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맞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대표 지낸

여성운동가 출신 진보 사학자

성평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여성이 남성 몫의 파이 빼앗는 것’

틀렸다, 성평등은 파이 자체 늘리는 것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제 여성상위시대 아니냐”,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 당하고 있다.” 여성 문제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높은 벽은 이 같은 오해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높은 벽은 성평등이 여러 사회의제 가운데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입니다. (...) 저는 성평등 실현의 의미와 가치를 국민들께 명료하게 알리고, 성평등을 사회 핵심의제로 만드는 것부터 제 역할을 시작할 것입니다.”

인상적인 취임사였다. 지난 7월 7일, 정현백(64) 여성가족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자원배분의 불균형성을 시정하는 성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핵심 요소”라고 단언했다. 촛불 민심에 대한 ‘응답’이자, 여성정책 총괄 부처의 수장에 걸맞은 철학을 보여줬다는 평이 나왔다. 

정 장관은 진보사학계의 원로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낸 여성운동가·시민운동가다. “여성들은 계속 싸우면서 가야 한다.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문제를 계속 제기해야 된다. 그래야 남자들에게도 각인이 된다”던 지난해 여성신문 인터뷰처럼, 그는 ‘싸웠고’, 그래서 취임 초부터 숱한 공격을 받았다. 지난 8월, 정 장관은 왜곡된 성 인식을 드러내 사퇴 압박을 받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해임을 청와대에 건의했다다. ‘인사권 개입 말라’ ‘갈등 조장 말라’는 비난과 경질 청원운동이 일었다. 

취임 100일, 그의 의지는 아직 굳건해 보인다.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만난 정 장관은 “지금은 성평등이 국가의 핵심가치로 등장하는 전환기다. 여가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혼자 힘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성과 남성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성평등을 이뤄나가자”고 했다.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여가부는 정부 부처 중 가장 루머와 비난에 많이 시달리는 행정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금 여성이 기득권 수혜자인 양 인식되고 있는데, 착시현상이다. 국가고시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동시에 여성 대부분이 저임금·비정규직에 몰리는 시대다. 성평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여성이 남성 몫의 파이를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틀렸다. 성평등은 파이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 “여가부를 성평등이 왜 필요한지 알리고 설득하는 창구로 만들어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문제에 더 적극 대응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 여가부는 담론의 창안자가 돼야 한다. 여가부는 여러 미디어 채널을 활용해 그런 인식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저는 취임 이래로 언론, 강연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이 핵심 의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의제를 만들고 전파하는 것도 여가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

“제가 7월에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독박육아’라는 말을 쓴 이후로 미디어에서 계속 이 말을 쓰는 듯하다. 또 여성·아동성범죄를 집중 조명하는 KBS2 드라마 ‘마녀의 법정’ 제작 지원 등, 여러 경로로 성평등 인식을 전파하려 한다. 그 결과 ‘성평등’ 키워드 온라인 검색 결과가 작년보다 126%나 증가했다. SNS에 만연한 여러 거친 표현에 대응할 방안도 고민 중이다. 

또 그간 왜곡된 성 인식을 가르친다는 비판을 받은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도 ‘성 인권 교육’으로 바꿔나가기 위해 교육부와 협의하고 있다. 교육부 사정상 구체적인 진전은 많지 않지만, 꾸준히 진행 중이다. 

남성들이 성평등을 이루는 데 얼마나 협력적인가 이야기해볼 필요도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여가부에서 ‘성평등한 명절문화 캠페인’을 진행했다. 앞치마 두르고 장갑을 낀 남자들이 주방에서 일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제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을 압박해서 참여시켰다. 최근 사회 각계 남성 45명으로 구성된 ‘성평등 보이스’ 사업을 추진 중인데 다들 적극적이다. ‘이제 우리가 뭔가 해야 한다’ ‘맡겨달라’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낀다. 중요한 건 여가부가 이에 부응해 성평등을 확산하는 일이다. ” 

- 여가부 장관으로서 중요한 과제를 세 가지 꼽는다면?

“우선 일자리 문제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저출산도 풀 수 있다. 안정적 일자리는 중요하다. (안정적 직장을 지닌 젊은층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세종시의 출산율이 전국 1위라는 게 그 근거다. 돌봄 서비스도 중요하다. 돌봄 사각지대가 생기면 여성들은 결국 일을 그만둔다. 독박육아 문제도 풀어야 한다. 결국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저출산은 극복할 수 없다. 

성평등 문화 확산도 중요하다. 여가부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 직원들도, 동료와 상사 눈치를 보느라 6시 정시퇴근을 못 한다. 결국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특히 국정을 결정하는 고위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여가부가 이들을 압박해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조사해보니 지난해 국가기관 국장급, 공직유관단체 임원급, 대학 전임교수 이상 고위공무원의 70%만이 폭력예방교육에 참여했길래, 시정하라고 최근 발표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나라다운 나라란 ‘위안부’의 역사적 아픔을 책임지는 나라다. 합의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여러 고려가 필요한 문제이므로 지금 여가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내년에 연구소를 세워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 정보를 체계화하려 한다. 일본만 봐도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또 내년 중순까지 일본의 강제동원 부인 주장 등 ‘위안부’ 문제의 여러 쟁점에 관해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책자를 펴낼 계획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별로 내려받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의 ‘메카’가 돼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 외국인들도 참조할 만한 제대로 된 책자가 드물다.”

 

- 그런데 내년 여가부 예산은 7000억원대에 불과하다. 지난해보다 7.9% 늘었지만, 올해도 정부 부처 중 가장 적다(전체의 약 0.18%). 예산 규모는 정부의 정책 실행 의지에 비례하는 것 아닌가.

“저도 열심히 노력했고, 이번엔 대폭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대엔 못 미쳤다. 하지만 아주 나쁜 편은 아니다. 여성 일자리와 보육 지원 부문, 신종 젠더폭력 부문 예산은 늘었다. 

기존 규모 예산으로도 콘텐츠를 강화해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사업이 많다. 예를 들면, 여가부가 지원하는 학교밖청소년 상담교육 등이 민주시민 교육과 결합해 있는지를 점검하려 한다. 청소년 관련 예산이 여가부 전체 예산의 30% 수준이니 잘 하면 꽤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성폭력 교육도 성교육과 폭력 예방 교육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점검하려 한다. 2022년까지 여가부 산하 기관 직원들의 급여도 점차 상향할 방침이다. 기존 급여는 복지부 사회서비스 담당 근로자의 70~80% 수준에 불과했다.”

- 그래도 여성가족부의 광범위한 업무 영역에 비하면 예산이 모자랄 듯한데. 

“우리 직원들도 예산에 비해 사업 가짓수가 너무 많다고들 한다. 고달프다(웃음). 제가 어려운 시기에 장관을 맡은 것 같다. 성평등이란 게,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데... 필요하다면 여가부 사업 가짓수는 줄이고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체질 개선’할 계획이다.”

- 곧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가 출범한다. 두 조직의 기능이 중복될 수 있고, 여가부의 예산과 권한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성평등위가 출범하면 여가부의 역할과 위상이 축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데. 

“성평등을 국정의 중심에 두려면 성인지 예산을 기획·집행하고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전 부처를 총괄·조정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전담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여가부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다. 그런 게(성평등위) 있으면 일이 훨씬 수월하겠더라.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협력하는 게, 타 부처를 압박해서 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총괄·조정 기능과 정책 집행 기능 간 균형이 필요하므로, 성평등 정책 주무 부처인 여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평등위와 여가부가 분업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 출범 150일을 앞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성평등 정책 약속 이행,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지금은 성평등이 국가의 핵심가치로 등장하는 전환기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가 ‘성평등 없이 저출산 해결 어렵다’고 하셨다. 놀라웠다. 그간 경제부총리가 경제 문제와 성평등 문제를 연결해 발언한 적이 없다. 청와대 회의에서도 성평등 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뤄진다. 성평등 정책의 범주도 새 정부 들어서 굉장히 확장되고 있다. 

이젠 문제의식을 넘어 실질적 액션이 필요하다. 상당한 구조적 변화가 요구된다.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하는데, 정말 (성평등을 이루려면) 민주주의, 평화주의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성장주의로 갈 것인지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시험하는 게 이번 정부다. 굉장히 어렵다.”

- 문재인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장관 비율을 ‘30%’로 끌어올렸다. 여성은 늘어났지만 주요 인사 검증 기준에 성평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은데. 

“‘양적 변화가 과연 질적 변화로 이어지느냐’ 물을 수 있다. 우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서도 본 일 아닌가. 그래도 이런 논의 자체가 질적 변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인사 검증 기준에 성평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운행 중 사고’는 생길 수 있지만, 성평등을 반드시 담아야만 한다. 여가부가 이런 문제를 꾸준히 제기할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여성들, 연구자들, 언론도 ‘당신들이 성평등을 얼마나 실천했느냐’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달라. 그래야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

- 그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해임을 청와대에 꾸준히 건의했는데. 

“탁현민 문제는 이제 인사권자가 결정할 문제다. 초창기에는 (제가) 얘기했고, 이젠 (탁 행정관의 거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여가부 일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

- 평생을 여성·시민사회운동에 바친 분이 제도권에 들어오셨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제가 여가부 장관이 된 게 의외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그간 NGO 내에선 ‘들어가서 최대한 도와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 운동 시절의 이상주의적 입장, 당파성을 현실 정치에 관철할 순 없다. 어느 정도 타협, 조정은 피할 수 없다. 여가부 장관의 역할은 다양한 당파성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고 조정하는 거니까. 그러나 평화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목소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 문재인 정부가 ‘페모크라트(femocrat, 여성주의 관료)’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상주의자의 현실 정치 참여가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려면 민주시민의식이, 내 것을 남에게 양보하고 공유하려는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 변화가 필요하다. 여가부가 공동육아나눔터 확대 조성에 나선 취지다. 아파트 단지 내 공동체의식을 회복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여성 시민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제가 다양한 단체들과 간담회를 자주 연다. 만나는 단체마다 ‘여태껏 이런 대화가 너무 없었다’고 한다. 제도권 밖의 여성 NGO들과 상생할 가능성을 여러 곳에서 찾아보고 있다. 여가부 공모사업 중 ‘여성’ 관련 예산 2015년 9억7500만원에서 올해 5억1000만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는데, 늘려야 한다고 본다.” 

정현백 장관은

△1953년 부산 출생 △이화여고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서울대 서양사 석사 △독일 보훔대 독일현대사 박사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역사교육연구회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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