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 열려

 

이나영 중앙대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 ‘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을 주제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DSO
이나영 중앙대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 ‘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을 주제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DSO

공창제도, 일본군‘위안부’, 집창촌, 여성에 대한 성적 재현, 디지털 성범죄….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결과를 낳는다. ‘여성이 성폭력·성매매 피해 대상’이 된다는 것.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 발달로 파생된 새로운 범주의 폭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배경만 달리할 뿐, 여성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성매매 및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3일 오후 서울 중앙대 310관 B502호에서 ‘매개되는 욕망, 거래되는 몸’을 주제로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디지털성범죄아웃(DSO), 중앙대 사회학과 BK플러스사업팀이 공동 주관하고, 희망의씨앗, 콜라보(colabo), 십대여성인권센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의기억재단이 주최하며, 서울시 성평등기금이 후원했다.

이날 1부 사회를 맡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란 존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어떤 폭력의 기제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의 성산업은 일본의 공창제도에서 시작돼 일본군 위안부, 기지촌, 한국의 집창촌, 창녀촌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변주돼왔다. 이는 디지털이란 공간을 새롭게 개척해 어마어마한 성산업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이는 쾌락·욕망 산업으로 정당화되고 있고 이 안에서 많은 여성, 여성화되는 이들이 성폭력을 겪고 성매매 피해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적 규제 영역, 혹은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는 이중적 담론에 갇히지 않고 대안적 담론과 공간을 만들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일본의 여성인권단체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가 ‘일본 JK비즈니스와 소녀들의 현실’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DSO
일본의 여성인권단체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가 ‘일본 JK비즈니스와 소녀들의 현실’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DSO

1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성매매·디지털 성폭력 실태를 먼저 들여다봤다.

“성판매 하는 소녀 뒤에는 그들 관리하는 어른들 있어”

학대·성폭력 피해를 입은 소녀들을 돕는 일본의 여성인권단체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가 ‘일본 JK비즈니스와 소녀들의 현실’을 주제로 첫 번째 발표에 나섰다. 콜라보는 야간 순찰, 상담, 식사·목욕·의류 제공 등 기초 지원을 비롯해 임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유메노 대표는 고등학생 당시 가정폭력 피해를 겪은 당사자였다. 그는 당시 거리를 떠도는 자신에게 말을 건 어른은 두 종류뿐이라고 했다. ‘성 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에게 말 거는 건 위험한 어른들 뿐이라고 했다.

일본의 JK비즈니스는 여고생 이미지를 이용해 남성 손님을 접대하는 서비스다. JK는 여고생(조시코세)을 뜻하는 일본어의 영어식 줄임말로, JK비즈니스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성행하며 아동 성매매, 미성년자 대상 범죄 등의 온상으로 지적돼왔다. 여고생이 가게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카페’, 마사지를 해주는 ‘리후레’(Refresh), 손님과 가라오케나 식사를 하러 나가는 ‘산보’ 등의 영업 행태가 존재한다. 이는 대부분 성매매로 연결된다.

유메노 대표는 “시부야나 신주쿠 등 번화가에서는 매일 밤 100여명 정도가 길에서 소녀·소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말을 건다”고 했다. 소녀의 경우 성매매업자나 JK비즈니스, 불법 유흥업소나 아동 성매매 알선 업체가 붙는다. 그는 “아키하바라에서는 최근 몇 달 전까지 밤만 되면 여자아이들이 2m 간격으로 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얼핏 보기엔 소녀들이 자기 자신을 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그들을 관리하는 어른들이 있다. ‘팔려는 어른’과 ‘사려는 어른’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아래서 여학생들은 상품화된다.

18세 미만의 성매매가 단속되면서 여성 청소년 성매매는 이름을 교묘히 속이는 방식으로 횡행했다. 처음에는 ‘메이드 카페’, ‘아이돌 카페’라는 식이었고, 그것은 JK비즈니스로 이어졌다. 유메노 대표는 “JK비즈니스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처럼 다루는 미디어의 재현과 소녀의 성 상품화를 용인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에는 JK비즈니스를 연예프로그램 등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소개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를 성매매, 성 상품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가나지리 가즈나 PAPS(팝스) 공동상담지원사업 상담매니저가 ‘일본AV산업 실태와 피해사례’를 발표하며 보여준 AV 출연 동의서. ⓒDSO
가나지리 가즈나 PAPS(팝스) 공동상담지원사업 상담매니저가 ‘일본AV산업 실태와 피해사례’를 발표하며 보여준 AV 출연 동의서. ⓒDSO

“한 번 계약하면 빠져 나올 수 없다”

가나지리 가즈나 PAPS(팝스) 공동상담지원사업 상담매니저는 ‘일본AV산업 실태와 피해사례’를 이야기했다. 이날 가즈나씨는 상담자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유사한 복수 사례를 일반화해 A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인터넷에서 부분 모델 모집을 발견한 A씨는 시험 삼아 응모한 뒤 연락을 받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알바 내용은 전혀 달랐다. 사진작가 지망생의 연습모델로 하루 동안 촬영해야 했다. A씨는 거부감을 표했지만 담당자 1은 “이건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A씨 학생증과 의료보험증을 복사하고는 모델 등록용 사진촬영을 하자고 말했다. 사진작가는 ‘좀 벗어보라’고 했다. A씨는 당황했지만 사진작가는 “유명 아이돌 그룹도 다들 한다” “여배우라면 흔히 있는 일이야” “바디 라인도 봐야 한다”고 하며 결국 옷을 벗게 했다.

나중에 사무실로 오라고 해 다시 면접을 보러 갔더니 전과는 다른 담당자 2가 나왔다. 그는 “촬영면접에 응하면 1회당 3000엔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가벼운 기분으로 하기로 했다.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말에 A씨는 담당자 2와 함께 미용실을 간 뒤 면접용 옷을 사러 갔다. 그 비용은 프로덕션이 냈다. 이후 A씨는 또 다른 담당자 3에 의해 AV 제작사 면접을 돌게 됐다. 담당자는 “제작사를 소개만 하는 거지, 일은 골라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프로필사진 촬영이나 면접에 돈 쓰게 해놓고 일 안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담당자의 말은 A씨를 압박했다.

2주 후, A씨는 사무실 사장에게서 “AV 일이 정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A씨는 필사적으로 촬영을 거부했지만 사장은 A씨의 말을 다 쳐냈다. A씨가 “부모님이나 학교에 알려질까 싫다”고 말하면 “AV를 연간 10만편 제작하고 있다. 절대 들키지 않는다. 들킬 거라고 생각하다니 자의식 과잉이구나”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A씨는 촬영 직전까지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장은 “출연 취소하면 위약금 내야 한다” “위약금 낼 수 없다면 부모에게 받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패닉 상태가 돼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촬영에 응하게 됐다.

가즈나씨는 “일단 계약을 하고 촬영에 임하면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많은 상담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촬영에 저항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저항을 포기하고 그대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A씨의 경우 6건의 계약이 있었고, 촬영은 매달 1회씩 3개월에서 반 년 정도에 걸쳐 진행됐다. 촬영이 끝난 후 AV는 마치 여성이 원해서 출연한 것처럼 포장돼 판매된다.

하지만 AV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이 아직 일본에는 없다. 가즈나씨는 “법적 문제해결만으로도 최소 반 년 이상 소요된다”며 “종결된 상담보다 새로운 상담이 더 많아 PAPS 내부에서도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AV프로덕션과의 계약서에는 “출연 의무에 소홀할 경우, 피해 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또 AV제작사와 교환하는 출연동의서에는 “촬영이 완료 후에 임신이나 성병에 대해 일절 배상이나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가즈나씨는 이는 ‘현대 노예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하예나 DSO 대표가 ‘한국 디지털 성폭력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DSO
하예나 DSO 대표가 ‘한국 디지털 성폭력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DSO

“디지털 성범죄는 통신 매체 이용한 집단 성폭력”

하예나 DSO 대표는 ‘한국 디지털 성폭력의 실태’를 주제로 발표했다. 하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는 산업화된 폭력”이라고 단언했다. 이미지·영상을 제작·유포하고, 이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소비하고, 피해자 신상정보를 유포해 피해자를 괴롭히는 참여 집단이 존재한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는 ‘통신 매체를 이용한 집단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영상을 유포하고 제작하는 공급자는 영상을 소비하는 이들에 의해 트래픽 수가 증가하면 ‘포인트’라는 영리적 이윤을 얻게 된다. 이는 쉽게 말하면, 인터넷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이를 영리적 이윤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하 대표는 “온라인상의 포인트 또한 영리적 이윤이라고 볼 수 있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색가능 웹은 ‘표면 웹(오픈 웹)’이라 불리며, 검색 불가능 웹은 ‘다크 웹(딥 웹)’이라 부른다. 검색사이트인 오픈 웹은 길거리 혹은 문이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오픈 웹에서 디지털성폭력이 아주 흔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딥 웹 영역에 있는 성폭력 사이트들이 연결돼있어 어떤 검색어를 치더라도 여성이 나오지 않는 검색어는 없다. 심지어 한글 자음만 쳐도 여성 이미지가 나온다. 하 대표는 “한국 웹은 어느 정도는 검열되고 있지만 비공개 카페나 블로그의 경우 딥 웹 영역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아동 청소년의 접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구글이나 해외 사이트는 전혀 제어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어로 된 사이트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사이트마저 한국여성들만 모아놓은 웹이 조재한다는 것이다. 토렌트 사이트에서는 ‘korean girl’이라고만 검색해도 불법유출 영상이 나열된다고 했다.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검색해도 마찬가지였다. 하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해외 공조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의회에서 사이버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한 ‘부다페스트 사이버범죄 협약’에 한국도 가입해 디지털 성폭력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디지털’을 주제로 발표했다. ⓒDSO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디지털’을 주제로 발표했다. ⓒDSO

“기존 성매매 문제 해결 못하면 디지털 성범죄도 답 없어”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한국 성매매 산업과 디지털’을 주제로 발표했다.

국내 성매매 산업 규모는 엄청나다. 남성 2명 중 1명이 성매매를 경험한다. 성매매의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2000년 전후로 인터넷 기술 급성장하면서 이와 함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성매매가 확대됐다. 성매매가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조직화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화상채팅은 현금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조건만남, 성매매로 이어졌다. 역할대행알바는 처음엔 이색알바로 등장했지만 점점 애인대행이란 이름으로 출장 성매매 산업으로 형성됐다. 홈페이지, 커뮤니티, 블로그 등의 포털은 성매매업소를 광고하고 남성들이 성상품 후기를 나누는 정보 공유형 커뮤니티로 진화했다. 성구매 후기 사이트들은 불법촬영 이미지를 올리면 포인트를 제공한다. 사진 업로드를 장려하는 셈이다. 이런 사이트들은 성매매 업소들을 광고하며 수익을 올린다. 성매매 여성들은 불법촬영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다. 성구매자들은 성매매 여성들의 몰카를 찍고 정보를 공유하고 신상정보를 유출한다. 또 이를 빌미로 협박하고, 여성들의 돈을 갈취하기까지 한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며 2000년대 후반에는 누구나 손쉽게 성매매에 접근가능하게 됐다. 어디서든 언제든지 성매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장소성, 무시간성의 특성을 지닌다. 남성들은 성매매 경험과 정보를 끊임없이 공유함으로써 인터넷을 기반으로 남성연대를 구축한다. 

디지털 시대 성매매는 기존의 성매매와 다른 방식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얘기되지만 본질과 산업 구조,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가 변한 것은 아니다. 이 활동가는 기존의 관점 지키면서 다양해진 착취 방식에 대응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성매매 수요차단,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 알선 거리 차단 등이 그것이다. 디지털산업과 성매매 문제는 우리사회의 성매매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기존의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디지털 사회의 성매매 문제 또한 풀지 못한다. 성매매 구매는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매매 수요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성매매 또는 성매매 여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강력 제재해야 한다.  

관할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방식의 상상력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들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성매매 구조에 연결되고 착취당한다. 성매매는 디지털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현실의 여성에게 발생하는 일들이다. AV산업, 디지털성범죄, 성매매, 청소년 성매매는 굴적적·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몸을 대상, 상품화함으로써 연결되고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해당 문제들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2부 토론에서는 오노자와 아카네 릿쿄대 교수가 ‘일본의 성노동론’을 주제로,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가 ‘일본 AV산업과 페미니즘’을,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한국 성매매/디지털성폭력법의 현황과 과제’를,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가 ‘한국 10대 성매매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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