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①] “지금도 묻고 싶다, 내 딸을 왜 죽였냐고"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①] “지금도 묻고 싶다, 내 딸을 왜 죽였냐고"
  •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9.19 00:00
  • 수정 2017-09-22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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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김모씨

대법, 무기징역 확정판결

딸 떠난지 1년 6개월

탄원서 3만8000통 쏟아져

귀찮아하는 법원 직원에

가슴 찢어질 때도

여성폭력 심각성 전엔 몰라

스토킹 개념 교육부터 해야

내 ​평생 첫 재판...이젠 전문가 돼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김모씨가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김모씨가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이 서른하나의 딸이 이별한 남자친구에게 두달 가까이 스토킹을 당했다. 설날을 앞두고 가족 모임에 초대해 다같이 식사도 한 사이였지만 딸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남자친구의 집착에 무척 힘들어했다. 어렵사리 이별을 요구했지만 계속되는 애원과 협박, 위협, 감시에 딸은 하루하루 야위었다. 아버지는 노심초사 딸을 차에 태워 출퇴근시키고 밤낮 집 앞을 살폈지만 이제 그 딸은 품속에 없다. 1년 6개월 전, 가방에 각종 흉기와 살해도구를 챙겨 아침부터 집으로 찾아온 남자친구를 설득하고 달래던 딸은 결국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서울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의 범인 한모씨가 지난 9월 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한씨는 항소심에서 내려진 무기징역형이 너무 무겁다며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살인사건에 30년형이 중형인 추세에서 사실상 최고형이다. 선고 당일 소식을 알려온 피해자의 아버지 김모씨를 일주일 후인 1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족은 사건 당시 언론들의 무수한 취재 요청을 피했다. 그날 김씨는 항상 집 앞에서 스토킹하던 한씨가 며칠간 모습을 감추자 안심하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러나갔다. 그러나 소식을 듣고 집에 오니 이미 언론사 카메라가 장사진을 이뤘다. 장례식장에도 방송 카메라가 버티고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되던 무렵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언론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부부는 딸의 억울한 죽음이 그렇게 잊혀지게 될까봐서 퉁퉁 부은 빨간 눈으로 기자와 마주했다. 이후 김씨는 재판 상황과 가족의 소식을 틈틈이 알려왔고 고통 속에서 1년이 흘러갔다.

-가해자에게 무기징역형이 최종 선고됐다.

“사형이 나오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기대했던 건 전자발찌 부착명령이었다. 1심에서 20년 부착이 내려졌는데 2심에서 없어져 감형됐다. 대법원이 30년 정도로 다시 명령해주지 않을까 했다. 가석방될 수도 있으니 무서워서 발찌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법 제도가 이상하더라. 항소심 판결 형량이 아쉬워 대법원에 상고하려고 했는데 피해자 측에선 불가능하고 피고인만 할 수 있게 돼있다. 피해자 위주가 아니라 가해자 위주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사건 이후로 아내의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 딸아이 보고 싶은 것도 힘들지만, 마음을 다잡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쏟을 때 제일 힘들다. 마음이 오죽하면 그렇겠나마는 다독거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곁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TV를 재밌게 보다가도 조금만 슬픈 내용이 나오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신과 치료, 심리치료 받았지만 되는 게 아니더라. 세월이 약인 것 같다. 우리가 극복할 문제지, 약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건 직후부터 이사를 원했는데 옮겼는지?

“얼마 전 임대주택에 당첨됐는데, 살고 있는 집이 아직 안나갔다. 아직도 집앞에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경찰이 약품처리를 했는데도 그렇다. 아내가 집밖에 나갈 때마다 너무 힘들어했다. 게다가 집 바로 앞에 구치소가 있어 동네 분위기가 음침했다. 그 애(가해자)도 구치소에 있어 담장 하나 사이에 두고 같은 공간에 있다. 사건 후엔 집 앞 골목에 CCTV도 생기고, 가로등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 진작 이렇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변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됐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국장의 도움이 컸다. 법무법인 지평에서 재판을 맡아줬고, 지역의 남인순 국회의원도 신경써주셨다. 여성단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제가 가진 게 없어서 금전적인 후원을 많이 하진 못하지만 몸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돕고 싶다. 3만8000여명이 탄원서를 써주셨다. 변호사가 말하길 단일 사건으로 탄원서가 이렇게 많이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동부지법에서도 너무 많다보니 담당자가 귀찮아하는 게 보여 가슴이 찢어졌다. 아는게 없어 여기저기 무작정 찾아다니다가 실망하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갔다가 정말 상처많이 받았다. 첫마디가 ‘잘못 찾아오셨는데요’였다.”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 있나.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 애(가해자)가 미국 영주권자인가 시민권자인데, 한국에 혼자 살면서 가진 재산이 하나도 없다. 승소하면 미국에 있는 그의 부모도 그에게 상속해주지 않을 것 아닌가. 강남역 사건 손해배상 소송 승소 판결 기사 댓글에 ‘자식 팔아 배부르겠다’는 악성댓글도 봤다. 인간이 정말 잔인하다 느꼈다. 그 댓글에 그나마 있던 소송 생각도 없어졌다.”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김모씨가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평생 법원은커녕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었다는 김씨는 서울고등법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제 “재판 전문가가 된 것 같다”면서 법원 후문을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김모씨가 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평생 법원은커녕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었다는 김씨는 서울고등법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제 “재판 전문가가 된 것 같다”면서 법원 후문을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딸이 스토킹을 당하다가 결국 일을 당했다. 사건 전으로 돌아간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계속 생각을 해봤다. 딸이 협박과 위협에 끌려 다니다 보니 끝이 안나더라. 나는 딸에게, 남자친구와 이별을 분명하게 선언한 다음에 딱 끊고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딸은 그 애가 사고를 칠거라며 달래면서 좋게 끝내야 한다고 했다. 새 여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친구가 돼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딸을 못 보게 하려고 매일 차에 태워 출퇴근도 시켰다. 그런데도 협박, 스토킹은 계속됐다. 집 앞에 우리가 보란듯이 차를 대고 있었다. 지금도 모르겠다. 내 말대로 딱 끊었다면 아마 사고가 더 빨리 났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과연 딸을 지켜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풀려날 게 뻔하니 보복이 두려워 하지 못했다.”

-스토킹 범죄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재판부에) 사형을 요구하긴 했지만, 형량을 높인다고 없어지진 않을 거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스토킹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쫓아다니는 그 자체가 범죄라는 개념부터 교육을 했으면 한다. 힘이 센 남자가 강압적으로 나오면 여자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존중해줘야 하는데 스토킹하는 사람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한다. 전혀 죄의식이 없다. 관계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건 전에도 스토킹과 여성폭력이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알고 있었나?

“뉴스에 나오면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였지, 이렇게 무서운 일인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제가 겪고 나니까 그런 기사가 나오면 이젠 읽어본다. 아직도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문제가 많다. 왜 반대를 하는지 답답하다.”

-범인의 사과를 원했는데 받으셨나?

“결국 못받았다. 미국에 사는 가해자의 가족도 재판에 왔을텐데 사과 한번 안했다는게 마음 아프다. 그쪽 변호사들도 많았는데, 거짓이라도 사과를 하길 바랐다. 가해자 부모의 탄원서를 봤는데 아들은 착하다는 식의 얘기뿐이었고, 사과나 뉘우침 한마디 없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법정에서 그 애(가해자)를 마주칠 때마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입 밖으로 안 나오더라.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위협을 당하다 신발도 못 신고 도망가는 애를 쫒아가서 그렇게 잔인하게…. 홧김에 한번 찔러서 사람이 쓰러져 피를 흘리면 겁이 나서라도 도망갔을 텐데, 끝까지 찔러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애의 심리, 감정을 아직도 모르겠다. 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나온 CCTV 영상을 보고 확인하고 싶지만 아직도 보지 못했다. 그 놈 말대로 그렇게 사랑했으면 행복하게 살도록 놔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평생 법원은커녕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었다는 김씨는 서울고등법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제 “재판 전문가가 된 것 같다”면서 법원 후문을 나섰다. 그는 이 한마디도 덧붙였다. “이 사건이 지난 1년간 가장 이슈화된 사건이라는 통계를 기사에서 봤다. 그나마 위안이 됐다. 재판이 만족한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다. 딸이 아빠를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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