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사회 됐으니 여성도

군대 가라”는 청원 뜨거워

한국은 성별임금격차·유리천장·

여성 경력단절 없는 ‘성평등 국가’인가

 

탈 권위를 지향하는 대통령의 시대다. 그 덕에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을 여러모로 실감한다. 이전 정권의 경찰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 전 경찰의 상징이었던 차벽도 없고 집회·시위 분위기도 명랑해졌다. 변한 세상을 실감나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 또 있다. ‘여자도 군대에 가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쌓인다고 한다. 성평등 관점에서의 청원이라고 한다.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반갑다.

성평등 대통령 약속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성평등의 ‘성’자에도 관심 없던 많은 분들이 성평등에 관심을 가지질뿐더러 여성도 군대에 보내자는 아주 구체적 제안까지 하시는 상황이 됐다. 물론 이 때 군대는 의무병제가 있는 국가에서의 이야기다. 많은 분야에서 성평등을 이뤘으니 남성이 갖는 병역의무를 여성도 성평등 관점에서 이행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여성도 군대에 가는 성평등한 사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성평등한 사회가 됐으니 여자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한국이 노르웨이 정도 수준의 성평등을 이뤘다고 보시는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어차피 눈·귀 다 닫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이며, 대한민국은 미국의 은총으로 산다고 굳게 믿는 이들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다. 어차피 안 통하는 대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그런 청원이 쌓인다고 정치적으로 곤혹스러워 하는 척 하면서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로서 성평등을 여성정책의 한 분야로 슬쩍 대충 정리하려거나, 주요 정책 어젠다에서 제외하려는 정치인, 관료, 전문가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11일 오후 3시 기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여성 군 의무복무화’ 주장 청원글은 약 12만1900명이 참여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11일 오후 3시 기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여성 군 의무복무화’ 주장 청원글은 약 12만1900명이 참여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노르웨이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병역의무를 갖고 있다. 1997년생 출생자 이후부터 적용하고 있다. 반면 병역의무자라 할지라도 무조건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 병역 거부도 가능함에 유의하자. 또한 총을 잡는 대신 사회봉사 대체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가능한 국가다. 성폭력 관련 사회적 인식이 높은 수준에 도달한 나머지 병영 내 남녀 공동사용 내무반을 시도할 정도다. 한국사회에서 즐겨 쓰는 용어로 ‘문란해서’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희롱·성폭력은 해서도 안 되고 용납하지도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격한 내무반 규율이 있다. 노르웨이의 성평등 수준은 전 세계 국가 중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성별임금격차, 유리천장, 여성 경력단절, (여성의) 독박육아, 전체 정원의 20%도 안되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다. 이 정도 되면 병역 의무를 여성이 공유해도 좋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병역의무를 여성에게도 부과하는 국가는 중국, 볼리비아, 이스라엘, 쿠바, 북한, 수단, 차드 정도다. 민주정치 수준이 낮거나 전 국토가 병영화 돼 있는 전체주의국가다. 이스라엘 정도가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배경이 독특한 경우일 뿐이다.

결국 병역의무를 여성에게도 부과해야 한다는 청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을 빨리 노르웨이와 같은 성평등 국가로 만들어서 여성도 군대로 가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런 청원에 귀 기울여 정치·정책하시는 분들은 망설이지 마시고 하루빨리 한국을 성평등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면 되겠다. 만약 청원의 뜻이 그게 아니라면, 한국을 북한과 같은 병영국가로 만들자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애국심 가득한 분들이 낸 청원이 그런 뜻을 가질리 없다. 그러니 이건 잊자.

결국 결론은 하나다. 이제 모두가 한국을 노르웨이 같은 성평등 국가로 만들기 위한 동기를 얻었다. 열심히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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