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아동탈취사건 피해아동 친모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 인터뷰

한국 법원, 프랑스 법원 모두

엄마의 독점적 양육권 인정했지만

법적 권한 인정받지 못한 아빠가

모녀 만남 막고 딸 레아 키워 

3년간 레아와 몇 시간 만난 게 전부 

그래도 딸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

 

프랑스인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는 3년
 전 한국인 전남편에게 5살배기 딸을 빼앗겼다. 그간 여덟 차례나 프랑스와 한국을 오갔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열린 모든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전남편은 시간만 끌며 버티는 중이다. 사법 당국조차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드란코트 씨가 딸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만 하루도 되지 않는다. 이 모녀의 기구한 사연은 양국 법제도에 숭숭 뚫린 구멍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프랑스인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는 3년 전 한국인 전남편에게 5살배기 딸을 빼앗겼다. 그간 여덟 차례나 프랑스와 한국을 오갔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열린 모든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전남편은 시간만 끌며 버티는 중이다. 사법 당국조차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드란코트 씨가 딸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만 하루도 되지 않는다. 이 모녀의 기구한 사연은 양국 법제도에 숭숭 뚫린 구멍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프랑스 가기 싫어요.” 법원 집행관이 오자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게 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니?”

“아빠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

“판사님이 이제 엄마랑 프랑스 가서 살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어.”

“제가 엄마랑 프랑스로 가면 아빠가 죽잖아요.”

2016년 8월 23일. 수원지방법원 1심 결정에 따라 아이를 프랑스인 엄마에게 보내려고 집행관이 출동한 날이었다. 7살 레아(가명)는 아빠와 살겠다고 했다. 집행은 무산됐다. 

레아 엄마의 대리인 자격으로 현장을 지켜본 김재련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를 따라가지 않겠다던 아이는 금세 김 변호사의 팔을 붙들었다. “저랑 엄마랑 하루만 놀게 도와주세요. 저는 불어도 영어도 못 하니까 선생님이 통역해 주시면 안 돼요?” 김 변호사는 “지속적으로 세뇌당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빠에게 붙들려 한국 땅에 갇힌 아이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와 딸 레아(가명)가 함께 찍은 사진들. 전남편이 레아를 한국으로 빼앗아가기 전이다.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 제공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와 딸 레아(가명)가 함께 찍은 사진들. 전남편이 레아를 한국으로 빼앗아가기 전이다.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 제공

발단은 2014년 7월로 거슬러올라간다. 프랑스인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는 한국인 전남편 J씨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프랑스 법원은 엄마를 아이의 보호·감독권자로 정했다. J씨는 면접교섭권한을 악용해 드란코트 씨 몰래 레아를 한국으로 데려갔다. 프랑스 법원은 J씨에게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로 징역 30개월형을 선고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자녀 인도를 거부한 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J씨는 한국에서 미성년자 유인죄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아동학대로 가정법원에서도 재판을 받는 중이다. 프랑스·한국 법원 모두 드란코트 씨에게 독점적인 자녀 보호권과 양육권이 있다고 결정했다. 

J씨는 거듭 항고했고, 엄마가 딸을 볼 기회를 거의 모두 차단했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레아를 되찾을 방법은, 놀랍게도 사실상 없다.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30일 미만 감치 명령을 내리는 게 다다. 법원이 아이를 인도하라고 결정해도, 그 아이가 의사능력이 있고 인도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수 없다(대법원 예규 “재특 82-1”). J씨는 아이를 인도할 때까지 1일 100만원씩 드란코트 씨에게 지급하라는 법원 결정도 따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30일, 드란코트 씨는 김 변호사와 함께 딸을 만나러 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출동한 경찰의 전화에 J씨는 “애는 괜찮다. 돌아가라”고 했다. 경찰은 “애는 잘 있다더라.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떠났다. 지난해 12월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유아인도결정 확정 후, 드란코트 씨와 김 변호사는 경호원과 함께 레아가 다니는 학교에 갔다. J씨와 그 부모가 나타나 이들을 저지했다. 경찰을 불렀지만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한 관여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법적 인질로 잡힌” 레아는 올해 8살이 됐다. 아이에 대해 어떤 법적 권한도 인정받지 못한 아빠가, 모든 권한을 지닌 엄마가 아이를 보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아직도 아이와 함께 산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서초구의 김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드란코트 씨는 대화 중 자주 눈물을 훔쳤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0월 23일 서울 서초구의 김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드란코트 씨는 대화 중 자주 눈물을 훔쳤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0월 23일은 미성년자약취유인죄로 기소된 J씨의 첫 공판기일이었다. 드란코트 씨는 재판 출석차 한국에 왔다. 벌써 여덟 번째 한국 방문이다. 이날 서울 서초구의 김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니 바깥 공기를 마시며 얘기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레아’를 발음하기만 해도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심리적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

소모적인 법정 공방이 길어지면서 그 피해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J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해 J씨가 아이를 “검증되지 않은 최면 센터에 데려가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해선 안 될 수위의 성적, 가학적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최면술사는 레아에게 엄마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적 없는지, 엄마가 자신을 프랑스로 끌고 가면 어떡할 것인지 등을 물었다. J씨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녹화해 유아인도재판에 제출했다. “영상을 보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질문 자체가 명백한 아동학대였습니다. 그것은 구속할 만한 범죄라고 봤어요.”

다문화가정 자녀인 레아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2015년 수원가정법원은 J씨에게 레아가 프랑스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J씨는 집에 온 프랑스어 교사를 문전박대했다. 작년엔 경기도 수원시의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던 레아를 갑작스레 성남시의 한 대안학교로 보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인가 대안학교다. 김 변호사는 아이가 교육청의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될까 우려하고 있다. 미인가 학교에선 출결·졸업, 교육 과정 점검 등 어느 정도의 학생 관리가 불가능하다. ‘미취학 인원’으로 집계돼 학력도 인정받을 수 없다. 

 

레아가 드란코트 씨의 전남편에 의해 한국으로 탈취되기 전 찍은 사진.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 제공
레아가 드란코트 씨의 전남편에 의해 한국으로 탈취되기 전 찍은 사진. ⓒ아가타 마리 드란코트 씨 제공

‘헤이그국제아동탈취협약’에 가입한 나라라면, 부모는 자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빼앗긴 자녀의 반환이나 면접교섭권 행사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 협약에 따라 자녀의 반환을 인정한 첫 사례가 최근 나왔다. 일본에 사는 여성이 “남편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데려간 아이들을 보내달라”며 낸 소송을 냈고, 지난해 2월 한국 법원이 여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상대국이 우리나라의 가입을 수락해야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2012년 12월 가입했지만, 프랑스가 한국의 가입을 수락해 양국 간 협약이 발효된 건 지난 9월 1일이다. 그 이전에 발생한 드란코트 씨의 사건엔 적용되지 않는다.

“아이를 제 손으로 찾아오고 싶었어요. 아이가 친부의 학대로 완전히 바뀌어버리기 전에요. 그러나 프랑스 외무부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그건 복수납치라고, 판결이 내려져 정의가 실현되면 아이를 되찾게 될 거라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전 모든 법적 절차를 존중했어요. 가능한 모든 소송을 걸었고, 모두 이겼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무너지는 까닭입니다.”

모든 일이 프랑스에서 벌어졌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선 한쪽 부모가 친권·양육권을 독점할 경우 아이의 의사 확인 없이 바로 그 부모에게 인도한다. 프랑스 형법전은 부모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아이 인도를 거부하는 경우, 이혼한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양육하는 부모가 면접교섭권을 지닌 부모에게 이사한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 모두 처벌하고 있다. 

 

모녀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은 매일 줄어들고 있다. 지난 3년간 드란코트 씨는 딸과 고작 몇 시간만을 함께 보냈다. 레아는 그새 프랑스어를 잊어버렸다. 5살 때까지 살며 익혔던 엄마 나라의 언어다. 지난달 10월 24일 엄마가 법원집행관과 함께 딸이 다니는 학교에 갔을 때, 레아는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고, 프랑스어도 못하니까 안 가겠다”고 했다. 드란코트 씨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다음 달 또 한국에 온다. “저는 늘 레아가 지금 얼마나 두려울까를 생각해요. 한쪽 부모와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어린 아이에겐 아주 무섭고 힘든 일일 거래요.”

언젠가 딸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양국 정부로부터 그간의 피해를 보상받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보상보다는 법제도의 변화를 원합니다. 국제결혼 커플은 점점 늘어날 테고, 아동 불법 탈취 사건도 계속 발생할 거예요. 한국과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법제도를 정비하고, 피해 지원 기금도 마련하길 바랍니다. 적어도 저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더 늘지는 않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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