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장

제10차 헌법 개정은

민주주의 공고화 공감대 형성

성평등 개헌은 미래지향적·

지속발전가능성 차원서도 중요

‘양성평등’보다 ‘성평등’이 적합

국민소환권·국민발안권·

지방분권도 관심가져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년 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에서 헌법 조문을 담은 노래가 울려 퍼졌다. 집회 닷새 전인 24일엔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을 전격 제안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였다. 4개월 전인 6월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임기 내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개헌은 국민·국회·정부 모두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가 됐고 올해 1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가 설치됐다.

어느덧 제10차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일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개헌특위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고, 이를 위해 2월까지 개헌안을 완성하고 5월 중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계획이다. 3개헌특위는 민간 자문위원회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자문위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헌법 개정 과정의 현재 진행상황과 이번 개헌의 중요성, 성평등 조문 명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위원장은 여성 최초의 법제처장, 이대 총장을 지냈으며 독일에서 행정법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이대에서 법여성학을 강의해 왔다. 12일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근엄한 법학자라는 선입견보다는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인상이었다.

인터뷰 전날 개헌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이번 개헌 환경이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시기적으로나, 개헌 방법으로나, 국민적 인식에서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국회가 구성한 자문위원회도 학계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회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의지를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되고 있는 점은 개헌특위가 풀어야할 과제다. 헌법의 다른 한 축인 기본권에 대한 관심은 그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헌법에서 권력구조의 형태가 중요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면서 기본권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하 일문일답.

-8개월 넘게 개헌특위 자문위원장으로 활동 중인데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무엇보다 국민, 국회, 정부의 확고한 개헌 의지가 있다. 개헌의 방법 측면에서 국민의 참여가 가능하기도 하고 요구되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개헌이라 생각한다. 9차례 개헌과 달리 국민의 소리가 많이 참여돼야 하는데 지난하겠지만 그걸 국회가 어떻게 담아내고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제10차 개헌과 9차까지 개헌의 차이점을 비교해 달라.

“개헌의 내용 측면에서 과거 아홉 번의 개헌은 주로 기존의 권력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통치구조 개편에 관심을 두고 이뤄졌다. 이번에 큰일(박근혜정부 국정농단사태)을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좀 더 나은 헌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공고화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 개정은 지난 30년간 발전된 변화도 담고, 앞으로의 변화도 담아 미래를 유도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또한 개헌 환경도 좋다.”

-개헌안을 두고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권력구조부터 기본권도 그렇다.

“이번에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긴 하지만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의 두 가지 축은 권력구조와 국민의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시대적 상황도 고려해서 30년 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기본권도 있어 보강하고 있다. 권력구조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통치구조를 뜻하므로 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통치구조가 실패했다고 보는 부분에서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를 검토하고 있는데 그게 첨예해서 합의가 쉽지 않다. 기본권은 그보다는 더 쉬울 수 있다. 사회 변화를 담는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발전, 정보사회 발전, 다문화 사회 변화 등이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되고 있다.”

 

-성평등 조항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헌법에는 그 나라의 상황, 역사, 현재 정치현실 등이 담긴다. 우리는 특별한 성평등 규정을 갖고 있지 않은 헌법이지만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여러 분야에서 관련 입법을 해 왔다. 그러나 국제적 상황에서 성평등 지수를 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다. 한국 여성의 교육수준은 높고, 여성 경제적 참여율도 낮기는 하나 어느 정도 도달했지만, 의사결정, 정치 참여에서 여성의 참여는 매우 뒤쳐져 있다. 경제분야에서도 성별임금격차 문제, 비정규직 문제, 임원 비율에서의 여성 저대표성 문제 등이 있다.

현재의 기본권 조항 중에서 성별에 의한 차별금지는 제11조에서 분명히 명시하고 있지만 성평등에 대한 개별조항은 없고 여러 조항에서 사회권 보장으로 성평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합쳐서 일반평등조항 외에 성평등 조항을 규정하여 성평등 실현을 위한 기본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평등은 모든 평등의 출발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평등 개헌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면.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을 위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고 헌법에 담아 국가 의지를 규정한다면 현재의 차별 현실을 사회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이의 해결을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개헌이 현실 인식을 함께 하는 계기가 되면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굉장한 발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개헌은 미래지향적이고 지속발전가능성에 대한 내용도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성평등 규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일부에선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 참여 확산을 위해 대국민토론회를 전국 11곳에서 했는데 특정단체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고 들었다. 성평등 개념에 대한 오해도 왜곡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이미 1984년 가입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정신이나 국제인권 규약 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개헌이 앞으로 미래 지향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헌법이 돼야 한다. 성주류화 정책 등 국가가 이미 성평등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여성가족부도 Gender Equality(성평등)를 쓰고 있어서 양성평등보다는 성평등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 성평등, 남녀평등 등의 용어에 대한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헌법에 적극적 조치의 근거 조항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다.

“법은 공동체의 많은 이해관계와 갈등을 사전에 조정해 분쟁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성 증진을 위한 조항이 지금까지 개별법 속에 있지만 헌법에 규정함으로서 더 확산되고 구체화되는 계기가 된다. 공직선거법에 국회의원 지역구 30% 여성 공천이 노력조항으로 들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헌법 제1조의 규정처럼 남녀동수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개헌에 적극적 조치를 규정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국가는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고, 그럼에도 차별이 제거, 실현되지 않으면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조치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나 법리론 등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정리가 되었다.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는 적극적 조치의 근거 조항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권력구조 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은?

“현재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제1소위에서 기본권, 경제/재정, 지방분권에 대해 논의하고, 제2소위는 정부형태, 정당/선거, 사법부 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소환권, 국민발안권과 지방분권 강화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를 하고 있지만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획일적인 자치가 되고 있는데 보다 민주적인 제도가 되려면 각 단체별 자치 입법권, 행정권, 조직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삶도 지방과 중앙의 차이가 크다. 여성이 다양한 참여, 제도가 만들어지면 민주주의의 강력한 힘이 된다. 국민의 반이 여성인데 국민의 주권을 강조하는 거라면 국민의 반인 여성이 배제될 수 없다. 각 지역에서 함께 실현될 수 있다. 또 외국과 반대로, 우리나라는 중앙정치보다 지방정치에서 여성의 참여가 더 저조하다. 여성의 참여가 지방분권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지역이 더 삶의 현장이다. 생활정치라고 하지 않나. 이런 의미에서 이번 개헌 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 위원장은 성평등 개헌과 관련해 얘기하던 도중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김지영은 87년 현행 헌법 하에 살아온 또래”라면서 “우리가 30년간 많이 노력했지만 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이 여전히 많구나, 싶어 가슴 아프더라”고 밝혔다. 또 “1998년생인 대학 1학년 학생들도 함께 읽었는데 그들 역시 여전히 공감하는 바가 많았고, 분노했다”면서 “학생들은 우리 사회의 차별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명감도 가졌다고 한다. 개인의 삶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 모두 이렇게 문제를 인식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욱 개헌특위 자문위원장은

국내 법여성학 분야의 권위자이다. 1995년부터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콘스탄츠대학에서 행정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여성개발원을 거쳐 모교인 이화여대 강단에 섰다. 2001년 이대 법과대학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설립된 ‘젠더법학연구센터’의 초대소장을 역임하고 2010~2014년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다. 2005년 법제처 57년 역사상 첫 여성 법제처장(장관급)을 지냈다. 이밖에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여성정책담당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여성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2007~2009), 헌법재판소자문위원회 위원(2011~2013),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2012~2013)으로도 활동해왔다. ADeKo(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장(2011~2014), 한독포럼 공동대표(2012~2016) 등 독일 관련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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