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유명 남성 방송인의 성폭력

방송 제작진의 묵인·방조 충격

여성 장관 많다고 성평등국가인가

 

 

 

해시태그 미투(#MeToo)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다. 어제 지난 일요일 주요 3개 도시인 스톡홀름, 요테보리, 그리고 말뫼에서 동시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집회가 열렸다. 이 뿐 아니라 12개 중소도시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렸다.

 

스톡홀름 세르겔광장에서는 스톡홀름 여성 대표들과 오사 레그네르(Åsa Regnér) 평등부 장관이 참가해 성폭력문제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레그네르 평등부 장관은 12월까지 정부 차원에서 성폭력 예방법을 의회에 제출해 직장과 가정에서 성폭력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교육부와 함께 학교 교육, 평생교육 등을 통해 사회계도 운동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그동안 여성들이 신체나 언어폭력을 당한 다양한 경험들이 봇물처럼 쏫아져 나오고 있다. 용기를 내 자신이 당했던 성희롱을 폭로한 여성 방송인은 5년 전 방송 출연을 빌미로 자신의 몸을 만지며 위협한 방송 제작자를 고발했다. 이 행위는 도가 점점 높아지며 반복적으로 지속됐다고 한다. 그 뒤로 여러 여성 방송인들이 더 용기를 내 유사한 내용의 폭로에 동참했다. 여성 방송인들에게 지목된 사람은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DIY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마틴 티멜(Martin Timell)이라는 진행자였다. 10년 이상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른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방송인이었기에 스웨덴 사회 전체에 주는 충격파는 너무나 컸다. 결국 상업방송 TV4의 간판 방송인으로 활동  한 마틴 티멜은 방송 진행자의 직위를 이용해 여성 진행자들의 몸을 만지고 성희롱과 언어폭력 등을 일삼은 점을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해고를 면할 수는 없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10년 동안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방송국 이사장과 제작진들이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도급 제작사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그의 성추행 행위를 보고 방송국 운영진에게 방송 진행자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지만 제작진은 이를 묵살했다. 전국적 인기프로그램 진행자가 차지하는 위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은 광고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상대로 한 성희롱과 여성폭력적 농담들은 방송현장에서 당연시 하는 스웨덴 연예인들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들이 전국의 집회 광장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가슴 속에만 깊이 담고 있었던 아픈 이야기들을 털어 놓고 있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스웨덴에서 조차 여성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남성에게 당한 성추행을 공유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설령 용기를 내어 털어 놓았다고 해도 웬만하면 덮어 버리려고 하는 사회적 인식이 더 큰 문제다. 문제를 키우지 말고 덮으면 모두다 편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이렇게 만든다. 이것이 두려워 여성들은 마음속 깊이 담아 두고 고통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과연 진정 성평등국가라 할 수 있을까 싶다. 한 여성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털어 놓은 아픈 경험들이 아직도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과연 그동안 이룩해 놓았다고 하는 성평등국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호소한다.

여성 장관과 여성 국회의원이 남성과 동수가 됐다고 과연 성평등국가일까?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참여율과 여성 고용율이 높다고 과연 진정 노동시장에서 성평등이 이뤄진 것일까? 지금까지 대학 강의와 다양한 강연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성평등 의식과 성평등 지표를 사용하던 나 자신도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이 높게 구현됐다고 자랑하던 현재 스웨덴에서 봇물같이 쏫아지고 있는 여성들의 용감한 폭로를 접하면서 과연 성평등사회 그리고 성평등국가는 무엇을 지양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스웨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불평등적 요소를 고치기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분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행위를 감당하게 하는 것은 단지 성폭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인학대, 아동학대, 어린이집 원생학대, 장애인폭력, 소수민폭력 뿐 아니라 방송 현장, 영화촬영 현장 등 상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폭력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운동과 정책적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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