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금과 과학적 관심은

생리의 ’시장 가치‘에 집중

정부와 기업의 책임 더욱 중요

식약처, 생리건강권 보장 노력해야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물질 논란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일생 40년 가까이 매달 5~7일 정도씩 생리를 한다.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생리를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든 상품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회용 생리대 허가 기준이 20년 전에 제정된 것이라면 소비자는 한 번쯤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화학물질관리 강화는 전세계적 추세다. 특히 일상생활에 노출돼 국민의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특별한 규제 대상이 된다. 제조물책임법도 소비자의 권리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제조업체의 무과실책임까지 포함하도록 확대 적용한다.

일회용 생리대가 여성을 해방시켰다고 말하지만 그 성분과 제조 과정이 안전한지를 꼼꼼하게 점검하는 노력은 최근까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국내 생리대 기준으로 그 후 수많은 화학물질과 항료가 개발되었음을 감안할 때 오늘날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한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많은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 사용에 따른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8월 24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월 24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20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87년 인류학자 에밀리 마틴은 미국에서 월경에 대한 연구가 노동력에서 여성의 역할과 관련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전, 일자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월경이 여자를 쇠약하게 하므로 배려해야 한다’고 발표했던 연구자가 전쟁이 시작되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월경 중인 여성도 평소와 똑같이 무난하게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변경했다. 1950년대에 영국의 의사 카타리나 달튼은 최초로 ‘월경 전 증후군(PMS)’이란 용어를 만들어 냈다. 1964년에 『월경 전 증후군』이라는 책을 출간한 그는 월경과 범죄, 월경이 여학생의 학업에 미치는 영향, 어머니의 월경이 자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한 논문에서 ‘월경을 하는 여성은 불안전하고 신뢰하기 어려우며 때로는 위험하기조차 하다’는 인식을 확산했다. 이 같은 연구물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전쟁에 의지하지 않고 노동시장으로 대거 진출했던” 7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PMS 현상은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제약회사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의료화 됐다. “두통, 치통, 생리통엔 OOO”. 매우 친숙한 광고다. 월경의 시장성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국내 일회용 생리대 시장도 연간 5000억원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의 초경을 축하해주는 등 월경에 대한 인식이 다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생리를 매우 사적이고 타인에게 숨겨야 하는 것으로 보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네팔에서는 아직도 생리를 하는 여자를 가족과 격리해 움막이나 외양간, 창고에서 머물게 하는 관습(차우파디 Chaupadi, 불경한 존재)이 남아 있다. 힌두교의 신 중 하나인 인드라에게 죄를 받은 여성이 생리를 시작했고, 이에 생리 중인 여성은 신에게 저주받은 것이며, 월경혈이 재앙과 불운을 몰고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리 중인 여성에게 위생은 매우 중요한데도, 청결하지 못하고 위험한 공간에서 자느라 여성들은 여러 위협에 노출된다. 지난 7월에도 네팔 서부 다일레크 지역에서 이 관습 때문에 외양간에서 잠을 자던 18세 여성이 독사에 물려 숨졌다.

과학기술이 놀랍게 발전하는 21세기 시대지만 여성의 월경에 관한 지식과 연구가 매우 일천하다. 수많은 여성들이 생리통에 시달리고 불규칙한 생리양과 주기로 염려와 불안을 안고 살지만 정부, 기업과 의학계 등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은 이를 “개인 차”로 치부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폐경’이라고 칭하는 ‘완경’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 재클린 굿챠일드는 ‘월경후 자유(Post-Menstrual Freedom, PMF)’,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폐경 후 열정(Post-Menoposal Zest)’이라는 말을 만들었지만, 완(폐)경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 용어들은 PMS 만큼 대중화되지 못했다. 월경이 그렇게 부정적이라면 완(폐)경은 반가워해야 할 현상이 아닌가? 그러나 사회에서 월경은 불결하고 숨겨야 할 일이며 종종 파괴적인 것으로, 완(폐)경 또한 결핍과 무력과 노화를 의미하는 더 나쁜 것으로 간주돼왔다. 월경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하는 것도 문제이고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완(폐)경기에 힘든 경험을 하는 여성이 많지만 이 또한 개인차로 치부하거나 간단하게 호르몬 처방을 받으라는 식으로 일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뇌과학이 날로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는 시대에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월경에서부터 완(폐)경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매우 부족해 보인다. 연구기금과 과학적 관심은 종종 생리의 ‘시장 가치’에 집중돼 왔다. 그 결과 PMS는 진통제로, 완(폐)경기의 불편은 호르몬으로 해결하라고 종용한다. 결국 월경도 완경도 모두 ‘시장’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여성의 불편과 고통에 귀 기울이고 여성의 기본권인 생리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도대체 정부와 과학기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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