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 성폭행’ 고소 이후

무고·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한 여성

21일, 2심에서도 무죄 선고받아

판결 직후 기자회견 열어

“무죄 기뻤지만 참담했다”

고통스런 심경 눈물로 전해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한 여성 A씨는 21일 오전 2심 판결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 5층 정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푸름 기자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한 여성 A씨는 21일 오전 2심 판결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 5층 정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푸름 기자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한 여성 A씨가 21일 2심 판결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오전 A씨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 5층 정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간의 고통스런 심경을 전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A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울음이 가득했다.

A씨는 생각했다. 이게 ‘자기만의 일은 아니라’고. 그래서 고소할 용기를 냈다. 힘든 재판 과정도 견뎠다.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입고 고민하는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피해를 당하고도 무고로 몰려 피해자가 피고인이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A씨가 기자회견을 연 이유다. 지난 7월 4일 국민참여재판에서 A씨 측이 주장한 사실과 지난 21일 기자회견장에서 A씨가 밝힌 소견을 토대로 사건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무고·명예훼손’ 무죄로 기뻐해야 하는 자신이 초라했다” 

사건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2월, A씨는 박씨에 의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당했다. 장소는 ‘유흥업소 룸 내 화장실’. 지난해 박씨를 성폭행 혐의로 잇따라 고소한 다른 3명의 여성과 동일했다.

당시 박씨는 대화 좀 하자며 화장실로 가자고 했다. 화장실로 들어간 그는 다짜고짜 키스했다. A씨가 거부반응을 보였음에도 박씨는 추행을 지속했다. 갑자기 바지를 벗은 뒤 구강성교를 요구했다. A씨가 저항하자 그는 힘으로 몸을 누른 채 뒤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

A씨는 사건 후 온 몸이 아프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연탄을 피우고 자살하고 싶었다. 경찰이 자신의 핸드폰을 조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린 뒤 다산콜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원의 조언대로 112에 전화했다. 경찰에게 털어놨다. 하지만 박씨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상대가 유명 연예인라는 점, A씨가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는 점 때문에 편견 어린 눈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됐다. ‘내 말을 믿어줄까’ ‘이후 보복 당하면 어쩌나’ 막막했다. 끝내 신고를 철회했다.

시간 지나면 충격은 잊히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고소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생리대도 버리지 못했다. 박씨 기사를 볼 때면 숨이 턱 막혔다. 박씨를 멋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그러다 A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이 박씨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에서 관련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분이 나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박씨가) 누군가에게 또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던 경찰의 말이 생각났다. 112에 문자를 보냈다.

막상 고소를 하려니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당시 인터뷰했던 기자를 통해 변호사 도움을 받아 박씨를 고소했다. 그런데 그를 고소하고 나니 무고로 역고소가 들어왔다. 머릿속에는 그날의 비참한 광경이 생생했기에 무고죄 피고인으로 재판을 가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A씨의 변호인인 이은의 변호사가 ‘박유천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무고 고소 사건’ 개요와 판결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A씨는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강푸름 기자
A씨의 변호인인 이은의 변호사가 ‘박유천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무고 고소 사건’ 개요와 판결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A씨는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강푸름 기자

경찰조사 과정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경찰에선 ‘성범죄는 증거불충분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성추행보다 기소 가능성이 높은 성매매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당연히 동의할 수 없었다. 사실이 아니었으니. 무고를 했다고 오해받거나 사람들이 비난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술집 화장실은 원래 그런 곳인데 술집 X이 말이 많다’고, ‘한류스타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했겠느냐)’는 악플이 쏟아졌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나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너무 무서웠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여태 이런 나라를 믿고 살았던 것인가’. 수사기관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앞으로가 너무 막막하고 억울했다. 검사실에서 수갑을 차며 울부짖었다. 변호사는 ‘오늘 중에 나올 거야. 법원을 믿자’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구속영장실질심사 후 자정이 돼서야 구치소를 나왔다. 그 때 느꼈던 안도와 참담함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수사기록을 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내가 한 말을 허위사실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가해자는 도대체 뭐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어이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박씨가 했던 말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다. 앞뒤가 맞지도 않는 그의 말이 버젓이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수사기관은 왜 그의 말을 믿는지 이해가 안 갔다.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편견을 뼈저리게 느꼈다. 여성 네 명이 연달아 같은 이유로 그를 고소했는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유흥업소 직원이라는 이유로 무고라 하고, 그들이 돈을 바라고 고소했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현실이 답답했다. 재판 가는 날마다 법정 한쪽에선 눈을 부라리며 날선 시선을 쏟아냈다. ‘꽃뱀’, ‘술집년’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지난 7월 5일 새벽 2시 반, 국민참여재판에서 들었던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너무나도 기뻤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며 어떤 슬픔이 밀려왔다. 법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들으며 고통스러웠다. 재판장에서 그 얼굴을 마주하고, 내 신체 일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되는 걸 들어야 했다. 괴로웠다.

검사는 심지어 ‘(성관계 후) 피를 왜 수건으로 안 닦았느냐’ ‘삽입 못하게 허리를 왜 돌리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수치심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참담했던 마음들이 떠오르며 무고에서 벗어난 것에 기뻐해야 하는 자신이 초라했다.

궁금하다. 그동안 박씨는 나처럼 고통을 겪었을까. 반성은 했을까. 정말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걸까. 나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일부 팬들 때문에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일까.

 

서울 강남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 7월 25일 소집해제된 그룹 JYJ의 박유천이 구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박유천은 당초 26일 소집해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무가 없는 토요일이어서 병무청 규정에 따라 하루 앞당긴 25일 소집해제됐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강남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 7월 25일 소집해제된 그룹 JYJ의 박유천이 구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박유천은 당초 26일 소집해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무가 없는 토요일이어서 병무청 규정에 따라 하루 앞당긴 25일 소집해제됐다. ⓒ뉴시스·여성신문

법정에서 내 눈을 보고 피하던 그의 얼굴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항소심 재판장에 다시 섰을 때 검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너무 화가 나 눈물이 났다. 저 분은 나보다 똑똑한 분일 텐데 박씨의 말을 정말 믿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궁금했다. 2차 판결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아 기쁘지만, 되묻고 싶다. 이게 마냥 기쁘기만 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울면서 애원했던 그날의 비참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검사는 그게 ‘성폭력이 아니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게 옳은가?

변호사는 말했다. 법이 처벌해주지 않는다고 성폭력이 아닌 건 아니라고. 그 말에 위안을 얻었지만 마음은 헛헛하다. 그 누구도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을 배경으로 강간해도 된다거나 정당한 신고를 무고라고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 걷어내야 공정한 사회 될 수 있어”

사건 후 2년이 흘렀다. ‘성폭행 혐의’로 박씨를 고소한 뒤 경찰 조사와 무고죄 역고소, 검찰 수사, 재판까지…. 힘든 과정이었다. 지난 7월 4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A씨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A씨의 법률대리를 맡은 이은의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A씨)의 입장에서 피해자(박씨)와의 성관계가 성폭행으로 인식될 수 있는 충분한 사정이 존재하였으므로 피고인의 고소 취지와 인터뷰 내용은 무고죄 및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소한 취지나 피고인의 각 인터뷰 내용이 허위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 결과에 A씨는 오열했다. “이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A씨의 ‘무죄’ 판결은 그간 지속됐던 ‘성폭행 고소-무고죄 역고소’의 고리를 끊었기에 소중한 결과였지만,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했다. 성폭행 가해자의 잘못을 입증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무죄 판결 이후에도 A씨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은 여전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아직 우리 법으로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인지 법원에 묻는 과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현재 A씨는 검찰이 불기소한 박유천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재정신청은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검사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직접 그 결정이 타당한지 다시 묻는 제도다. 이 변호사는 1심 무죄 판결 이후 ‘여성신문’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는 편견 없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국민의 정서는 법조계보다 건강했다. 이제 느리게 걷는 또 느리게 걸어야 하는 법이 국민의 곁으로 또 한 발 내딛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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