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④ 이주여성운동

1996년 이주여성운동 시작

폭력피해 이주여성 인권보호와

체류권 보장 중심 활동

‘대변의 한계’ 넘어

이주여성이 운동 주체로 서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전국 50여개 이주·여성 단체는 2014년 11월 17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혼인취소 판결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전국 50여개 이주·여성 단체는 2014년 11월 17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혼인취소 판결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의 세계화’로 ‘빈곤의 여성화’는 ‘이주의 여성화’를 촉진하고 있다. 2004년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에 의하면 아시아의 경우 이주노동 인구의 7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의 이주는 전통적 성 역할과 기능에 따라 배치되고 있어 성별과 젠더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주의 여성화는 이주를 통해 여성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여성의 이주와 인신매매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본국과 고용국 양측에서 인권침해를 받는다는 점에서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주여성운동은 이주여성들의 삶의 자리, 즉 인권침해 때문에 시작됐다.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다중적인 차별을 받았다. 임금 차별, 진부한 모성보호 장치, 성희롱, 강간 등 성폭력과 같은 다중의 인권침해를 받았다.

여성의 이주는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서로 맞물려 있어 ‘젠더화된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게 필요했으나 이주노동운동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서야 이주여성 노동자를 위한 활동이 시작됐다. 이주여성운동을 처음 시작한 곳은 종교 여성단체로서 1996년 한국교회연합회의 외국인 여성상담소와 1998년 여성교회가 남양주에 이주노동자여성센터, 그리고 기지촌 여성 인권운동을 벌이던 두레방이 2000년 기지촌에 유입된 이주여성을 지원하면서부터다. 여기에 2000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전신인 ‘여성 이주노동자의 집’ 설립, 2001년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던 단체의 여성대표 3명이 시작한 ‘이주·여성인권연대’라는 연대틀이 형성되면서 이주여성운동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한국의 선주민 여성운동 판에 이주여성 문제를 부각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의 회원단체와 공동으로 이주여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뜻에서 2003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회원단체로 가입했다. 이주여성의 인권문제가 선주민 여성단체와 접목된 것은 이때부터다.

인권보호 위한 정책과 제도화 운동

한국의 이주여성인권운동은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인권 보호와 한국 땅에서 살 권리를 보장받는 체류권 보장을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활동해왔다. 한국정부에서 이주여성에 관한 정책이 없던 시절에 이주여성 관련 단체들이 정부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시민운동, 여성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정부의 이주여성 정책과 제도를 다음과 같이 견인해냈다. 폭력피해 이주여성을 위한 제도화 운동은 선주민 여성운동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의 연대는 이주여성 단체의 정부 정책 대응 활동에 힘을 싣는 결과를 낳았다.

 

2011년 6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이주여성 추모제. 이주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은 베트남 이주여성 황티남씨를 비롯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6명의 이주여성을 기렸다. ⓒ장철영 기자
2011년 6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이주여성 추모제. 이주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은 베트남 이주여성 황티남씨를 비롯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6명의 이주여성을 기렸다. ⓒ장철영 기자

2005년 여성부를 추동해서 국제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사업을 하도록 견인했다. 또한 혼인이 해소되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귀국해야 했던 이주여성의 안정적 체류를 위한 간이귀화제도 제정, 배우자 귀책사유로 이혼한 국제결혼이주자의 체류권과 취업할 수 없었던 결혼이주여성에게 취업할 수 있는 취업권을 확보했다. 2006년에 다문화 열린 사회를 비전으로 하는 대통령 국정과제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에 결혼이주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을 끌어냈고, 여기서 발표된 정책들이 구체화하도록 했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증빙자료로 민간단체의 상담확인서를 포함하는 ‘공인된 여성단체 확인서’ 제도 도입, 가정폭력방지법에 외국인을 포함하도록 가정폭력방지법 개정, 이주여성들이 자기 언어로 상담할 수 있는 이주여성 긴급전화 ‘1577-1366’ 개설, 폭력피해 이주여성 쉼터와 자립 지원 쉼터 설치가 이뤄져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보호가 진일보했다.

2007년에는 결혼이주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이 주여 성, 유흥업에 종사하는 인권침해 당한 외국인 여성에 대한 일정 기간 취업활동을 허용하는 제도를 끌어냈다. 특히 성·인종차별적 국제결혼 광고 금지 캠페인을 통해 인종차별적 옥외 광고 금지 법 제정이 이뤄졌다. 2008년에는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한국인 배우자에게 국제결혼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도록 하는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도입, 결혼이민자 대상 사회통합이수제를 의무화에서 참여제로 끌어냈다. 2013년에는 유엔 활동을 통해 권고안으로 체류연장, 국적신청 시 한국인 배우자 신원보증제 폐지를 끌어냈고 그 결과 한국에서 신원보증제폐지가 법제화됐다. 2014년에는 한국인의 무책임한 결혼과 외국인의 위장 결혼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결혼이민자 비자강화제도에 대응 활동을 벌였으나 법무부 안 대로 추진됐다. 이 가운데 국제결혼 남용을 막기 위해 한국인의 경우 5년 이내에 국제결혼을 1회로 제한하고, 결혼이민자의 경우 한국인 배우자와 이혼 후 자국민 남자와 결혼해 자국민 남편을 초청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이민자 국적취득 후 3년 이내 다른 결혼이민자 초청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에 대해 한국인 귀책사유로 이혼한 경우 이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반인권적이라고 건의해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혼인이 파탄된 혼인피해자의 경우는 예외’라는 조항이 추가됐다.

 

2012년 7월 18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이주 여성 관련 단체들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 여성 추모집회를 열고 결혼이주 여성의 체류권 제도 개선과 가해 남편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촉구했다. ⓒ여성신문
2012년 7월 18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이주 여성 관련 단체들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 여성 추모집회를 열고 결혼이주 여성의 체류권 제도 개선과 가해 남편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촉구했다. ⓒ여성신문

2013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에 대응하는 활동에서 이주여성운동은 여성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이하 전국연대) 등과 같이 가족 중심 이주여성 지원시스템을 이주여성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인권지원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함께했다. 구체적으로 이주여성 인권 전화인 ‘이주여성긴급전화 1577-1366’을 없애고 다문화가족종합정보 콜센터인 ‘다누리 콜센터’로 바꾸는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 이주여성 인권지원을 위한 상담소 구축 필요성 제기, ‘아동 성폭력으로 인해 출산한 이주여성 혼인무효’ 법정 지원, 인신매매방지법 제정 등에 함께 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혼인무효’ 소송 사건을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인취소를 한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다시 전주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토록 한 것 외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2017년 전주고법에서 최종 패소). 답보 상태인 이 정책들은 다시 전개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대변의 한계성과 당사자운동의 가능성

인권운동은 옆에서 더불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하는 것이 제일 큰 힘이 있다. 그러나 이주여성운동의 경우 당사자성의 중요성을 알고 당사자 역량 강화에 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인권문제를 말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권리가 본인에게 있지 않고 남편을 비롯한 한국인 가족에게 있는 상황에서 추방의 위협 앞에서 이주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인권 침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체류권과 귀화의 권리가 이주여성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 이게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주여성에게 소리를 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주여성에게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는 게 이주여성의 삶의 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 인권운동이란 이주여성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그 날까지 이주여성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대변의 한계성’이 이주여성 인권운동의 한계성으로 남게 된다.

 

2009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인권 글쓰기 공모전’. 이주여성이 인권의 관점에서 일상을 돌아보고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열렸다. ⓒ여성신문
2009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인권 글쓰기 공모전’. 이주여성이 인권의 관점에서 일상을 돌아보고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열렸다. ⓒ여성신문

‘이주의 여성화’ 문제에 응답해야

여성운동에서 ‘주류화’, ‘역량 강화’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 그 귀착점은 ‘변방에서 중심으로(Margin to Center)’다. 이주여성운동에서도 당연히 주변부에 있는 이주여성들을 중심부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이 변방에서 벗어나는 데 관심을 뒀지, 변혁 가능성으로서 이주여성이 선 자리인 ‘변방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앞으로 이주여성 운동이 해야 할 일은 이주여성을 ‘변방에서 중심으로’ 보내는 것에 무게 축을 두기보다는 선주민들이 변방에 선 이주여성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선주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더욱 힘을 싣는 것이다. 이주여성운동이 할 일은 변방에 있는 이주여성에게 주체성을 갖도록 세우고, 중심부에 있는 선주민들에게 이주민이 가진 ‘변방성’을 일깨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선주민 중심에서 중심을 주변화하고, 변방에서 있는 이주여성 삶의 자리를 중심화하는 운동을 해야 제대로 된 여성운동이 될 수 있다.

이주여성운동은 성 문제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문제도 핵심사항이다. 여성운동에서 여성의 젠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종주의 문제를 여성운동의 의제로 포함해서 성·인종 차별을 종식하는 일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이주여성의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이주 문제는 지구화 문제이며, 신자유주의, 빈곤의 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Post-2015’ 한국의 여성운동이 젠더차별을 지지하는 불평등과 젠더에 기반을 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한, 보편적인 권리에 기반을 둔 변혁적 접근을 추구한다면 ‘이주의 여성화’ 문제에 응답해야 한다.

이상에서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여성운동과 함께 한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정리해봤다. 한국 선주민 여성운동이 해낸 성과가 결과적으로 이주여성 인권운동에 밑받침이 됐다. 이주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나 필요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일 등도 여성운동에 기초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주여성과 함께 한 선주민 여성운동을 돌이켜 보면 한계가 있다. 선주민 여성운동의 과제에 몰입하다 보니 이주여성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과연 한국의 여성운동을 통해 인종차별 없는 한국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주여성과 선주민 여성이 “우리는 자매입니다. 우리는 이웃입니다”라고 노래하는 그날이 오기를!

 

* ‘선주민’이란?

인종차별을 이야기할 때 ‘원주민’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의 경우는 97%가 한국인 원주민이기 때문에 이 개념에 맞지 않는다. 한국의 이주운동에서는 한국인 대신에 ‘선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인을 강조하면 한국인 대 외국인의 장벽이 생기기 때문에 선주민/이주민이라는 용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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