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 사건 공동대책위 발족까지

영화계 문제 넘어 사회 현안으로 대두...“재발 방지 위해 정부·업계 나서야”

이어보기▶ ‘남배우A 성폭력 사건’ 유죄 판결이 남긴 것

‘남배우A 성폭력 사건’ 유죄 판결은 그간 ‘#영화계_내_성폭력’의 이름으로 터져 나온 고발들에 대한 의미 있는 ‘응답’이다. 그동안 영화계 내 성폭력은 업계 전반의 낮은 인권 의식, 성폭력을 엄밀하게 규정하는 일의 어려움, 인권 유린을 ‘예술’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묵인 혹은 방조됐다. 영화계엔 ‘여배우는 잘 벗어야 한다’ ‘술자리에 안 오면 배역은 없다’ ‘새벽에 전화 안 받으면 제명이다’ 등 약자를 겨냥한 협박과 폭력이 비일비재했다. 현업 종사자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업계 유력 인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엔 김기덕 감독이 영화 촬영 중 배우를 폭행, 모욕하고 불쾌한 행위를 강요했다는 고발이 나와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 처벌은 물론 자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영화계 내 성폭력 사건의 고발자·피해자들과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지난 8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8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그러나 성폭력 사건의 법적 해결은 쉽지 않은 문제다. 배우 곽현화 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IPTV 등에 유포한 이수성 감독을 성폭력특례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이 감독에 무죄를 선고했다. 영화계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거나 가해자를 지목해 비판한 이들이 가해자로부터 무고나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애초에 SNS가 영화계 내 성폭력 피해 고발 창구가 된 것은 업계 자체에 성폭력 사건에 신속하게 합당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구성원들의 의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영화 스태프 C씨는 “촬영장이나 뒤풀이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나 배우를 대상으로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일어나도, 제대로 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받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게 다반사다. 모든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이나 피해 구제 절차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가 ‘촬영장 분위기를 망치는 프로불편러’ 취급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갑질 성폭력’ 만연한 문화예술계...문제제기하면 ‘프로불편러’ 취급)

업계 종사자들과 여성·인권 전문가들은 피해자 제보 접수, 법적 지원, 영화계의 제도·문화적 변화를 모색하는 토론 등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걷기왕’ 제작진은 지난해 3월 남순아 작가의 주도 아래 전원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지난달 독립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과 독립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포럼을 열었다. 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는 영화계 내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제보와 상담(02-736-1366)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여성신문 주최 ‘여성문화예술연합’ 간담회에 참석한 김린 여성디자이너정책모임 ‘WOO’ 대표, 김소마 ‘푸시텔’ 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여성예술인연대 AWA의 유재인·전유진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월 27일 여성신문 주최 ‘여성문화예술연합’ 간담회에 참석한 김린 여성디자이너정책모임 ‘WOO’ 대표, 김소마 ‘푸시텔’ 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여성예술인연대 AWA의 유재인·전유진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진행한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캠페인.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진행한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캠페인. ⓒ한국독립영화협회

정부와 업계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136개 기관·단체 등이 꾸린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검찰의 철저한 수사 ▲영화계 내 인권침해 문제 해결 노력 촉구 ▲정부 차원의 영화계 내 인권 침해 실태조사 정례화와 예산 마련 등을 주문해왔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대응 연대체인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과 만나 △피해자 긴급 지원 △‘성폭력·성차별 금지’ 표준계약서 의무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성차별 해결 TF팀 구성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정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예술 활동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이들은 거듭 강조했다. (관련기사▶ 성차별·성폭력 없는 예술활동, 정부가 보장하라)

이어보기▶ 포르노거나 ‘꽃뱀’ 몰이거나...도 넘은 영화계 내 성폭력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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