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유숙열 외/ 이프북스)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

외로운 길을 걷는 26명의 고백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하는 것’

으로부터 페미니즘의 힘이 나온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유숙열 외/이프북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유숙열 외/이프북스

오랜만에 니체가 말한 ‘피로 쓴’ 글들을 읽었다. 필자들은 페미니즘으로 무장하고 험하고 외로운,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26명의 여성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냉철하고 깊은 성찰, 남성 중심 사회의 허위의식에 대한 불타는 분노, 당당한 자기표현과 용감한 발언 등이 경탄스럽다. 한 명의 남성으로서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과 그 지지자들로 인해 세상은 차츰 바뀌고, 마침내 우리의 딸들은 공정하고 평화로운 날을 맞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를 만들었던 이들이 다시 뭉쳐 펴낸 책이다. 이 책에는 ‘고백’이라는 글자 자체가 지닌 처절함과 날카롭고 위태로운 피 냄새, 끝끝내 굴하지 않는 치열한 정신력 등이 도처에 배어 있다.

“쓰지 마, 너만 남자 잘못 만난 불쌍한 년 되는 거야”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자 이세아는 다 털어놓는다. 그녀는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페미니즘의 힘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자유와 존엄을 찾으려는 여성의 행진에 동참하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홍승희는 자위와 섹스, 성욕과 성경험에 대해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여성이 자신의 감각을 믿고 원초적 감각이 깨어나는 것이 지금의 억압적인 가부장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여성의 오르가즘이 터부시 돼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 타성에 젖어 타협하려는 자기 자신과 싸웠고, 위선과 허위의식에 물든 남성과 맞섰고, ‘시를 잘 쓰려면 남자를 알아야 돼. 남자를 알려면 나하고 자봐야지’하는 기성 문인들의 성폭행 시도에 대항해야 했다. 심지어 같은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동지들과도 이념과 노선에서 날선 투쟁을 벌였다. 다행스럽고 축복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사회적 부조리에 당당하게 맞서온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화가 김미경은 딸과의 문답 형식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말 ‘엄마’라는 주제만큼 페미니즘에서 깊이 파고들어야 할 주제도 없을 것 같아. 인간도 분명 동물인데 동물세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혹한 ‘모성’을 요구한단 말이야.”

동물세계와 달리 과장되고 왜곡된 인간 마을의 모성애…. 이 대목에서 제인 구달과 함께 침팬지 연구의 선구자인 프란스 드발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침팬지 암수 중 누가 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누가 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냐고 물으면 당연히 수컷이죠. 또 그들이 마주 칠 때 누가 더 높은 것처럼 보이느냐고 물으면 역시 수컷입니다. 그러나 누가 더 좋은 자리에 앉아, 좋은 음식을 먹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암컷이지요.”

인간의 모성도 일방적 희생뿐 아니라, 이렇게 당연한 대우를 받아야 공정한 것이 아닐까?

침팬지 사회에서 보듯이 인간도 본디부터 그랬을 리는 없고, 언제부터 남녀 사이에 가해자적이고 피해자적인 의식과 제도가 자리 잡았을까? 평화로웠던 모계사회가 마초의 경쟁적·전투적 사회로 변하면서 뒤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봄 이 책 필자들인 유숙열, 권혁란이 함께 있는 가벼운 얘기 자리에서 잘난 체를 한 적이 있다. 페미니즘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원만한 인격과 합리적이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두 사람은 웃었지만, 이제 생각하면 그 정도 피상적으로 넘어 갈 주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 뒤 서평 부탁을 받았을 때 이를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충분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이 필자들처럼 이 부분에 대해 첨예한 의식을 지니고 살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남자이므로 부끄러운 부분이 많았다. 또한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나, 남성의 처지에서 볼 때도 다분히 위선적인 글이 될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서평을 쓰기로 한 뒤, 또 한 번 후회한 것은 필자 모두가 출중한 문장가였기 때문이다. 절실한 체험과 정교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글이 대부분 훌륭하지만, 그들의 글에 평을 한다는 것 또한 주제넘은 일 같은 까닭이다.

‘이프’ 창간 20주년이 되었다. 그 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일궈놓은 성과도 적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이들의 시위와 퍼포먼스의 결과로 지하철 성추행 경고 방송이 시작됐으며, 전에는 없던 여성가족부가 등장했고, 여러 제도와 기구들이 생겨났다.

이 책을 읽으며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메리 울스톤크래프트를 생각하게 된다. 근래에 와서 페미니즘운동의 결과로 좀 알려지곤 있으나, 역사나 철학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철학하는 악마’ ‘여자의 모습을 한 하이에나’등으로 불리던 그녀는 여성의 완전한 인간적·경제적 독립을 주장을 주장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여성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반대했다.

급진 정치사상가 윌리엄 고드윈의 부인이었던 그녀의 철학적 주장은 ‘정신에는 성별이 없다’고 요약될 수 있다. 때문에 당시 진보적 철학자들까지도 그녀를 감당하기 벅차했고, 대응할 방법은 오직 그녀를 무시하는 것뿐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38세에 첫아이를 낳다가 타계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그녀의 딸 메리는 유명 시인 셸리의 부인이었다. 그녀가 시인 바이런과 남편 등이 모인 자리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짓기로 약속하고 탄생시킨 작품이 으스스하고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이다.

검고 딱딱한 지층을 뚫고 먼저 봄을 맞이하는 것은 연약해 보이는 연두색 떡잎이다. 메리 울스톤크래프트가 떡잎이었고, 한국의 선각적 페미니스트들 또한 그러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