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피해자 지원, 법제정 운동

통한 성폭력상담소 활동 통해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 밝혀내

 

1993년 10월 19일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당시 피해자 변호를 맡은 박원순, 이종걸 변호사의 모습도 보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1993년 10월 19일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당시 피해자 변호를 맡은 박원순, 이종걸 변호사의 모습도 보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폭력에 반대하는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돼 피해생존자 지원과 정책 제언, 새로운 성문화 만들기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 개소 이후 본격적인 반(反)성폭력운동이 시작됐고,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이 설립된 후에는 연대활동의 틀이 마련돼 ‘따로 또 함께’하는 반성폭력운동이 가능해졌다.

여성연합을 비롯한 전국 성폭력상담소들의 활동은 그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드러내 성폭력이 몇몇 운 나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모두가 직면하는 정치적‧문화적‧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비롯한 관련 법‧제도 마련과 성폭력 예방교육의 의무화, 성폭력상담소에 대한 국가의 예산 지원 일부 확보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리는 상담전화 내용이나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성폭력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은 매우 느리게 바뀌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화장실 등에서 불법카메라에 의한 피해나 본인도 모르게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 유출되는 영상 등 사이버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이 글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이슈가 어떻게 의제가 돼 사회변화를 만들어왔는지를 중심으로 여성연합 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생존자’들의 말하기와 상담운동, 여성주의 상담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피해에 대한 ‘말하기’를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분노와 고통을 드러내며 치유의 여정을 시작한다. 현재 전국 180개 성폭력상담소들에서 피해생존자를 상담·지원하고 있다. 여성연합 회원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서는 기존의 심리상담과는 달리 상담을 운동의 한 부문으로 보고, ‘여성주의 상담’을 통해 생존자를 지원한다. 여성주의 상담은 내담자의 상황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전제하고, 상담자와 내담자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그리고 상담의 목적도 고통의 ‘극복’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남성의 언어를 걷어내고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 상담 시 활동가들이 성폭력을 어떻게 의미화하는지, 성폭력 피해의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어떠한지가 매우 중요하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개별적으로 상담창구에 말하는 것을 넘어 2003년부터는 사회 전체를 향해 공개적인 말하기를 시도했다. 예를 들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했던 사회에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생존자 말하기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를 통해 생존자들은 성폭력에 새롭게 직면하며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재해석하고 힘을 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또한 우리 사회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들을 것을 요청받았으며,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의심 대신 공감과 지지를 하는 새로운 듣기 문화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생존자 말하기대회’는 2006년부터는 부산성폭력상담소, 전주의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의 ‘여성 살해’ 사건 이후 8일간 거리에서 이어진 ‘반여성혐오 자유발언대’와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나는 000에 있었습니다’에서는 생존자들의 말하기가 길거리에서도 거침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냈다. 생존자 말하기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공분하고 피해자의 아주 특별한 용기를 응원하며 서로 연대해 나갈 당위와 힘을 얻는 기회이자 성폭력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물꼬를 터주었다.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여성단체회원들의 국회 앞 행진. ⓒ한국여성단체연합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여성단체회원들의 국회 앞 행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생존자 권리 확장 위한 법‧정책의 제도화와 그 이면

1991년,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범죄자를 살해한 김00 사건이 발생해 당시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만 했던 친고죄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여성단체들은 이 사건을 지원하며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성특위)를 구성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13년 동안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력피해를 입은 대학생이 남자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 없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24조에 의해 피해자는 그동안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주변의 지원을 받을만한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가해자 살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두 사건으로 성특위 활동은 박차를 가하게 됐다.

법 제정 운동 3년 만인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돼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체계가 구축되고 전국의 성폭력상담소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특별법은 여성연합의 성특위에서 만든 초안의 상당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돼 법 제정과 동시에 개정운동을 시작해야만 했다. 1997년 1차 개정을 시작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신뢰관계인을 동석할 수 있는 제도, 진술녹화제도, 성폭력 전담 판·검사 및 전담 사법경찰관제, 친고죄 폐지, 강간의 객체 확대 등의 개정작업이 이뤄졌다. 현재의 피해자 지원체계는 여성긴급전화 1366, 원스탑 지원체계인 해바라기 센터, 성폭력상담소, 피해자 보호시설, 피해자 의료비‧간병비‧돌봄비 지원, 국민임대주택 우선입주권 부여, 피해자 국선변호인제도 등이 있다.

1993년 발생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은 6년간의 기나긴 법정공방 끝에 마침내 행위자의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교수가 조교를 성희롱한 이 사건은 피해자가 먼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피고소인의 위치에서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여성연합을 비롯한 단체들에서는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을 지원하고, 소송과정에서 성희롱의 개념을 세우고, 사회적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1999년에는 성희롱 관련법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공공기관과 각급 학교, 회사 등에서는 매년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2000년에 제정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은 가해자의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를 결정했고, 이어서 유사강간죄 처벌 등의 제도를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연합와 회원단체들은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정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특히 처벌 강화에는 많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반대해 왔다. 성폭력범의 처벌 강화 정책이 자칫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는 뒤로 하고 특정 개인을 ‘괴물화’해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끔직한 아동성폭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분하는 시민들의 공감대를 이용하여 일명 ‘전자발찌법’, ‘화학적 거세 법’ 등을 제정하면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 오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30년 동안 여성연합을 비롯한 각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관련 법‧제도의 마련을 요구했고 정부는 대부분 이를 수용했다. 이와 같은 발 빠른 제도화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의 구비와 재정적 기반 마련 등으로 운동의 확산 효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운동단체들에게 정부와의 관계와 전반적인 제도화와 관련해서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한편 반성폭력운동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성폭력 상담창구도 변화가 체감된다. 반성폭력운동 초기에는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지원을 요청했었다면 지금은 “여성부에서 운영하는 상담소 아니냐?” “왜 이것도 안 해 주느냐”는 불만을 쏟아내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내외부적인 변화는 반성폭력운동에서 성찰적으로 ‘제도화’의 돌아보기 및 내다보기를 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2007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밤길되찾기 시위’에 참가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달빛 체조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07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밤길되찾기 시위’에 참가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달빛 체조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남은 질문들 그리고 새로운 운동을 상상하며

2017년 반성폭력운동 현장은 법제도 마련을 넘어 새로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운동 차원에서 반성폭력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이를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와는 어떻게 연대하고 소통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각 의제를 담당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공론화와 문제 해결을 해나갈 것인가 등의 산적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깊이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활동가들이 운동 현장에서 전문성을 쌓으면서 ‘보람’과 ‘의미’를 찾고 성장해 가기 위한 운동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활동가의 재생산과 운동의 지속성을 어떻게 다질 수 있을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아가 일반시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방식을 찾기 위한 즐거운 상상이 필요하다. 2004년부터 시작한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밤길을 보장하라는 ‘밤길 되찾기 달빛시위’는 참여자들도 신명나게 할 수 있었던 활동이다. 이어서 ‘다른 몸 되기’ 프로젝트와 자기방어 훈련 등도 더 이상 공포 속에 갇히지 않고 적극적인 형태의 소리내기와 힘 기르기 과정이었다. 2016년 5월에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시민들이 보여준 공감과 연대는 ‘강남역 10번 출구’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페미디아’ 등의 새로운 운동세대들과 기존의 반성폭력 활동가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이 사건 1주기를 맞아 ‘5.17 강남역을 기억하는 하루 행동’으로 광화문, 신촌, 홍대, 강남역 일대에서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고 외치며 여성혐오와 차별,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연대활동을 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문단, 출판계, 영화계, 사회운동, 예술학교 등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를 알리는 해시태그 운동은 피해사실 공개와 사과의 통로로서만이 아니라 성폭력‧성차별‧여성혐오 표현 사례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아카이빙 활동이기도 하다.

여성연합의 반성폭력운동 30년을 돌아보며 이제는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무거운 당위의 주장을 넘어선 즐겁고 신명나게 세상을 바꿔가는 일상의 실천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어질 또 다른 반성폭력운동의 30년 후를 ‘희망적’으로 그려본다.

 

* 생존자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victim)라는 용어는 나약하고 수동적이며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있다. 2000년대 들어 여성단체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치유를 향한 강한 힘과 용기, 지혜를 담아내는 용어로 피해자를 생존자(survivor)로 바꿔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글에서도 생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통한 반성폭력 운동의 의미화

성폭력문제의 이슈화를 위한 여성연합의 노력은 3․8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 선정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성운동 발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여성연합이 매해 어떤 주제의 운동에 주력했는지 그리고 운동의 이슈화를 어떻게 의미화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지금까지 성폭력 분야는 총 4회 선정했다.

1987년 제1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는 권인숙씨다. 부천경찰서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함으로써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해 우리 사회의 여성억압 현실에 대한 인식의 토대를 만든 공로다. 이어서 1989년에는 경찰관에 의한 강간을 폭로해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강○○씨를 선정했다. 그는 은폐되기 쉬운 경찰에 의한 성폭력을 폭로함으로써 성폭력이 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범죄임을 각인시켰고, 여성계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요구의 배경이 됐다.

1998년에는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의 공동 변호인 박원순‧이종걸‧최은순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성희롱 처벌조항이 없어 법적 소송이 불가능한 사회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과 함께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대위’를 결성해 활동함으로써 성희롱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범죄임을 사회적으로 밝혀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수기를 쓴 은수연씨가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통념을 뒤집으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촉구한 ‘성폭력 생존자’인 점을 높이 샀다. 2017년에는 불법 음란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소라넷 폐쇄에 기여한 ‘디지털 성범죄 아웃(Digital Sexual Crime Out, 이하 DSO)’이 수상했다. DSO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사이트를 계속 조사하고 신고하는 새로운 운동방법과 끈질긴 투쟁방식으로 여성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들 수상자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성폭력문제에 대응하는 개인과 단체들에게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보여주고 희망을 나누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총 5차례의 성폭력 분야 시상 중 두 번은 지원자, 세 번은 생존자들을 선정했다는 점도 여성연합이 생존자의 목소리에 힘과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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