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이버 성폭력 근절운동 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계기로

사이버 성폭력 근절 운동 나서

총 20명 무급으로 활동 

“‘호모소셜’ 고리 끊어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이 지난 5월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10대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 공약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이 지난 5월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10대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 공약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그 여성들은 이름이 없다. ‘○○대 G컵녀’, ‘○○녀’, ‘○○○○녀’ 라는 제목의 영상만 남아 랜선을 타고 끝없이 퍼져나간다. 명백한 범죄가 ‘야동’ ‘재미’라는 명목 하에 품평과 유머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운 나쁜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게임 속에서도, 메신저 대화방에서도, SNS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과 모욕, 협박을 겪고 있다. 

몰카부터 ‘단톡방 성폭력’까지, 광범위한 사이버 성폭력을 고발하고 피해자를 돕는 여성들이 있다. 올해 초 출범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온라인에 유포된 몰카 등 사이버 성폭력 영상 삭제와 사후 모니터링, 피해자 심리 치료, 법률서비스 지원 등 피해자 지원에 주력하는 단체다. 사이버 성폭력 인식 개선 사업, 피해자 지원 모금 크라우드펀딩도 진행 중이다. 

“문제 제기를 넘어 법제도를 바꾸는 게 한사성의 목표”다. 지난 8개월간 청와대 행정관, 여성가족부 관계자 등 공직자들과 만나 사이버 성폭력 실태를 알리고 규제·처벌 강화를 촉구했다. 지난 7월엔 사이버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국회 토론회도 열었다. 젠더·법률 전문가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문을 받아 입법 관련 세미나, 해외 사례 연구 등도 진행 중이다. 

 

한사성의 ‘서랑’ 대표는 2015년 하반기에 시작된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계기로 사이버 성폭력 근절 운동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성폭력 근절운동 단체 ‘DSO’에서 활동하다가, 올해 초 다른 여성들과 함께 한사성을 설립했다. 애초 단체명은 ‘사자단(사이버 자경단)’이었다. “제도를 바꾸려면 제도권의 언어를 답습할 필요가 있어서 좀 더 공식적인 명칭으로 변경”했다. 

현재 한사성은 총 4개 팀과 연구소로 구성됐다. 상근 활동가 8명 포함 총 20명이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이 20대 여성이다. 서울, 부산, 독일 등 각지에 거주하는 개인들이 온라인을 통해 협업하는 형태다. 

“불법 도촬·유포 등 사이버 성폭력은 더 심각한 강력범죄로 이어진다”고 한사성 활동가들은 말했다. 가해자들은 종종 유출 영상 제목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거주 지역, 학교명이나 직장명, 나이 등을 적어 온라인에 유포한다. 유출 동영상 등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성폭력, 강제추행, 협박, 폭행 등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그간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공백이었다”라고 서랑 대표는 말했다. “다른 단체와 비교해도 저희 상담 업무량이 결코 적지 않아요. 기존에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부분을 저희가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죠.” (편집자주: 위 인터뷰 내용은 한사성 측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오해를 살 수 있어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일부 수정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홈페이지의 사이버 성폭력 설명 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홈페이지의 사이버 성폭력 설명 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사성의 주 업무는 피해 영상 삭제 지원이다. 하루 1~2건, 많으면 3~4건씩 유출 피해 제보가 날아든다. 활동가들은 피해 영상물을 확인하고, 해당 영상물이 올라간 웹사이트, P2P(개인 간 파일공유) 사이트 등을 찾아내 삭제를 요청한다. 유포 현황을 일일이 캡처해 해당 사이트나 웹하드 업체에 삭제 요청을 하거나, 방통위에 신고해야 한다. 학업이나 생업을 지닌 개인이 홀로 도맡기엔 벅찬 일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유출 영상 신고와 삭제 과정에서 2차, 3차 피해를 겪는다. ‘텀블러’ 등 일부 사이트의 경우, 게시물 삭제 요청 시 자기 얼굴이 해당 영상물 속 인물과 일치함을 직접 인증해야 한다. 경찰은 피해자의 성기가 드러난 영상 캡처만을 적합한 증거물로 인정한다. 사이버수사대가 정한 ‘음란물’의 기준이 “남녀 성기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장면 여부”다. 경찰에 신고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피해자들이 좌절하는 이유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디지털 장의사’(온라인상 데이터 삭제 전문업체)를 찾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삭제엔 매달 200만 원~400만 원, 최소 3~6개월이 소요된다. 온라인상 유포된 영상을 100% 지울 순 없다는 계약 조건에도 동의해야 한다. “60% 삭제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수많은 게시물 중 하나를 지우려고 매번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고통과 수치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큰돈을 지불하는 이들이 많다”고 여파 사무국장은 말했다. 

“문제는 사이버 성폭력 피해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몰카 찍어서 돈 벌고, 지워주며 돈 벌고, 공포로 보험을 팔아서 돈 버는 식이죠. 이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수사 기관의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낮은 젠더 감수성도 문제다. 서랑 대표는 “‘헤비업로더’들을 신고하자 몇몇 사이트가 방조죄 처벌을 받도록 적극 수사한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사이버 성폭력 범죄의 유형이나 피해자의 고통에 무지하며, 비협조적인 경찰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피해자에게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니 마음 바뀐 거 아니냐’ ‘몸가짐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경찰, ‘사이트를 탈퇴한 회원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어 수사가 어려우니 종결했다’며 형식적으로만 응대하는 경찰도 있었다.  

 

지난 7월 7일 국회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정책의 개선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진선미, 권미혁 의원이 공동 주최했고, 대검찰청과 경찰청이 공동주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지난 7월 7일 국회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정책의 개선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진선미, 권미혁 의원이 공동 주최했고, 대검찰청과 경찰청이 공동주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지난 8월 워크샵을 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지난 8월 워크샵을 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우리 세대가 가장 잘 아는 문제고, 누군가는 나서야 할 문제”(서랑 대표)라는 사명감이 이들의 동력이다. 한사성 활동가들이 무급으로 밤샘 노동을 자처하는 이유다. 그러나 선의와 열정에만 기댄 운동은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활동가들의 고민은 깊다.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대리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데, 부모에게 알리기가 두려워서 도움 요청을 포기하고 직접 영상을 지우는 분들도 있어요. 혼자서 밤을 새워 3000페이지 분량을 다 보는 거예요. 절박하니까.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저희도 힘들죠. 전화 상담 중 울어버리는 활동가도 있고요. 활동가들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여파 사무국장)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솔직히 다들 지쳤어요. 더 지치지 않으려면 저희도 도움과 지원이 필요해요.”(금개 홍보팀장) 

정부는 내년부터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유출 영상물 삭제를 포함해 피해자 심리치료 지원, 수사지원, 법률 서비스 제공 등에 나선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사이버 성폭력은 피해자나 특정 단체·기관이 홀로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가 모든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추가 유포 등 피해를 막을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성들끼리 재미로 영상을 돌려보고 유포하는 ‘호모소셜’의 고리를 끊어야죠.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어요. 언제까지 친절한 언어로만 설득해야 할까요? 국가가 나서서 ‘이렇게 하면 X된다’, 야동 클릭도 범죄라는 것을 보여줄 강렬한 선례를 남길 시점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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