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씨앗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금만 유전자 변형을 해도 미래세대까지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는 수익의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기아해결의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씨앗산업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시키고 더 많은 기아인구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상술에서 씨앗을 지켜 식량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배울토종씨앗포럼’이 마련됐다. 앞으로 10회에 걸친 가배울토종씨앗포럼 내용을 격주 연재한다.

 

가배울 이끄는 김정희 대표

여성학자에서 살림여성주의로

 

김정희 가배울 대표
김정희 가배울 대표

지난 11일 이화여대리더십개발원에서 사단법인 가배울(대표, 김정희, 포럼위원장, 박기원) 주최로 ‘가배울토종씨앗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한 달에 두 번 10회 연작 포럼으로 최근 문제가 되는 식품체계를 분석하고 토종 씨앗 살리기 담론을 확산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포럼에는 여성운동가와 환경운동가 뿐 아니라 기업가와 의사, 교육계 인사, 주부, 정치인 등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포럼 첫 날인 이날 ‘살림여성주의자, 토종을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김정희 가배울 대표는 여성주의자 토종지킴이가 돼가는 학문적 여정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을 ‘살림여성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살림’이라는 용어는 남성 중심적 학문세계에서 ‘학문적 시민권’을 오랫동안 획득하지 못했다가 최근에 ‘살림경제’등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학계에 그 위치성을 자리 잡고 있다.

김 대표는 여성 문제를 치밀한 논리와 이론으로 해결하려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그것들은 여성들이 처한 모순적인 현실에 답을 주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여성주의 이론 창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때 그가 만난 것이 바로 ‘살림여성주의’다.

“나는 여성주의 이론이 남성들의 철학에 의존해 있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살아있는 것을 살리는 살림여성주의는 너무나 깊고 많은 것을 포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대표는 살림여성주의에서 영성과 사회적 변혁 추구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 영역에서 이것은 두 가지 영역으로 대립적으로 논쟁된다. 그것 때문에 김 대표는 에코페미니스트로 자신을 명명하기보다 살림여성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살림여성주의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김 대표는 지식, 감정, 사고방식까지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계관에 대한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나와 너를 분리해 우리사회를 경쟁적으로 몰아넣었던 근대 이원론적인 철학을 넘어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살림여성주의는 유기체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세상이 모두 하나의 유기물처럼 연결돼 있어서 인간뿐 아니라 ‘만물 안에 불성이 있으며 평등하고’, ‘한 개의 작은 티끌 안에 수많은 세계가 있는 것처럼 만물은 서로를 품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김 대표는 “내가 혼자가 아니며 작은 나무, 들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품고 있으며 그들도 나를 품고 있다는 세계관은 전혀 예상치 않은 자유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더 많은 재산, 명예, 수명, 외모 등을 소유하라고 메시지를 주며 우리를 소유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안에 만물이 있다는 세계관에 대한 믿음은 바쁘게 욕망을 쫓던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내안에 모든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충만한데 무슨 욕심이 생기겠는가?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고, 이것은 타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회복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특별한 것이 아니며 이미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인디언, 원주민 그리고 우리의 일상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인도의 생태철학자 사티쉬 쿠마르가 기억해낸 어머니의 말을 인용했다. “애야, 너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단다. 네 안에 너의 영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울창한 상수리나무를 갖고 있는 도토리처럼 말이야.”

이러한 세계관에 심취돼 있던 김 대표가 농촌연구를 계기로 전라남도 강진의 달마지 마을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삶 속에 살림여성주의가 살아서 실천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글을 모르는 달마지 마을 할머니들에게 삶과 먹거리가 분리되지 않았고, 문화와 일상이 하나였다. 특히 마을 전체가 씨앗을 채종해서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유기체적 세계관이 깃든 전통문화와 전통농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김 대표는 달마지 농촌의 토종씨앗을 ‘티내지’ 않고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전문가의 연계 등에 힘써왔으며 최근 들어 달마지 마을은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자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이어질 9회의 연작포럼에서 지속적으로 토종 지키기의 의미와 전략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더 자세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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