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연속 OECD 최저 출산율

저출산은 삶·가족 형태의 다양성,

성평등 사회 실현 과정에서

함께 가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최근 아동수당까지 수많은 저출산 대책이 나왔지만 1.3 이하 초저출산 수준을 벗어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한국은 초저출산 현상을 경험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13개국 중 가장 최장 시간 초저출산율을 경험하는 국가이다. OECD 공식집계 통계가 나온 2001년 이후 2015년까지 14년 연속이며, 2016년 통계청 통계까지 감안하면 15년 연속이다.

이에 따라 인구의 양적 변화와 관련 공포 시나리오가 조성되고 있다. 인구절벽, 생산가능인구 감소, 인구부양부담 증가, 경제성장 둔화 등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여성경제활동 참가 확대, 노인 개념의 변화,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야 별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 구성의 기본 원리가 있다. 민주주의가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회구성 원리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높은 수준의 연금을 주고 의료보장을 완벽하게 해주고 무상교육을 제공해도 민주주의라는 기본토대가 없다면 소용없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 간 민주화가 빠진 산업화의 성과에 문제제기를 하고, 적폐청산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 가치 간 충돌, 갈등, 타협을 통해 진행된다. 어떤 형태의 자유와 평등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서 해당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진행된다. 그래서 역사적 배경이 다름에 따라 민주화의 정도나 양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민주화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라는 논쟁을 둘러싸고 한국사회는 계급·계층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상당한 수준에서 이룬 듯하다. 일자리, 사회 밖 청년, 금수저·흙수저론, 노인빈곤 등 담론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민주화를 가능케 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성평등 관련 사회적 합의 수준은 매우 낮은 양상이다. 제1야당 대표가 젠더폭력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는 상황은 그렇다 치자. 성평등 이야기를 이제 ‘동성애 담론’으로 포장해서 비열한 정치적 공방 수단으로 삼는 양아치 같은 일부 집단의 행태도 ‘민도(民度)’가 조금만 더 높아지면 사라질 해프닝으로 위안을 삼자(‘민도’라는 구닥다리 표현을 써서 미안하다. 그러나 이 표현을 적용해도 이 경우는 될 만한 상황인 듯하다).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진보’라 자부하면서 변화의 중심에 서있다는 사람들이 “성평등이 이뤄지면 사회에서 무엇이 변하는 것이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는 큰일이다.

다양하면서 복합적인 저출산 요인이 있다. 가족관계, 사회규범, 경제상황, 보건·의료, 정책 등 차원에서 많은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의 기본토대는 결국 출산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이다. 문화적 배경이 상당히 차이나는 터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대체로 여성 고용률이 60% 이상이 될 때 초저출산 문제는 해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 고용률 60% 이상을 유지하면서 대체출산율 2.1에 가깝게 다가가지 못하는 국가는 현재 일본, 독일 정도이다. 여성 고용률은 단순히 노동시장 성차별 양상 중 하나가 아니라 여성이 경험하는 정치ㆍ경제·사회·문화적 차원 성차별의 종합적 결과로 볼 수 있다. 여성취업 생애주기로서 M자형 곡선, 여성 관리자 비율을 현저히 낮추는 유리천장 효과, 독박육아, 젠더폭력 등이 여성의 낮은 고용률로 나타난다.

노동과 돌봄영역에서 성차별을 극복하고 성평등 사회로 진입한 국가의 경우를 보면 여성 고용률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낮아지다가, 여성 고용률이 일정 수준 이상(대체로 60% 이상)으로 올라가면 다시 출산율이 높아지는 출산율과 고용률 간 U자형 관계를 보인다.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독일도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10년 사이 이행의 계곡 밑(저출산율)을 나와서 고용률과 출산율이 함께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행의 계곡 밑바닥 단계 혹은 이행의 늪에 빠진 상황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초저출산을 경험했던 국가가 여성 평균 고용률이 60%를 넘어가면서 출산율도 1.4~1.5 수준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2014년 현재까지 여전히 1.3 수준의 출산율을 보이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슬로바키아, 폴란드, 한국 등 초저출산 국가를 보면 평균 여성 고용률이 51.9%에 불과하다.

여성 고용률 자체만 갖고서 출산율과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 고용률이 단순한 하나의 개념이나 현상이 아니라 ‘성평등 노동시장, 남녀 일ㆍ생활 균형,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라는 복합적 구도의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높은 여성 고용률과 이에 비례한 출산율을 나타내는 국가를 보면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와 성평등 상태를 이룬 성평등 복지국가이다. 자유주의·보수주의·사민주의 복지레짐을 막론하고 성격차 지수가 상위인 국가가 2.0에 가까운 출산율을 보여준다.

저출산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고 접근할 경우 출산주체로서 여성을 대상화, 객관화하기 쉽다. 저출산은 몇몇 정책으로써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삶·가족 형태의 다양성,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함께 가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평등 이전에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체제를 확립했다. 그러나 전통적 복지국가에 대한 젠더 관점 비판이 1970년대 이후 거세게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 노동자 중심 복지국가 체제 40년을 보내면서 나타난 결과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상당수 국가가 한번쯤은 경험했던 저출산 현상이다. 이러한 국가는 다양한 삶의 형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양화·다문화 사회, 그리고 존립의 기본가치로서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부수적 효과로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하고 있다.

복지국가만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필요조건으로서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와 충분조건으로서 성평등 사회와 다양한 삶의 형태가 만나면 그때야 비로소 한국사회 청년들은 가족을 이룰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것이다. 초저출산이 16년째 지속되는 한국사회에 남은 시간이 그리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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