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적 노동자’에서 노동의 주체로

평등노동 확보 위한 법·제도 개선운동 주력

모성보호제도 마련부터 모·부성권 운동까지

 

2017년 5월 11일 여성노동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5월11일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 타파의 날’ 선포식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 5월 11일 여성노동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5월11일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 타파의 날’ 선포식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노동운동은 출범 초기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의 주요 활동분야였다. 여성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여성단체연합 생존권지원대책위원회’(1986)로부터 출발했으며, 출범 후 여성노동자 투쟁을 지원해 전원 복직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여성연합은 출범 후 10년간 여성노동운동 단체와 함께 생산직과 사무직 여성노동자 운동 차원에서 여성노동자의 역량강화, 여성노동자 투쟁 지원, 여성노동문제 이슈화, 여성노동정책 마련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고용안정 확보정책 마련(남녀고용평등법 제‧개정), 영유아보육법 제정, 신인사제도의 문제제기와 대안요구,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금지, 적극적 조치(고용할당제) 실시를 요구했다. 또한 모성보호와 직장보육 등의 복지확보투쟁,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의 개선운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해 여성노동자를 위한 법·제도를 개선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초기 10년의 법‧제도 개선운동을 이어받아 여성연합은 노동위원회(2005년 이후 사회권위원회)를 통해 회원단체 또는 전국여성노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과 과제별 연대체를 구성해 여성노동 관련 법‧제도를 구축했다. 법‧제도의 내용은 남녀고용평등법 3차 개정으로 직장 내 성희롱 금지 및 예방 법제화, 출산전후휴가 90일 고용보험 지급과 유급 육아휴직제, 2년 이상 고용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 보호입법,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법제화, 여성실업대책 제도화 등이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관행 바꾸다

여성을 ‘보조적 노동자’로 보는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성차별적인 고용구조는 여성의 평등한 노동권 확보를 위협해 왔다. 성차별적 고용구조로 발생하는 여성 결혼퇴직제, 여성 조기(직급)정년, 직장 내 성희롱 등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회원단체들이 주도해 대응해 왔다.

1996년 대법원이 ‘한국통신공사 전화교환원 김영희씨 해고사건’과 관련해 여성차등정년제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항의했고, 골프클럽 경기보조원에 대한 40세 조기정년 관행 (2000년 프라자 컨트리클럽, 88컨트리클럽, 한양컨트리클럽 등 여러 곳에서 조기정년 해고 발생)을 성차별적 부당해고로 보고 경기보조원을 조직하는 노조와 함께 사회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IMF 외환위기로 인한 고용위기에 노동시장은 노골적으로 성차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여성을 생계부양자가 아닌 보조적인 노동자라며 가장 우선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봤고, 일부 노동조합은 이를 합의 내지 용인하기도 했다. 여성연합은 1998년부터 성차별적인 구조조정과 부당해고 방지를 목표로 잡고 현장투쟁 지원활동과 함께 정리해고 시 성차별 금지를 명문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성차별적 해고 반대운동 결과 노동법 개정안에 정리해고시 성차별금지 조항이 명시됐고, 전국 지방노동관서에 ‘여성차별해고 신고창구’를 설치하도록 해서 성차별적 정리해고를 예방하는 압력의 효과가 있었다.

1999년 5월 사내결혼을 한 직원들 중 여성을 우선 해고한 농협중앙회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농협중앙회 여성 우선해고 사건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얻진 못했지만, 여성이 집중된 부서 중심의 부당한 구조조정,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산, 부당한 전직‧퇴직 종용 등에 맞서 항의·반대 거리캠페인을 벌여 사용주와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데 기여했다. 성차별적 고용관행의 하나인 직장 내 성희롱은 1999년 법제화 이후 주로 고용평등상담실을 운영하는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등 회원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대응해 왔다.

 

2001년 6월 18일 열린 모성보호법 집회 모습. ⓒ한국여성단체연합
2001년 6월 18일 열린 모성보호법 집회 모습. ⓒ한국여성단체연합

모성보호제도 확대 노력

여성연합이 모성보호를 여성노동운동의 중심 과제로 주목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기혼 여성노동자의 증가와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었다. 특히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직업병과 건강권 문제는 많은 경우 임신‧출산과 관련된 ‘모성(기능)파괴’ 차원에서 접근했다. 여성연합은 1990년을 ‘모성보호의 해’로 선언하고, 모성파괴의 실상을 폭로하고 모성보호는 여성노동자의 기본권임을 알렸다. 1990년대 중반에 여성노동운동 진영은 임신‧출산을 이유로 여성노동자가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평생평등노동권’ 확보를 위해 산전후휴가의 사회부담화를 촉구했다.

2001년에 여성연합은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와 여성노동(모성보호) 관련 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해 8월 산전후휴가 90일 확대와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의 일부 사회분담화(고용보험에서 지급)를 담은 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 개정의 성과를 거뒀다. 모성보호 비용을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것은 여성의 출산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서 보살펴야 하는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여성의 사회권 확보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왔다. 2004년 여성연합 노동위원회는 여성노동연대회의를 통해 ‘산전후휴가 90일 사회보험화’를 요구하는 법개정 활동을 전개했고, 법 개정안이 2005년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개정으로 산전후휴가 90일 전액 고용보험에서 지출, 유·사산 휴가 법제화 등의 성과를 이뤘다.

2000년대 중반 산전후휴가 전액 사회보험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성의 돌봄참여에 관한 논의가 성평등한 가족 정책과 저출산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활동 속에서 이뤄졌다. 특히 남성의 돌봄노동 참여를 남성의 ‘돌봄권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기구인 ‘생생여성노동행동’을 주축으로 남성의 육아참여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활동을 전개하며, 아버지 영아육아휴가제 도입을 촉구했다. 2017년 대선에 여성연합은 모성권 강화를 요구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대부분 수용해 시행 중이거나 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출산비용 지원, 배우자출산휴가 2주로 확대, 육아휴직 급여소득대체율 상한액 150만원 등이 그 내용이다.

 

여성들의 먹고사는 이야기에 주목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여성의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여성연합은 실업대책 활동에 착수했다. 1998년 ‘여성고용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성실업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정부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그 결과 정부가 여성실업정책을 발표했고, 공공근로사업의 여성참여 확대, 저소득 실직여성가장을 위한 특별훈련사업 시행, 5인 미만 사업장과 시간제‧임시직 노동자에게 고용보험 확대적용 등이 추진됐다. 여성연합은 정책제언을 넘어 실직여성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 ‘저소득아동 생활지도’ 보조교사 사업을 건의해 공공근로사업을 위탁 수행했고 실직여성가장 생계지원을 위한긴급구호 활동으로 ‘실직여성가장 겨울나기’(1998), ‘실직가정 돕기 범국민결연운동’(1999)을 실시했다.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는 여성노동운동 의제와 주체의 스펙트럼에도 영향을 끼쳤다.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여성들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된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여성빈곤 문제가 드러났다. 여성연합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여성의 빈곤화, 빈곤의 여성화’를 핵심 의제로 삼고 빈곤의 여성화 방지를 위해 법과 제도 마련과 정책대응 활동을 전개했다. 2006년 여성의 탈빈곤과 경제세력화를 여성연합 전체의 핵심 의제로 확장하고, ‘빈곤의 여성화 해소운동본부’를 구성해 노동(사회권)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회원단체들이 참여해 빈곤여성 ‘당사자’ 교육과 조직화를 추진해 빈곤여성이 경제를 주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적 자존감 향상과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 향상과 의식화에 기여했다.

2015년에는 여성들의 경제적 상황과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경제적 자립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 담론과 의제 만들기’를 핵심 사업으로 선정, 11개 회원단체가 참여해 66명의 여성(비정규직, 전업주부, 한부모여성, 20대 여성 등)을 심층면접해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2007년 3.8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KTX 여승무원들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7년 3.8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KTX 여승무원들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비정규직의 땀과 눈물 알리다

자본의 이동과 신자유주의 지구화 흐름,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에 따른 고용의 불안정성 증가에 대한 대응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여성노동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과 성차별적인 구조조정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가 가속화됐다. 이에 대응해 2000년대 이후로 여성연합은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방지 및 보호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계속했는데, 주로 비정규공대위에 참여, 여성‧노동계 단체들과 연대해 비정규노동자 보호,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정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대책은 계속해서 여성‧노동 운동 진영의 주요한 화두로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한국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연대단위를 꾸려 대응해 왔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5개 노동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여성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들의 저항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노동시장구조개혁안을 폐기했다.

여성연합은 2000년 전국여성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88컨트리클럽 골프장 경기보조원 부당해고 철회와 노조활동 보장 투쟁 과정에, 2001년 한국통신의 일방적인 114부서의 분사(외주화) 결정 반대농성에 연대활동으로 결합했다. 2007년에는 이랜드가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에서 400여명, 뉴코아에서 350여명의 여성비정규직 계약을 해지했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은 매장 점거투쟁을 시작했고 여성연합을 주축으로 한 여성노동계는 ‘여성에게 좋은 기업 만들기 실천단’을 조직, ‘이랜드 불매 포도송이 채우기’ 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가 여성의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2006년 KTX 여승무원들이 승객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위탁고용’에 반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여성노동운동 단체들은 KTX 여승무원 업무의 외주화(외주위탁고용)가 성차별적임을 인식하고,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을 독려해서 철도공사‧노동부에 대한 압박활동과 공동 기자회견‧집회 등을 개최했다. 2007년 한국여성대회는 KTX 여승무원들에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결정했고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오른 80명 여성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 KTX 여승무원들이 소송을 제기해 법적 투쟁으로 장기화됐고 2015년 2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패소했지만 KTX 여승무원들은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현재까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여성노동자가 행복한 그날을 위해

30년 동안 여성노동권 확보를 위해 꾸준히 법‧제도 개선활동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법‧제도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비공식가사노동자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청년 아르바이트, 이주노동자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문제의 핵심은 15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성별임금격차다. 성별임금격차는 노동에서의 성차별 결과이자 원인으로 여성의 비정규직화, 저임금화, 경력단절과 연동돼 있다. 2017년 3.8세계여성의날 조기퇴근시위 ‘3시 STOP’은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핵심이슈로 제기한 의미 있는 시위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는 향후 여성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돼야 하며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더불어 여성노동운동 주체의 강화와 확대로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성평등한 노동권을 확보하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최근 여성주의 인식 확산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여성운동단체는, 자신의 문제에 대응하여 개별적으로 싸우고 있는 주체들과 만나고 새로운 방식으로 더 넓은 연대를 통해 여성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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