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동수법 때문에 남성이 자리를 빼앗겼다고요?”
“남녀동수법 때문에 남성이 자리를 빼앗겼다고요?”
  •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9.05 10:05
  • 수정 2017-09-0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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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델핀 오 프랑스 하원의원

한국계 프랑스인 정치인



집권당 하원의원 모집하자


온라인 신청해 정치에 첫 발

공천 절반 여성인 이유?…

남녀동수법 지킨 것일 뿐

“남녀 균형, 연령 균형,

다양성 균형이 사회 정의”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은 “남녀 균형, 연령 균형, 
다양성 균형이 곧 사회 정의”라고 말했다. ⓒ신보라 의원실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은 “남녀 균형, 연령 균형, 다양성 균형이 곧 사회 정의”라고 말했다. ⓒ신보라 의원실

“남녀동수법 때문에 남성이 자리를 빼앗겼다고요? 여성은 수백년 간 그 자리에 가지 못했어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 여성, 청년들과 함께 창당한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의 델핀 오(Delphine O) 하원의원이 한국을 찾았다. 오 의원은 아버지가 한국인인 한국계 프랑스인이고, 여성이며, 1985년생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정계에서도 소수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8월 3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의 초대로 국회를 방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신생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여성의 정치 참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속한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이하 앙마르슈)는 프랑스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창당 1년 만인 지난 5월 대통령을 배출하고, 6월에는 총선에서 577석 중 305석을 석권하면서 사회당·공화당 양당체제를 무너뜨렸다. 특히 앙마르슈는 당시 후보자 절반을 여성으로 공천해 상당수가 당선됐고 소속 의원 중 여성이 46%에 이른다.

오 의원은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지만 앙마르슈에 참여하기 전까진 프랑스에서 국내정치를 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르슈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기존 정당 체제에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할지 몰랐다. 3개월 전까지도 제가 정치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하는 그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청년처럼 보였다.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과 그의 아버지, 신보라 의원(왼쪽부터) ⓒ신보라 의원실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과 그의 아버지, 신보라 의원(왼쪽부터) ⓒ신보라 의원실

성년이 된 이후 프랑스를 떠나 주로 외국에서만 살았다는 오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학원에서 중동지정학을 전공하는 등 8년 정도 미국, 독일, 이란, 아프가니스탄, 한국 등에서 생활했다. 2년 전 귀국해 프랑스 외교부와 관련된 일도 했고, 이란 전문 온라인 매체를 창간해 운영해왔다. 그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마크롱의 비전과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것과 함께, 앙마르슈의 참신한 활동 방식 덕분에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정당이라기보다 시민단체 같은 성격으로 시작했어요. 당비나 회비 없이 누구나 가입해서 자기가 원하는 위원회를 만들 수 있고 거기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동네 현안을 논의하는 위원회도 좋고요. 물론 해산할 수도 있죠. 저는 집 근처에서 위원회가 열리길래 찾아갔고요.”

마크롱 대통령이 위원회 방식의 제도를 만들게 된 계기는 시민의 의견을 최대한 다양하게 수렴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취합해 선거 공약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오 의원이 정당의 하원의원 후보자로 지명된 과정은 앙마르슈의 정치혁신 실험 그 자체였다. 기존 체제 정당에서는 상상도 안되는 일이다.

“기존 정당에서 경선을 치를 자격을 갖는 예비후보가 되기까지 적어도 10~20년은 정당 활동을 해야 해요. 그러다보니 후보군 자체도 굉장히 적어요. 앙마르슈는 후보자를 인터넷으로 공개모집했어요. 참가비용도 없고, 20여개 질문에 답변하고 이력서를 첨부해 제출하면 거기서 선별해 면접을 봤죠. 면접에선 정치에 관한 것보다는 시민운동, 노동조합, 스포츠 활동 등 공적 활동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하고요. 여기서 통과해 후보자로 지명됐죠.”

오 의원의 기억으로는 당시 후보자 공개모집에 온라인 참가자가 총 1만5000명에서 2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초반엔 여성이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남녀동수 공천을 위해 여성이 더 많이 참여해달라고 독려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특히 여성들에게 자기검열하지 말라, 능력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경력 없다, 시간 없다 하지 말고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어요. 이 동영상으로 상당한 효과를 봤죠.”

앙마르슈는 결국 총선에 남녀를 똑같은 비율로, 정치 경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절반씩 공천할 수 있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후보자 50%를 여성으로 공천을 하게 된 배경은 프랑스 남녀동수법(파리테, La Parité)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마크롱 개인이 굉장히 대단하고 특별한 것 한 것 같지만 법률을 지켰을 뿐이다. 다른 정당들은 이를 지키지 않아 수백만 유로의 과태료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앙마르슈가 변화를 선도하자 다른 정당들도 덩달아 정치 신인을 후보로 내세웠다. 그 결과 하원의원 중 75%이 초선, 즉 4분의 3이 물갈이가 됐고 전체 평균 연령은 10세 이상 낮아졌다. 부의장 4명 중 1명은 29세다. 여성은 전체의 27%에서 39%로 상승했다.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 ⓒ신보라 의원실
프랑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소속 델핀 오 하원의원 ⓒ신보라 의원실

오 의원은 남녀동수법에 대해 적극 찬성했다. 능력이 중요하지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도, 프랑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하원엔 15%에 불과하다는 건 능력있는 여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남녀 균형, 연령 균형, 다양성 균형 이것이 곧 사회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정당들이 능력은 있지만 10년, 20년간 정당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요. 대신 능력이 없는데도 그 시간을 기다린 남성들을 발탁하기도 해요. 또 여성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도 하죠. 가족과 상황을 생각하고, 자신감 없이 자기검열을 하면서 스스로 위축되는 거죠.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남녀동수법이 역차별적이라는 사회 분위기는 없을까. 그는 동수법안이 표결될 당시에 많은 저항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성 의원들이 법안 때문에 남성들이 선택되지 못하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고. 그는 남성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남성들 일부가 선택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여성들은 수백 년 간 그 자리에 가지 못했다.”

오 의원은 대부분의 정당들이 여성을 공천하지 않는 이유로 ‘여성 인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 정치권뿐만 아니라 세계의 기업, 기구들이 똑같은 얘기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저는 인재를 계속 찾으라고 합니다. 열심히 안 찾아서 모르는 거지, 계속 찾으면 분명히 있어요. 나올 때까지 찾으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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