곡에서 놀았고 그런 이야기들, 민사린은 낄 틈이 없어 밥만 꾸역꾸역 먹는다. 과일을 깎아 올리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오니 남은 것은 사과 두 쪽밖에 없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린에게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남기면 아까우니 먹어치우자’. 순간 덧글창은 폭발한다. 우리 집과 똑같네요. 소름 돋아요. 이렇게 또 비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며느라기의 최근화는 좋아요가 삼만 개가 넘는다. 

민사린의 시어머니가 비정상적이고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그녀는 결국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다. 피곤할 텐데 더 자라, 설거지는 그냥 담가만 놓아라, 같은 말도 하는 꽤 좋은 시어머니다. 남편 무구영이 악한인가? 그에게 일단 사린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다. 무지도 악이라면 악한이 맞지만. 이 만화에는 사이다 형님이 나온다.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똑부러지게 말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형님의 결석으로 일을 더 많이 하게 된 민사린은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촘촘한 그물망 안에서 모두가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단 한 명만 뒷짐을 지고 있다. 민사린의 시아버지다. 그는 가장 등장 횟수가 적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댓글로 욕도 덜 먹는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눈을 뜬다. 페미니즘을 한 번 알게 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민사린은 과연 어떤 약을 먹을 것인가. ‘그래도 내 남편은 나를 사랑해주고 우리 집에도 잘하니까’하고 속삭이는 파란 약을 먹고 며느라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빨간 약을 먹고 며느라기를 졸업할 것인가. 모두가 엔딩을 기다리고 있다. 

 

오지은 - 작가/음악인.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만들었다. ⓒ오지은씨 제공
오지은 - 작가/음악인.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만들었다. ⓒ오지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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