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⑥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 담다
[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⑥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 담다
  •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부설 한국여성평화연구원 원장
  • 승인 2017.10.30 16:07
  • 수정 2017-10-3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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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⑥ 통일평화운동

분단극복과 평화형성에

여성들 주체적 참여 노력

1991년 여성들이 최초의

남북민간교류 성사시켜

정세 부침에도 일본군 성노예

이슈로 남북 만남 지속

 

2006년 9월 6일 북한수재민돕기 물품지원 출항식 ⓒ한국여성단체연합
2006년 9월 6일 북한수재민돕기 물품지원 출항식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 30년 역사의 한 영역인 통일평화운동 30년을 정리하면서 필자는 “여성연합 통일평화운동 30년의 기록은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북미관계의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분단극복과 평화적 통일을 위해 어떻게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참여했는지 보여준다”고 총평했다.

이번에 여성신문에 각 영역별 30년의 기록을 정리하는 숙제를 받아들고 필자는 적잖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북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사일 발사 등의 문제로 점점 더 심각해져서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여성운동 대부분의 영역의 기록이 점차 개선되고 진보된 성과를 담고 있는 데 반해, 통일평화 영역은 그동안 여성들이 기울인 여러 가지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마치 전쟁의 위험이 실재하는 듯 매우 위태로운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0년 동안 여성들의 통일평화운동을 정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괴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30년 동안 진퇴양난을 거듭한 남북관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남북여성교류와 북한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파병반대운동, 주한미군기지 이전 반대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운동, 평화교육과 갈등해결훈련, 반군사주의 연대활동,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북아여성평화회의,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1325 국가행동계획 수립과 이행을 위한 활동 등 다양한 의제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노력해온 경험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직면할 수 있는 여성들의 평화를 만드는 힘, 평화의 역량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1992년 9월 1일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토론회 ⓒ한국여성단체연합
1992년 9월 1일 아시아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토론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성인지적 관점의 통일평화운동

여성연합은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정책 결정과 이행 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높이고,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를 요구하며, 남북민간교류에서도 여성들의 대표성을 확보하거나 독자적인 남북여성대회를 개최하는 일련의 노력을 통해 여성의 주체적·독자적 역할을 높여가는 성인지적 통일운동을 경주해 왔다.

여성연합이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성인지적이고 평화주의적인 관점의 정책 제안을 하게 된 계기는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여성,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여성평화통일포럼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포럼에서 여성들은 ①분단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인도주의적 원칙 ②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평화주의 원칙 ③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위한 법·제도 마련과 같은 성인지적 양성평등의 원칙 아래 첫째, 남북정상회담과 후속과정 등 통일과정에 시민사회의 대표성 제고, 특히 여성대표성 30%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둘째, 여성 관련 의제를 남북정상회담과 후속 협상에 포함, 셋째, 인도주의적 원칙에 의거해 북한여성(모성)과 어린이의 건강상태 개선에 역점, 넷째,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한 평화교육의 제도화와 공교육에 갈등해결과 평화교육의 반영 등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남북관계발전법, 남북교류협력법, 남북협력기금법의 개정에서 젠더 관점의 도입과 여성 참여를 보장하는 법조항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정부의 여성정책 기본계획에 통일·평화 의제를 반영함으로써 통일·외교·안보 영역에 여성의 참여 확대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2007년과 2012년의 성인지적인 평화·통일·외교·국방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대선의제로 수렴돼 지속적으로 정책의제로 제시됐다. 분단극복과 평화형성 과정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2010년대 이후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1325호’에 대한 국가행동계획 수립과 이행을 정부에 요구하고 좋은 거버넌스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의제개발 활동으로 발전됐다.

 

2015년 12월 23일 남북여성들의 모임 ⓒ한국여성단체연합
2015년 12월 23일 남북여성들의 모임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북여성교류의 경험과 성과

남북여성교류의 역사는 남북민간교류에서 ‘공적으로 최초의’라는 기록을 지니고 있다. 1991년 10월 열린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토론회를 위해 북측여성대표단이 남측 판문점을 통해 방문하고, 1992년 가을 평양토론회를 위해 남측여성대표단 역시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 방문한 것이 ‘공식적으로’ 최초로 남북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해 오고 간 교류라는 역사적 성과다. 아울러 평양토론회에서 남북여성들은 공동 과제를 발굴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대한 합의다. 남북여성교류는 1994년 이후 제1차 북핵 위기,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인해 중단됐다가,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재개됐다. 남북여성들은 6.15공동선언 실천, 전쟁반대와 평화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노력이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확인하는 장으로서 남북여성교류의 경험을 쌓아왔다.

특별히 2002년 10월 17일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모인 약 700여명의 여성들이 금강산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여성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대회에는 남쪽의 7개단위(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여성위원회, 6.15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여성위원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7대종단 여성위원회)의 여성대표단이 북측의 여성들을 만난, 분단 이후 최대 규모의 남북여성 통일행사였다. 남북여성들의 만남은 독자적으로 혹은 3.1절, 6.15공동선언 기념, 8.15기념행사 등 전체 남북교류행사 속의 여성부문행사를 통해 지속되었다.

남북여성들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서로 다른 체제에서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아왔으나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넓혀 가면서 통일된 미래를 준비하는 상호 학습의 경험을 쌓게 됐다. 특별히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돼 민간교류가 어려워졌을 때 남과 북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고리는 1992년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토론회에서 공동의 과제로 채택한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는 공감대였다. 일례로 2014년 3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해외여성토론회’에서 보여주듯 남북여성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공동의 목표와 일본군 성노예문제 해결을 통한 역사적 정의 수립이라는 공동의 관심사가 있다면 정세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남북여성들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006년 6월 15일 6.15공동선언발표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한국여성단체연합
2006년 6월 15일 6.15공동선언발표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 네트워크 형성의 경험

2006년 10월 6일 북한 1차 핵실험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여성연합에 소속된 평화여성회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인들 역시 히로시마·나카사키 핵폭탄에 희생된 피폭민족이며, 북한 핵실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여성들의 희망을 깨뜨리는 행위라는 점, 그리고 생명과 평화에 반하는 어떠한 핵실험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이어 여성연합은 시민사회와 함께 북한의 핵실험이 가져온 동북아의 핵도미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북핵문제는 평화적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의 과정에서 해결돼야 함을 천명했다.

여성들은 이후 시민단체들과 함께 ‘한반도평화국민협의회’ 미국방문단 활동(2004년), 평화여성회가 중심적으로 진행한 ‘동북아여성평화회의’(2008~2012년)를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동북아여성평화회의에는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 국가 중 북한을 제외한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여성대표단이 참석했고, 서울과 워싱턴에서 열린 이 회의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6자회담 참가국의 여성단체의 연대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별히 2009년에는 한국의 여성단체(여성연합, 평화여성회 등), 여성 정치인, 학자들과 함께 직접 워싱턴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 이슈를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미국 정계와 미국, 한국 언론에 동북아 평화를 위한 6자 회담에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고 여성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등 한국 여성평화운동의 글로벌 리더십 향상에 기여했다.

 

2009년 동북아여성평화회의 ⓒ한국여성단체연합
2009년 동북아여성평화회의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 통일평화운동의 향후 과제

여성연합의 평화통일운동은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 등 정세의 흐름이 일관성 있게 이어지기 보다는 서로 뒤엉키고 전진과 후퇴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한 중대하고 심각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 여성통일평화운동의 정체성과 주체적 역량을 발휘해 대응하고자 노력해 왔다. 향후 과제를 살펴보면 첫째, 통일·외교·안보 영역의 정책역량을 키우는 체계적 준비가 필요하다. 특별히 여성·평화·안보 유엔안보리 결의안 1325호 국가행동계획 이행과정에 대한 여성시민사회의 정책력 있는 개입과 좋은 거버넌스를 수립할 과제를 안고 있다. 둘째, 여성평화운동의 정체성, 평화주의, 인간안보 담론에 대한 지속적 성찰과 이론화, 정책 의제 개발, 그리고 평화통일 사회와 미래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전을 수립할 과제를 안고 있다. 셋째, 여성연합의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책의제 중심, 전문가 단체 활동가 중심이라는 한계를 넘어 성인지적 통일교육과 평화교육을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교재개발, 강사양성, 훈련프로그램 등 여성 대중의 삶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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