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세 아이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조직 차원에서 지원할 방안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

대한민국 장관의 취임사에 ‘아이’, ‘가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남녀동수 내각 실현을 위해서 초대내각에 역대 정부 최다인 여성 장관(급) 6명(31.6%)을 임명 이후 정부 부처에서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외교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국가보훈처 등 핵심 부처나 남성이 장악한 부처에 여성이 임명되면서 변화의 파장은 더 크다. 역대 정부의 초대내각 여성 비율은 김영삼정부 18.7%, 김대중정부 17.6%, 노무현정부 21.0%, 이명박정부 6.6%, 박근혜정부 11.7%에 그쳐 여성이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7월 5일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프리젠테이션 형식의 취임사를 하면서 ‘계승이 아닌 전환’을 강조했다. 4대강 사업 후속 조치와 물관리 일원화 등의 큰 과제를 풀어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서 의지의 표현이다.

김 장관이 환경부 수장에 발탁된 배경으로 환경에 대한 식견과 철학 외에도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지속가능발전 비서관 등 다양한 공직 경험과 정무적 감각이 높게 평가됐다.

외환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결혼 후 대구에 정착한 김 장관은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으로 대구 시민대표로 나서며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1993년 한국여성민우회 환경위원장을,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방자치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1995년 서울 노원구 의원에 당선돼 공직에 입문했다.

환경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역대 장관에 여성이 많은 편이다. 김 장관은 5번째 여성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30%에 도달했다. 환경의 근간은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성과 여성성이 상통한다는 점에서 30%는 한참 낮은 수치다.

취임 100일이 조금 지났지만 강한 추진력으로 환경부가 20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원과제도 풀었다. 실장급 한 자리를 늘린 것. 이를 위해 장관이 직접 발로 뛰면서 타 부처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을 만나면서 설득했다. 지금도 물관리 일원화를 위해 전국을 누비고 있다.

환경에 대한 김 장관의 철학과 신념이 분명하다는 점도 내부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환경부의 한 직원은 “환경부 수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게 환경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라 생각하는데 김은경 장관은 뚜렷하다. 왜 환경을 해야 하는지 가치뿐만 아니라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분명한 확신도 있다. 콘텐츠도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은경 장관은 서울-세종 이동 같은 단거리용으로는 전기차인 준중형급 아이오닉을 이용하고, 장거리 이동시에는 소나타 하이브리드를 탄다. 예전 환경부 장관들은 에쿠스를 탔던 것과 확실히 비교되는 장면이다. 직원들이 김 장관에게 승차감을 우려하면서 말렸지만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김 장관의 환경 보호 실천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어서 환경부 직원들도 놀랐다는 후문도 있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환경부는 세종시의 조치원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복지시설에 기증하는 행사를 했다. 김 장관은 찐고구마 몇 개를 구입했고 상인이 일회용 투명비닐팩에 먼저 담은 후 검정비닐봉지에 다시 넣으려고 하자 담지 못하게 했다. 에코백, 머그컵, 백팩은 김 장관의 필수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함께 일하다보면 각종 상황에서 습관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 직원은 “다른 부처와 달리 환경부는 생활 속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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