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문화 이젠 터놓고 얘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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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문사·폭력등 인권침해 심각

‘군대 있으면 안전’ 생각부터 바꿔야

“남들도 다 하는 것이고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지만 그건 명분이고 한창 나이에 군에 가 2년 8개월 동안 썩는 거죠. 갔다 오니 전에 가졌던 창의력이나 자신감 같은 건 사라지고 오직 명령에 복종해야 산다는 관료주의적인 사람이 돼 있더군요. 면제받은 친구 보면 억울하단 생각도 들고…”(예비역 ㄱ씨)

“회사에서 남자들은 짬만 나면 군대 얘기예요. 힘들었다는 거 알죠. 그래서 하루 이틀은 응해줬지만 계속되니 짜증나요. 어떤 땐 일부러 군대 얘길 꺼내서 여직원들을 무시하는 것 같단 생각도 들고요.

특히 군에 가야 사람된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군에 안 간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는 얘기잖아요?”(H회사 ㅇ씨)

작년 초 군가산점제 폐지를 둘러싸고 징병제와 군복무에 대한 군필자 남성과 예비역들의 피해의식이 폭발하다시피 돌출했다. 한편 그 이면에는 군미필자 남성과 여성들의 피해의식도 공존하고 있다.

징병제에 대한 불만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이버상에 군축을 주장하고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이 생겨났지만 제도적 문제제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남녀 대립적인 사회분위기만 조성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군대 내 의문사와 폭력문제,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 등이 하나둘 이슈화되면서 평화운동단체들과 여성·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이제 근본적인 얘기를 해야할 때”라는 각성이 일고 있다.

사이트 폐쇄 관련 징병제 논란 다시 일어

힘 우월주의, 여성등 약자에 대한 차별불러

여성운동의 피할수 없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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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0일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과는 병역기피를 조장한다는 혐의로 3개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해당 사이트를 자살 사이트나 폭탄 사이트 등과 같은 반사회 사이트로 규정,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통보해 폐쇄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2일 평화인권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등 8개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서를 내 “경찰의 수사방침은 징병제의 문제점과 관련된 토론과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조치”라며 반발했다. 경찰의 수사대상인 논서비암(www.non-serviam.org) 운영자 ㅂ씨는 “징병기피를 선동한 적 없다. 전쟁을 반대하기에 군대를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명을 낸 단체들은 경찰의 이번 수사가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 징병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군복무가산점제 논란 이후 생겨난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은 “반강제적인 군복무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만큼 대체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모병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군 의문사와 폭력 등 군내 인권침해 문제와 더불어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대신 철창을 택하는 이들의 사례가 이슈화되었고 지난 달 17일 드디어 평화운동단체들과 여성·시민단체들이 징병제에 대한 비공식 모임을 열었다.

작년 10월 이탈리아가 2백년만에 징병제를 폐지하고 독일에서도 정치권에서 징병제 폐지요구가 확산되는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징병제를 포기하고 군병력도 대폭 축소하고 있다. 군의 양적 비대함보다 전문직업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또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법안을 작년 1월 통과시키는 등 병역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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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징병제 논의에서 단체들은 스스로 “‘감히’ 징병제에 대해 말한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서 징병제와 군복무는 ‘자유롭게 이야기해서는 안될’ 성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지금까지 2명의 네티즌이 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논서비암에 대해 경찰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형법상 ‘병역거부단체 조직 및 가입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창수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은 “현재 여론은 징병제에 대한 논의를 군대기피 정도로 평가절하해 논지를 피해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징병제를 둘러싸고 군인 인권, 병역비리, 군복무에 대한 형평성과 위화감 문제, 여성·장애인의 노동권,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남성들의 사회성에 미친 영향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자칫 ‘군대 가자, 가지 말자’의 단순한 도식에 묻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50년 분단의 역사 속에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군사주의의 폐해들부터 돌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번 논지를 피해가면 만회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것은 이미 군복무가산점제 논란을 겪은 여성단체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군가산점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과 장애인의 노동시장진출의 벽을 낮추자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남성집단의 여성에 대한 극단의 혐오로 겉잡을 수 없이 번져 합리적인 토론이 거의 불가능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정강자 대표는 “여성계가 제안한 군제도와 군문화 개선 목소리는 현실성이 없는 방어책으로 치부되고 있어 징병제와 군대문화 개선문제를 여성운동이 부각시키고 끌고 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대도 안 갔다온 여자들이 어디서 군을 논하는가’라는 사회적 편견을 무릅쓰고 여성단체와 여성학자들은 징병제와 군에 대해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작년 6월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재미 여성학자 권인숙씨는 “50년간 징병제도가 유지돼 오면서 형성된 군사문화에 대해 왜 한 번도 논의하지 못 했나”라고 문제 제기했다. 권씨는 “애국심, 국가방위 등의 가치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는 동안 남성성을 공고화하는 징병제야말로 성폭력과 매매춘, 성역할 고정관념 등 여성차별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주장했다.

여성학자들은 ‘힘 우월주의’에 기반하고 전쟁과 군대를 통해 구현된 군사주의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과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며, ‘무력을 분쟁의 적법한 해결수단’으로 보는 군사문화는 많은 여성들을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만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징병제와 군복무, 군사문화는 그것이 힘의 질서에 기초한 권위적 가부장제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김현숙 대표는 “한국에선 징병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제기들이 ‘반공주의’ 앞에 맥없이 무너져왔다”며 “군대가 있으면 안전하다는 기본 가정이 틀렸다는 것부터 깨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대가 버티고 있음에도 IMF와 환경파괴 등 경제적, 생태적 위기로 나라의 안보가 위태로운 실정이며, 오히려 군대가 존재함으로 인해 기층 여성들은 대규모 성매매와 강간, 살인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씨는 “징병제의 문제점에 대응한 활동은 생명주의적,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안보’의 개념부터 다시 세워나가면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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