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모두 겪은 과거이면서

어른이 된 마음속에 존재하는 현재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최근 그림책협회 회장인 작가 한성옥님을 만난 자리에서 인상적인 말씀을 들었다. “그림책은 평생 읽는 책”이라면서 어른들이 그림책을 아이들의 책으로만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를 안타까워하는 이야기였다. 한성옥 작가는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림책과 어린이’, ‘어린이성’에 대해서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는 우리가 모두 겪었던 과거이면서 이미 어른이 된 내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생생한 현재라고 했다. 단순한 연령의 문제를 넘어서는 어른과 어린이의 교집합에 ‘어린이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작가는 ‘어린이성’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변하려는 태도”, “내가 스스로 해보려고 애쓰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두려움 없이 무엇에든 도전하는” 같은 다양한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어린이의 연령에서 벗어난 어른들이 지금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바다. 그리고 그림책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읽기 시작하지만 내 안의 어린이성을 되살리고 보존해야 하는 어른의 시기까지 그 ‘어린이성’의 확장에 도움을 주는 예술적 매개지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어른은 자신이 어린 시절과 단절해 완전한 성장을 이뤘다고 여기면서 어린이는 어른의 지침대로 키워지는 수동적이고 대상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정작 자신은 간직해야 하는 어린이성을 잃은 채 새로운 변화는 거부하고 편견의 벽을 세운다. 어린이성을 잃는다는 것은 타자에 대한 유연함과 변화와 생성의 태도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또는 독립적으로 그림책을 평생 읽으며 내 안의 어린이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말에 깊게 공감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는 많은 어른이 ‘어린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과 태도에 모순과 부당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순결한 여신’, ‘위대한 어머니’처럼 여성을 향한 극단적인 숭배의 태도가 있는데 더불어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당장 달려가서 죽여도 시원치 않은 존재로 여기는 잔혹한 폭력의 시선이 나란히 존재한다. 장애인에게도 극복과 성공의 모델로 추앙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비장애인의 삶의 속도에 불편을 끼치지 않을 만큼만 그들이 돌아다니기를 바란다. 장애 어린이를 다룬 동화에 ‘착하지 않은 장애 어린이’는 거의 등장하지 못한다. 장애인은 ‘착할 때만’ 허용되는 인물인 것이다. 

‘노키즈존’ 논란에서 드러난, 자칭 어른들의 어린이에 대한 태도도 이와 빼닮았다. 출산 지도를 만들어가면서 한 명의 어린이가 소중하다고 떠들던 어른들은 평범한 식당이나 찻집에 “어린이 출입금지”라는 말을 써 붙이는 일에 대해서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어른 고객의 편안함과 업주의 영업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어린이의 출입은 허용된다. 노키즈존 논란에서 어른들이 ‘어린이의 속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드러났는데 더럽고, 시끄럽고, 막무가내이며, 울부짖고, 무언가를 깨뜨리고, 골치 아픈 것이 그들이 설명하는 어린이였다. 이 말을 하는 어른 상당수가 위의 속성이 현재의 자신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놀라웠다. 이 부정적 특성들은 어른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과거일 뿐 아니라 현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약속은 사회 속에서 배우는 것이며 어렸던 당시에 배려받지 않고 배제됐다면, 지금만큼의 어른으로도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노키즈존 논란을 들여다보면 양육의 주체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어린이의 소란을 여성의 책임으로 돌릴 뿐 아니라 이를 핑계로 양육자 여성들을 사회적 공간에서 배제하려는 시선이 담겨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디에서도 어린이의 긍정적 속성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어린이는 어른과 함께 있으면서 보고 느끼고 자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너희들은 들어오지 마라”는 말은 “애들은 가라”의 2017년판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은 의미의 ‘어린이성’을 상실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두 그림책을, 동화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림책은 평생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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