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피해 코피노 여성 묘사 그림, 게임사 공모전 당선 파문

“범죄를 자극적으로 상품화” 비난 일자 당선 취소

“피해 맥락 고려 없는 창작 경계해야”

‘인신매매·토막살해 당한 코피노 여성’을 그린 일러스트가 국내 유명 게임사 주최 공모전에 당선돼 파문이 일었다. 비난 여론이 일자 주최사는 황급히 당선을 취소하고 사과했다. 게임업계의 인권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이자, 민감한 사안을 자극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지 않도록 제작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게임회사 ‘넥스트플로어’(대표 황은선)는 일러스트 공모전 ‘데스티니 차일드 일러스트레이션 콘테스트(DCIC)’ 수상작을 지난 13일 발표했다. 넥스트플로어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 ‘시프트업’(대표 김형태)과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for kakao’을 공동 개발·서비스 중이다. 이번 공모전은 총상금 1억원 규모로, 국내외에서 1843명이 참여해 108건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한 특별상 수상작이 문제가 됐다. ‘피노 델 미트파이’라는 이름의 여성 캐릭터인데, “코피노 출신 차일드”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태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 수입으로 연명하”다가,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빠를 찾아 죽이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선교사를 가장한 브로커를 통해 밀입국을 계획” 중, “밀항선 내에서 장기를 적출당한 뒤 토막난 시신으로 한국영해에 버려”져, “살조각은 해류에 떠밀려 인천 부두 근처에 당도하고 그곳에서 피노는 악마와 계약한다”는 설정이다. 이 캐릭터는 인격체가 아닌 고깃덩어리라고 소개하는 듯한 이름(‘미트파이’)에, 캐릭터의 음부엔 ‘미트 프리(MEAT FREE)’라는 문자판까지 달렸다. 유명 일러스트 작가인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는 긍정적인 심사평을 남긴 후, “하지만 설정이 너무 가슴 아프다”라고만 덧붙였다. 

 

 

“코피노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대상화한데다 상업적으로 악용한 그림”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작가가 14일 저녁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캐릭터에게) 연민과 분노를 느껴 무의식적으로나마 피해자를 위한 보상이나 위로에 대한 방식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의도”라고 해명했으나, 비난 여론만 키웠다. 넥스트플로어 측은 이날 밤 해당 작품 수상을 취소하고 공식 사과했다. “소재 자체 외에도, 숨겨진 메타포나 설정이 유저 여러분 모두가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함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다음에는 더욱 신중한 심사를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물의를 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넥스트플로어 측은 14일 밤 해당 작품 수상을 취소하고 공식 사과했다. ⓒDCIC 웹사이트 캡처
넥스트플로어 측은 14일 밤 해당 작품 수상을 취소하고 공식 사과했다. ⓒDCIC 웹사이트 캡처

 

한국 아버지들의 코피노 방임 문제는 국제 망신거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년  아동성착취반대협회(ECPAT) 자료를 인용해 코피노 문제를 보도하며 “한국은 오래전부터 미국, 일본에 당한 성 착취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제 한국도 잘살게 되자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똑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러 인권 단체는 한국 정부에 코피노 친부 찾기·국적 취득 지원, 해외 성매매 엄벌 등을 촉구해왔지만, 정부는 소극적으로 응대해 비난 여론이 이는 상황이다. 자극적인 창작 소재로 삼기엔 여러모로 부적절한 사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범죄, 여성·아동 성착취 등 민감한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는커녕,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달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영화 ‘토일렛’이 개봉을 예고해 상영 반대 운동이 일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송(가명·28) 씨는 “한국 남성들의 뒤틀린 성 인식이 낳은 범죄를 소재로 삼은 데다가, 문제 해결엔 도움이 안 되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설정까지 추가해 일종의 포르노로 소비한 악의적인 작품들이 자꾸 나와서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모바일 콘텐츠 크리에이터 조승연(32) 씨는 “심각한 범죄가 끝나지 않았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창작의 소재로 삼고, 거기에 상까지 주는 일은 무지하고 게으르며 악의적이라고밖엔 볼 수 없다. 업계 ‘주류’의 인권·젠더 감수성이 이 정도라니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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