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여성신문 공동 기획으로 지난 30년의 여성운동을 돌아봅니다. 여성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사회 구조와 체계에 도전하며 투쟁해 온 여성들의 생생한 기록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발간한 책을 바탕으로 한 이번 글은 지난 30년 동안 펼쳐온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0개의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매주 연재합니다.

갈수록 진화하고 비가시화되는

여성착취에 기반한 산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강제와 자발 이분법 넘어

성매매여성 비범죄화 절실

반성매매여성운동, 현장 기반해

이론과 실천, 담론 일체화 노력

 

2010년 4월 27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여성단체 대표들은 성매매 범죄 의혹 검사들에 대해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2010년 4월 27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여성단체 대표들은 성매매 범죄 의혹 검사들에 대해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죽어야 사는 여성이 있다. 그런데 죽어서도 제대로 그 이름을 알릴 수 없는 여성이 바로 성착취 현장에서 죽어나간 여성들이다. 2014년 11월 26일 경남 통영의 한 모텔에서 경찰 단속을 피해 한 여성이 6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통영지역은 티켓다방을 통한 성매매 영업이 많은 지역으로, 이 사건은 남성 경찰관이 손님을 가장해 다방여성을 출장성매매를 위해 모텔로 불러내 현행범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여성이 모텔 창문을 통해 12미터 아래로 추락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는 해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으로 또다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여성단체와 유가족 그리고 지역단체들은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했다. 이는 성매매가 성풍속이나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닌 여성 착취에 기반한 산업에 대한 도전이자 여성인권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제기한 것이다.

한국사회 성산업은 급속히 팽창했고 진화 과정 또한 매우 빠르다. 지난 30년 동안 성매매는 빠른 속도로 진화했고, 착취 방식은 비가시화됐다.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한 전근대적인 의식과 성차별적인 현실 속에서 성매매는 집결지 방식에서 스마트폰을 통한 알선정보 제공과 광고, 유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형태가 분화되었고, 변화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하지만 정책이나 제도는 이러한 성매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매매가 더욱 다양화되고 저연령화, 글로벌화 되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빈곤하고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은 선불금 뿐만 아니라 형태를 달리한 대출, 고리 사채 등의 다양한 유인방식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결국 여성은 소비재로, 대상화된 상품이 되어 성산업 착취구조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은 이러한 현실을 파헤치고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여성 개개인의 삶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반성매매 여성운동단체들은 고집스럽게 현장에서 여성들을 소환하고, 그들의 응답을 기다리지만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응하는 여성운동은 새로운 법제도 정책을 만들어냈고 다양한 국제법들을 생성해 냈다. 각각의 규정과 국제법적 논의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 성착취, 인신매매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데 포괄적인 국제적 합의 또한 존재한다.

 

2003년 3.8 한국여성대회 현장 ⓒ한국여성단체연합
2003년 3.8 한국여성대회 현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성욕’ ‘성폭력’ 혼용, ‘성폭력’ ‘성매매’

경계짓는 분리전략에 맞서다

2000년과 2002년 군산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로 인해 그동안 은폐되거나 방치돼 온 성산업 실태와 여성들의 인권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사건들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다. 성매매방지법은 단순히 개발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윤락행위등방지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매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젠더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문제이며, 이 문제해결에 국가의 책임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었으며, 여성운동의 성과였다.

여성들은 일관되게 성매매는 성관계가 아닌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성적착취임을 주장해 왔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도구화·성적대상화 하는 여성혐오 문화를 기반으로, 그리고 그 문화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행위로서 수행하는 것이 성구매/성매수 행위다. 이것을 ‘정상적인’ 남성성의 일부이며, 남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남성의 성매수/성구매는 성적욕구나 ‘정당한 거래’로 포장되면서 그 비난의 화살은 여성에게 돌아온다. 바로 성매매를 둘러싼 담론논쟁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고, 발화되고, 퍼져나가고 있는가를 논쟁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성매매 여성운동은 현장에 기반해 이론과 실천, 담론을 일체화시켜나가는데 애써왔다. 때로는 성명서로, 때로는 집회로, 여성들의 직접적인 호소와 피해를 근거로 수많은 사건에 대응하면서 성매매/성착취를 입증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 전략은 성공하기는커녕 현장 활동가와 반성매매 연구자들을 힘들고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장은 여전히 바쁘고, 조건은 척박한데 피해자들의 상황은 더욱 더 입증을 어렵게 하는 수많은 요인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신고를 했는데 ‘업소녀’라면서 ‘성매매 행위자’가 되고, 동시에 성폭력 무고죄의 피의자가 된다. 혹은 돈만 받고 ‘먹튀’한 꽃뱀이 되어 사기죄로 고소당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안전한 성매매가 가능할 것이라는 신화를 심어주는 또 다른 담론과도 대립하면서 ‘남성성/수요’와도 싸우고 있다. 이것이 지난 30년의 역사이자 앞으로도 싸워나가야 할 우리의 활동이다.

당사자 목소리 전면에 내세우는 운동-

성매매여성 비범죄화가 절실하다

20대 여성 00씨는 일명 ‘보도방’를 통해 2012년에 9개월 동안 네 곳의 주점에서 일했다. 처음 선불로 받은 돈이 600만원이었으나 두 달 뒤 마지막 업소에서는 그 돈이 10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보도방 업자가 시키는 대로 이 업소에 가라면 가고, 저 업소에 가라면 갔었는데 2개월 동안 빚이 더 늘어나자 00씨는 업소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보도업자는 이 여성을 찾아내 일명 ‘술 3종 집결지’(속칭 방석집)로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했다. 보도업자는 한 여성을 업소에 소개시켜주면 1개월에 120만원을 소개비 명목으로 받았고, 그 보도사무실에는 여성 6~10여명이 있었으므로 보도업자의 월 수익은 어림잡아 700~1200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결국 업주를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성매매 알선과 소개비를 받았다는 증거가 미약하다면서 업주를 처벌하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여성은 업주의 협박과 위협을 감수하면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업주를 처벌하기 위해 신고나 고소를 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끈질긴 업주의 합의요구나 협박을 받으면서 오히려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해 업주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매매 현장에서 겪는 여성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낮은 자존감과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사의 대상이 될 경우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무고죄의 피의자로 둔갑되는 등 현장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또한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그대로 남아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몸’,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성’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여성들의 법적 접근을 멀리하게 한다. 제한적인 성매매 피해자 규정은 여성들에게 사실상 입증 책임을 전가시켜 여성들이 업주나 성매수자를 신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반면 업주나 성매수자들은 ‘너도 처벌받는다’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다른 도움이나 법적지원을 꺼리게 하고 있다. 최소한 국가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한다면 성매매 여성은 비범죄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반성매매 여성인권 운동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활동은 ‘우리의 존재가 실천이다’이다. 성매매 경험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드러내면서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혔다. 또한 이는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항하는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항하는 진정한 탈성매매 전략이 성평등한 세상을 향한 운동과 함께 진행해야 할 과제임도 알려주고 있다.

 

2008년 9월 민들레순례단 모습. 민들레순례단은 매년 9월 여성인권 현장을 순례하고 추모행사를 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2008년 9월 민들레순례단 모습. 민들레순례단은 매년 9월 여성인권 현장을 순례하고 추모행사를 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기억하고 행동하라 – 민들레순례단

참혹한 죽음과 죽임 속에 들판의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니면서 여성들의 역사는 길 위에서 기록되고 기억되고 있다. 매년 9월 여성인권의 현장에 함께하는 민들레순례단도 여성인권활동의 새 역사적 모멘트다. 오래된 역사 속에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온 일제시대, 전쟁과 기지촌의 생생한 현장, 그리고 대명동, 개복동만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살다간 삶의 흔적을 함께 하는, 역사와 공간이 숨 쉬는 활동이 전국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행동한다. 망각의 세월로부터 기억하는 기억 투쟁이 진행된다.

한국사회의 당면 어려움과 문제를 보는 지점은 서로의 위치와 권력관계, 문제제기 집단에 따라 다르다. 최근 『주적은 불평등이다』(이정전 지음, 개마고원 펴냄)의 주요 내용은 ‘한국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제1과제가 불평등 해소’라는 것이다.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아무리 말하고 근거자료를 내놔도 세상은 여전히 ‘아니다’라면서 다른 질문을 해댄다. 결국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을 내놓은 운동을 진행하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젠더불평등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임을 강조하고 이 구조를 해체시키고 진정으로 한국사회가 탈 성매매 할 것을 촉구하는 한국여성운동과 함께 한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의 역사는 현재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더욱 치열하게 진행해 나갈 것이다.

* 1987년 상설적인 여성운동연합체로 탄생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현재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와 함께하고 있다. 활동지역, 단체규모, 집중하는 의제는 각각 다르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이 종식되는 사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는 사회, 장애여성 혹은 이주여성 혹은 한부모가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는 사회,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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