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 심포지엄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는 9월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 열린 디지널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AV산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했다. ⓒDSO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는 9월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 열린 디지널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AV산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했다. ⓒDSO

 

공창제도, 일본군‘위안부’, 집창촌, 여성에 대한 성적 재현, 디지털 성범죄….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결과를 낳는다. ‘여성이 성폭력·성매매 피해 대상이 된다’는 것.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 발달로 파생된 새로운 범주의 폭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배경만 달리할 뿐, 여성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성매매 및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9월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는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을 주제로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디지털성범죄아웃(DSO), 중앙대 사회학과 BK플러스사업팀이 공동 주관하고, 희망의씨앗, 콜라보(colabo), 십대여성인권센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의기억재단이 주최하며, 서울시 성평등기금이 후원했다. 4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나온 전문가 8인의 발언을 기록해 정리했다.

강간 비디오에 불과한 AV, 여성에 대한 모욕과 폭력 그려

‘성적 자유’ 옹호하는 남성들, 성폭력과 성 해방 구분 못해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는 ‘일본의 AV산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 페미니스트’라는 입장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함께해왔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전시 성폭력과 동아시아 식민지 해방 후의 기지촌 성매매, 현대 일본과 한국의 성폭력·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넓혀왔다. 김 교수는 이날 강간을 표현수단으로 삼아온 AV매체에 대한 고발과 이에 대해 저항해온 일본의 페미니즘을 소개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여범(女犯)’(1990년)이라는 AV가 젠더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강간 비디오’였습니다. 시부야에서 스카우트된 젊은 여성이 사무실을 찾아가자 남자들에게 폭행당하고 집단으로 강간당하는 내용이었죠. 여성은 강간당하는 동안 울부짖고 절규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당시 여성 시청자들은 ‘실제 강간으로 보인다’ ‘이건 범죄 아니냐’며 엄청난 충격을 받고 여성 배우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크게 분노했습니다.

‘여범’을 촬영한 바쿠시시 야마시타 감독(당시 23세, 데뷔작)은 이후 ‘사회적으로 배제·차별받는 존재와 성적 취향을 다루는 사회파 AV감독’으로 치켜세워져 아사히신문 계열 미디어에도 등장하는 ‘문화인’이 됐습니다.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대학교수)는 이 강간 비디오를 높이 평가해 바쿠시시를 대대적으로 옹호했죠. 이를 페미니즘 시점에서 비판한 사람이 바로 아사노 치에였습니다. 자유, 존엄,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미야다이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아사노는 ‘미야다이 자유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했습니다. 미야다이의 주장은 피해자 측의 논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강자의 논리’라고 비판했죠.

이 강간 비디오에 대한 미야다이의 평가와 아사노의 반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영상이 ‘실제 강간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미야다이는 ‘강간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고, 아사노는 ‘강간 그 자체’라고 반론했습니다. 미야다이는 경찰이 이 비디오를 단속하지 않았다는 점, 이를 만든 감독이 미디어에도 등장했다는 점을 들어 이 비디오는 실제 강간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사노는 ‘만약 이 강간 비디오가 여배우의 궁극의 연기를 담은 것이라 할지라도 여성에 대한 모욕과 폭력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성차별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사노의 비판이야말로 AV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죠.

다음은 촬영 방법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아사노는 바쿠시시의 저서 『섹스장애자들』을 근거로 바쿠시시가 출연자 전원 혹은 출연자 일부를 자주 속이고 촬영해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시나리오 내용은 대개 이러했지요. 여성에게 인기 없는 스타일의 남성을 배우로 기용하고 불쾌한 상황을 작위적으로 설정한 뒤,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여성에게 남성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패턴입니다.

바쿠시시는 ‘여범’이 실제 강간을 촬영한 비디오라는 것은 부정했지만 ‘남자배우들은 (강간을) 진심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결국 여배우들은 촬영이라는 명목 하에 심리적·정신적 공포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에 동의하고 출연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한 것이죠.

한 여성단체의 일원이었던 후지모토 유카리씨(소녀만화·페미니즘 평론가. 현재는 대학교수)는 ‘여범’에 대해 다소 어이없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후지모토는 ‘여범2’는 실제 강간일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여범3’에 대해서는 ‘여범3는 확실히 재밌다’ ‘무서운 것을 보고 싶은 욕구를 담았다’고 평했습니다. 페미니스트마저도 AV의 소비자가 됐던 것이죠.

이에 대해 아사노는 ‘여범2’나 ‘여범3’나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은 강간 실록 비디오임에도 불구하고 후지모토가 ‘여범3’에 등장하는 여성이 잠깐이나마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강인함이라 여기고, 강간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목숨 건 싸움을 여성의 주체성으로 보는 것은 (남성의 욕구를 위해 죄 없는) 여성이 희생됐음을 묵과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쿠시시의 AV는 ‘차별받는 남자들을 구하기 위해 여성들을 차별자, 가해자, 억압자로 만든 뒤 성폭력으로 혼내주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아사노는 ‘그 차별은 바쿠시시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사회가 만들어낸 차별구조를 여성들에게 전가한 바쿠시시의 방식은 저열하고 악질적이며 성폭력을 행한다는 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아사노는 미야다이의 ‘성적 자유주의’와 바쿠시시의의 강간 비디오는 성적 자유 옹호와 성폭력을 혼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양자는 모두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을 젠더 간 차별과 여성을 향한 증오로 옮기고 있죠. 또 성폭력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차별과 폭력을 재생산시켜 강화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아사노의 비판으로부터 18년이 지난 현재, ‘여범’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지상 최대의 문제작 여범, 농락당한 이는 남자배우였다’라는 지난해 8월 기사가 나오더군요. 남성 기자가 쓴 기사였죠.

AV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만이 아닙니다. 올해 8월 한국에서도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를 폭행하고 불쾌한 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기소됐죠. 김 감독도 작품에서 성폭력, 성매매를 통해 여성혐오를 즐겨 그려왔습니다. 우리는 아사노의 AV 비판을 계승·발전시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 성폭력 실태를 분명히 밝히고 AV의 본질이 여성에 대한 모욕·폭력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매매, 성폭력을 낳는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국제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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